2022.2.26.
토요일 수업까지 무사히 끝. 이제 화요일까지 쉰다. 퇴근 후 운동도 하고 휴식 시간도 충분히 가졌다. 아직 자지는 않았지만, 무념무상의 상태로 시간 낭비를 하니 무의식의 회복이 이루어진 느낌이다. 괜히 이러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의 게으름이 필요한 사람이다, 나는. 어느 수준 이상의 바지런함을 계속 갖고 가려고 하면 강박이 생겨 제 스텝에 다리가 꼬이는 사람이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영화를 일주일에 한 편씩 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첫 월급을 받으면 그 후부턴 돈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정도가 많이 감소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지 않았다. 첫 월급은 나의 부채를 정면에서 보게 만들었다. 거대한 절벽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그랜드 캐니언과 같은 커다란 바위 절벽을 바닥에 서서 올려다보고 있다. 물론 내가 진 빚이 일반적인 시각에서 막대하진 않지만, 적어도 나에겐 벽이다.
학자금 대출부터 취업했다고 월급 받기도 전에 긁었던 카드 값이 너무나도 거슬리는. 그래서 모은 돈을 빚을 갚는데 써버리기도 하였다. 내 생각엔 미리 더 갚아 놓아야 할 것 같다. 돈에 대한 공부와 계획이 필요하다. 필요에 의해 찾게 된다.
부족한 게 많은데, 그만큼 게으름도 많은 사람이다. 욕심이 많은데 귀찮음에 제동이 자주 걸리는 사람이다. 제동 장치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무리가 안 되는 선에서 꾸준함을 유지하고 싶다. 하지만 그 선이라는 게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명확하게 측정되는 것도 아니라, 혹은 매일 컨디션에 따라 변동하는 가변성을 갖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 건 어렵다. 그래서 매일 기록을 하는 것일지도. 나를 알고 싶지만, 사람은 깊은 우물 같은 거라서, 마음같이 쉽게 되진 않네. 아무튼, 오히려 그래서 정말 쉽고 단순한 행위의 꾸준함을 연속하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되긴 관뒀는데, 그리기는 지속한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리기에 큰 끌림을 느낄 때가 있다. 굉장히 강한 중력에 몸이 끌려가는 것처럼.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정신이 응당 온전할 수 없다는 듯이. 그런 끌림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감정적 해소. 두 번째, 명확한 대상에 대한 표현 욕구. 첫 번째 끌림에 대해서 조형적 ‘표현’을 통해 감정을 해소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겠으나, 나에게 감정이란 명확한 대상이 아니다. 말이 어려워지는데, 스트레스 상황을 마주하여 느끼는 감정에 휘둘리는 게 힘들어서 그 감정을 시각화, 대상화하여 나로부터 떨어뜨리려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이건, 동기가 ‘나를 힘들어하는 감정으로부터 멀어짐’에 있다. 스트레스받을 때 샌드백을 힘껏 때리라는 말과 비슷하다. 감정을 내면에서 외부의 화면으로 옮겨내는 것이다. 갑자기 찾아오는 스트레스와 감정에 대항한 행위이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그리기가 이루어진다.
즉흥적으로 그리기를 지향했을 때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즉흥으로 그리길 즐긴다. 하지만, 뿌리를 가변적인 감정에 두었을 때, 그림도 흔들린다. 나는 감정의 지배를 받아야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페인터로서의 정체성이 일시적인 현상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 걸 하고 싶은 작가도 있겠지만, 나는 그러길 원지 않는다. 왜냐고? 지속성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끌림은 두 번째인 명확한 대상에 대한 표현 욕구다. 명확한 대상은 애초에 그리고자 하는 바가 나의 외부에 있다. 내부에서 먼저 끌려 나오는 게 아니다. 대상을 관조하고 후에 마음에 이는 것을 (복잡하든 간단하든) 계획을 잡고 화면과 연결된 상태로 끌어낸다. 심지어 감정을 그려내려고 한다고 해도, 나는 그것을 외부의 대상으로 놓고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 감상, 심상을 화면에 드러낸다. 화가 난 상태에서 그리는 것과 분노에 대해 그리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간단한 것 아닌가. 나는 이 고민을 굉장히 오래 했다. 명확한 글로 써내긴 이번이 처음이지만. 하하, 작가가 되는 것은 관둬놓고, 작업에 대한 고민은 이어가는 나다. 재밌네.
감정에 휩쓸린 상태로 힘든 시간을 몇 년이나 보냈다. 그 상태로 더 있었다면 아마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지도 못했을 거고, 주제 파악도 잘 못했을 거다. 감정의 중심에서 바깥으로 나가 그것을 보려고 하는 노력을 지속하며, 조금씩 주제 파악을 했던 것 같다. 비교적으로 이성적인 상태에서 나를 돌아본 거니까. 그렇다고 지금의 상태를 그림의 덕으로 돌리긴 싫다.
뭐지. 정신 차리고 보니 일기가 작업 노트가 되어버렸다. 이런. 오랜만에 재밌기는 했는데.
이번 휴무일은 정말 잘 보내고 싶다. 이전의 일기에서도 썼듯, 업무 간소화와 체력 관리, 컨디션 관리, 공부를 할 거다. 심심한데, 그만큼 바쁘게 지내야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