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23

by 와이와이

2021. 11. 23


밤 11시가 넘어서야 30분 글쓰기를 시작한다. 오늘은 친구를 만났다. 고등학교 1년 후배, 대학교 2년 후배인 친구. 나이는 한 살 어리다. 하지만 서로 알고 지낸지도 오래고 대화도 잘 통해 동갑이라 해도 무색할 정도로 편하다. 오히려 학부 졸업한 후 더 친해진 것 같기도. 나랑은 다르게 미술에 뜻이 있다. 재능도 좋아 보인다. 나는 결코 해내지 못할 회화적 표현을 능숙하게 해낸다. 본인도 자신이 잘 한다는 것을 아는 것 같고 결과물도 꽤 괜찮다. 미술 필드에 오래 있었던 나는 내가 회화적 재능을 걸출하게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 그것 때문에 괴로운 적도, 부끄러운 적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 같았으면 부러워만 했을 그의 능력에 대해 지금은 기대를 많이 갖고 있다. 그는 알아주는 대학원을 지원한 후 대기하고 있다. 내심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 잘 될 것이다. 내가 간 곳을 지원했으니까. 그는 자신이 현실감각이 떨어진다고 얘기했다. 때문에 불안감, 초조함을 느끼기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또 오히려 그 때문에 언젠가 현실적인 부분에서 큰일 날 것 같다고도. 나는 얘기했다. 미술을 하려면 오히려 현실감각 없이 앞만 보고 갈 줄 알아야 한다고. 나는 이 말이 결코 후회되지 않는다.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전 여자 친구와도 많이 했던 이야기다.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미친 듯이 쏟아내며 달려야할 필드에서 현실감각이 너무 크게 작용하면 불안감 때문에 아무것도 못한다고. 돈이 안 되는 필드다. 벌기도 어렵고 번다해도 많이 받기 힘든 곳. 그곳이 순수미술의 영역이다. 나는 그래서 뛰쳐나왔다. 무서웠다. 자신이 없었다. 많이 벌지 못해도 그림 그리는 시간에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란 생각뿐이었다. 물론 단지 온전히 이 이유 때문에 관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 친구랑 이야기하며 너 같은 애가 미술 해야지 생각하기도 했다. 왠지 부럽기도.

갖고 있는 옷이 다 캐주얼풍이라 셋업을 사러 갔다. 여러 옷을 입고 벗기를 반복, 거금을 주고 한 벌을 구매했다. 하지만 막상 집에 와서 입어보니 먼지도 많이 타고 부식거리는 소리가 많이 나서 신경이 거슬렸다. 또 핏이 매장에서 입었을 때랑 느낌이 다른 것 같아 결국 환불하기로 마음먹었다. 친구가 꽤나 신경 써 봐주었는데 미안했다.

많은 수다를 떨었지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다 기억나지는 않는다. 나는 기억력이 썩 좋은 편이 아니다. 때문에 전 여자 친구와 말다툼할 때마다 얼마나 피곤했었는지 모른다. 그 친구는 기억력이 무척 좋았기 때문에 지엽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대화에서 우세를 잡기 어려웠다. 결국 나는 명백히 그 친구의 잘못이 있을 때만 크게 따지고 들었다. 헤어진 후 이제 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그것도 후회된다. 더 잘해줄걸. 그러면 걔와 더 오래 사귀었을까.

친구와 하루 종일을 함께 있다 보니 해야 할 일들을 많이 못했다. 자기 전까지 서둘러 해야 한다. 30분 글쓰기, 처음 할 때에는 뭔가 내면에 할 이야기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뭔가 수박 겉핥기 하는 느낌이다. 친구와 함께 있는 시간은 즐겁다. 하지만 혼자 무언가 할 시간을 허비하는 느낌이 들어 아쉬운 기분이기도 하다. 돈 또한 마찬가지다. 일자리를 구한 이후 아직 근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너무 헤프게 썼다. 월급은커녕 일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한창 그림 그릴 시절, 나는 가난한 스크루지마냥 돈을 아꼈다. 밖에서 사먹는 비용이 아까워 도시락을 싸고 다녔고 교통비와 담배 값, 재료 값, 데이트 비용 외에는 큰 지출이 없었다. 아마 지금 지출이 늘어난 이유는 데이트 비용이 더 이상 나가지 않고 직장이 생겼다는 이유일 게다. 그러다보니 낡은 옷들과 망가진 이빨, 피부 등이 눈에 들어온 것 같다. 지금은 전자제품에 대한 큰 관심이 없어서 다행이다. 일을 시작하고 여태 나에게 들이지 못한 돈들을 다 치루면 슬슬 다시 돈을 아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벌써 몇 달 뒤의 일들까지 생각하면 사실 너무 피곤하다. 하지만 그만큼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은 기분이다. 외적, 지적으로 자기개발도 많이 하고 싶고 더 세련된 사람이 되고 싶다. 2년간 우울의 터널을 건너면서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낭비하기 싫어도 당장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답답한 상태에서 나는 너무 괴로웠다. 그렇기에 지금 주어진 환경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힘든 시기동안 함께 해주다가 멀어진 전 여자 친구에게 항상 미안하다. 헤어진 지 한 달 반, 아직 잊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30분 끝,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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