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4

by 와이와이

2021.11.24.


오늘은 몸이 너무 으스스하다. 너무 춥다. 겨울이 싫다. 옛날에는 옷을 껴입는 게 좋아서 그런 포근함 때문에 겨울을 좋아했던 것 같았는데, 최근 몇 년간 추위를 버티는 게 너무 힘들다. 차라리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을 쐬는 여름이 나은 것 같다. 옷 입기도 훨씬 단순하고. 겨울이라고 특별히 복잡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겹 껴입는 자체가 번거로운 느낌이랄까. 그리고 요즘 밤낮이 바뀐 생활패턴을 제대로 바꾸려고 하다 보니 더 피곤해지는 느낌이다. 잠이 잘 안 깨고 밤엔 더 피곤하고. 일을 시작하면 패턴을 돌리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관건은 얼마나 개운하고 부지런한 하루를 보낼 지다. 천성적으로 게으르기 때문에 걱정도 된다. 하지만 마냥 게으르게 사는 게 얼마나 비루한 짓인지 잘 안다. 우울하고 좀먹는 기분. 차라리 피곤해도 보람찬 하루를 보내는 것이 행복하지. 능동적으로 잘 해낼 자신이 없으면 수동적으로라도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나은 것 같다. 그런 환경 속에 있을 때 해낼 수 있는 일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잘 되든 안 되든 바쁜 시간과 과정이 언젠가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이번에 일을 구한 것도 그렇다. 마음이 작업에서 멀어졌음에도 결국 여태 해왔던 것들 덕분에 구직할 수 있었다. 되게 웃기다. 더 좋은 기회들이 왔을 때는 다 걷어 차놓고 막상 그 기회가 간절해지는 상태가 되었던 것도, 그만두고 멀어지고자 했던 과거의 일들이 현재를 도와주었던 것도. 그러니까 결국엔 단순한 해답인 것이다. 무엇을 하더라도 일단 열심히 시간을 보내면 언젠가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그것들이 나를 도와준다는 것. 가만히만 있으면 정말 낡은 가마니가 된다는 것.

과거 겨울을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온 몸을 추위로부터 보호한 상태에서 그림 그리는 시간이 좋았던 것이다. 몸이 추위로부터 보호받는 기분이 안정감을 주었다. 학부 졸업전시가 끝났던 18년도 겨울. 19년 1월 작업실을 구하기 직전, 아직 학생일 당시 몇 십장의 교양 자료들이 쓸모없는 이면지가 되었고 따뜻한 방에서 그 종이들을 펜으로 채웠었다. 그 당시에 추상 선 드로잉에 매료되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매료되어 있었고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합되어 만들어낸 커다랗고 풍부한 그리움의 감정을 추상 공간에 담아내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그 당시부터일까 나는 ‘관계’를 주요 소재로 삼기 시작했다. 사회 고발 -> 나는 누구인가 -> 관계로 이어지는 그림 소재의 변화에서 ‘관계’는 사회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돌이키게 하는 효과적이고 고마운 키워드였다. 나는 생각보다 타인의 시선을 중요하게 받아드린다는 성격이란 것을 그 때 알았다. 지금은 관계에 대해 상당히 쿨해진 느낌이지만 당시에는 훨씬 섬세하고 커다랗게 느꼈었다. 때문에 많이 아파하고 괴로워했다. 나의 잘못인 것들 투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자존감도 많이 떨어지게 된 것 같다. 결국 ‘관계’ 키워드 덕분에 자신을 잘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게 된 것이다. 나를 나로 인정하고 현실을 마주하는 감각을 기르게 된 것도 후로 3년이나 걸렸네.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나는 내 안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타인을 갈망하며 자신을 갉아먹었다. 그놈의 인정욕. 내가 나를 인정하게 만드는 수단으로서 그림이 타인이 나를 인정하도록 만들어주는 수단이 되었고 그 것이 미치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평가의 기준은 내가 아니라 타인에게 있었고 그림 한 장에 천당과 지옥을 쉽사리 오가는 게 일상이 되었던 듯했다. 재미있는 것은 가장 깊숙이 들어간 동굴의 면면으로부터 밖에 나올 때의 그림이 그 전과는 달라진 점이다. 가장 우울해진 나는 타인을 위한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타인에게 다가설 용기마저 없어진 나는 나를 위한 그림을 비로소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일까 그림 속에는 타인을 증오하는 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 나에게 폭력적인 타인을 그렸고 나를 뒷담 하는 그들을 그렸다. 그리고 그들을 욕하는 나를 그렸다. 또 나를 사랑해준 사람들을 그렸다. 그림 안에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 그들과의 시간과 나를 괴롭혔던 사람, 그들과의 시간을 드러냈다. 그런 그림이 나타난 후 좀 더 시야의 폭을 넓혀서 관계의 장면들을 상상해 그리기 시작했다. 의심하는 사람과 의심받는 대상의 풍경, 가스라이팅 하는/당하는 풍경, 생각하는 풍경, 희롱하는 풍경 등. 표현의 목적으로 두는 감정은 여태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되 그려지는 장면은 만화나 일러스트의 형식을 차용해 가볍고 재치 있도록 만들었다. 무거운 주제와 가벼운 표면은 그림을 그리는/보는 재미를 만들어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써보니 자화자찬으로 보이지만, 나는 나의 마지막 그림들이 비록 전시되진 못했을지언정 마음에 든다. 신나게 글을 쓰다 보니 30분이 끝났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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