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1.
하청이나 다름없다. 아르바이트로 하는 일은. 웹툰 어시스트를 한다. 이 일이 어딘지 모르게 힙해 보인다. 코로나 시대에, 인터넷만 있으면 볼 수 있는, 비대면 사회에 적합한 형태의 매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드라마나 영화화가 되기도 한다. 수출은 물론이고.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호응하는 산업에서 아주아주 작은 파이를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다. 이 일은 장점이 참 많다. 아이패드만 있으면 장소의 구애를 특별히 받지 않는다는 점, 앉아서 한다는 점. 또, 일을 하면서 귀가 심심하지 않도록 무언가 자유롭게 들을 수 있다는 점. 그런 점들이 매력적인 일이다. 특히 내가 맡은 파트는 방법만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노가다기 때문에, 머리 쓸 일이 없는 점 또한 장점이겠다. 듣고 싶은 거 오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일이다. 이런 일 흔하지 않다. 새삼스럽게 여태 동적인 일과 정적인 일 모두 가리지 않고 해왔다는 게 느껴진다.
하청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는 사실이다. 일의 주도성이 나에게 없다. 작가의 일이고 나는 거기서 기생하는 톱니바퀴 하나일 뿐. 그래서 일은 예상지 못한 시점과 알 수 없는 양을 갖고 무작위하게 튀어 나온다. 오늘 글 쓰는 시간이 늦어진 것도, 이 탓이다. 이번엔 업무량이 가히 폭포 수준이랄까. 아침, 겨우 뜬 눈으로 일이 들어왔다는 카톡을 받았다. 평소에는 며칠에 걸쳐 할 일들이 적당한 양으로 조금씩 들어오지만, 이번엔 거대하게 부풀어진 큰 눈덩이가 굴러오는 느낌이었다. 마감도 촉박해서 촉구의 얘기도 함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저녁 일정을 바꿨다. 퇴근 후 또 업무라니. 뭐 사실 일이 많아서 힘든 건 행복한 일이다. 일이 없을 때, 일을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을 때 다가오는 괴로움은 말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다. 차라리 아무리 피곤해도 할 일이 있는 게 행복한 거다.
일정이 틀어지고, 급하게 마감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수면 패턴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이렇게 되면 너무 늦게 자버리는 꼴이지. 그래서 이렇게 프리랜서 밑에서 하청으로 일하기는 여러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단점이 크다. 나의 생활이 일을 주는 사람으로부터 좋든 싫든 영향을 받으니, 갑작스런 명령조 통보에 복종해야만 하는 상황이니까. 근데 뭐 이런 경우의 일들 다른 업종에도 많긴 하겠다. 경찰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일정이 수시로 바뀌는 경우가 있어보였다. 딱 이런 느낌. 이해, 인정하지만 피곤함에 순간적으로 짜증나는 것. 지금 너무 피곤하고 그런 상태다. 그래도, 감사해야지. 연재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이 일이 갖고 있는 매력과 장점을 최대한 만끽해야지.
요즘 왠지 그림이 차미 그리고 싶다. 그래봤자 하도 작업한 지 오래되어서 갈피도 못 잡고 조악한 결과물을 보고 실망 할 테지만. 어제 일기에서도 이런 얘기를 한 것 같은데, 디지털 매체로 그리는 게 조금 지루해졌다. 다양한 편리가 있지만 오히려 노이즈가 없어서, 매끈해서 그런 듯하다. 손으로 만들어낸 물질로서 그림이 손맛이나 고생이 녹아든 과정 때문인지 캔버스 자체로 감정이 솟구치는 것만 같다. 물질이기 때문에 갖는 가치와 고루함, 슬픔, 비루함. 뭔가 끊어내고 싶다가도 그럴 수 없는 질긴 인연 같다. 개가 찼지만 점점 차인 것만 같은 이별같이, 회화는 항상 마음 안에서 이상하게 일정한 모습으로 서있는 것만 같다. 말이 너무 주관적이다. 이 이야긴 여기서 그만해도 좋을 것 같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사무실에 사람이 없어 만들기 수업이 진행됐다. 아무래도 시끄러울 수 있는 만들기 실습 시간이었는데, 주말로 일정이 짜여 있어서 교육 선생님께 고마웠다. 30분 정도 재료 소개와 안전 교육을 받고 세 시간 정도 만들기에 몰입했다. 글루건부터 시작해 낯선 재료들이 많았고 가능한 모두 사용해보려고 노력했다. 물론 나의 조악한 작품에 대단하게 많은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니지만. 나로서는 나의 능력을 생각보다 많이 발휘한 기분이었다. 그리기보다 만들기가 낯설었다. 그래서 처음엔 더 막막했다. 소재는 기차로, 자석을 응용해보자는 막연한 계획을 세우고 왔지만 시작하고 10분도 되지 않아 틀어져버렸다. 자석의 힘이 생각보다 약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조악한 실력을 갖고 판단해보았을 때 어려워지는 부분도 생겼다. 그렇다고 말도 안 되게 난이도가 높다는 말은 아니다. 시간과 노력이 충분이 들어가면 퀄리티를 높이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너무 졸려서 눈을 껌뻑거리는 사이에 30분이 흘렀다.
글의 마무리를 맺지 못해 아쉽지만 지금은 죽을 것만 같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