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으면, 다시 켜질 수 없다
아홉시가 되면, 나는 잠시 꺼진다
하루는 새벽 여섯 시에 시작되지만, 진짜로 끝나는 건 저녁 아홉 시다.
열 살 막내가 잠드는 순간, 내 하루도 조용히 꺼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막내 아침을 챙기고, 설거지며 청소기를 돌리다 보면
출근 전부터 하루의 절반쯤은 이미 닳아 있다.
나는 새벽에 도착한 택배 상자를 뜯는다.
그리고 상자 속에서 냉동 블루베리, 생닭, 상추를 꺼내 냉장고에 넣는다.
오늘은 비가 와서 장화를 꺼냈다.
“나중에 학교갈 때 우산 잘 써, 물웅덩이 밟지 말고.”
이윽고 교실로 들어선다.
나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아이들과 웃고, 울고, 말하고, 기다리고, 다독인다.
점심시간이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고,
내가 쏟아낸 말과 마음이 뒤섞여 저녁 무렵엔 지쳤다 못해 허전해진다.
집에 돌아오면 또 다른 아이가 기다린다.
막내와 저녁을 먹고, 오늘 있었던 이야기들을 듣고, 숙제를 봐주고, 가방을 정리해주고,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를 열 번쯤 반복하다 보면, 드디어 집 안이 조용해진다.
거실 불이 꺼지고, 세상이 일시정지된 것처럼 고요해진다.
방금 전까지 넘쳐나던 말들이 사라지고, 내 안에는 말 대신 한숨 하나가 들어앉는다.
그저 가만히 앉아 있다가, 문득 눈을 감는다.
이 시간이 되면 나는 엄마이기를 잠시 내려놓는다.
아내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다. 그냥 나.
아무 역할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시간.
그조차 첫째나 둘째가 나를 부르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 짧은 휴식이다.
마흔한 살에 다시 시작된 육아는 쉰 살의 밤 아홉 시에 나를 꺼내고, 끄고, 눕힌다.
처음엔 그 시간이 슬펐다.
나는 왜 이렇게 쉽게 고장이 나는 걸까.
왜 이토록 빨리 꺼져버리는 걸까.
그런데 반복되는 이 ‘꺼짐’이 오히려 나를 다시 살게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꺼지지 않으면 충전할 수 없고, 충전하지 않으면 내일 아이 앞에서 웃을 수 없다는 걸
나는 열 살짜리 아이에게 배우고 있다.
아이의 하루가 끝나고, 내 하루도 멈춘다.
하지만 꺼졌다고 끝난 건 아니다.
그건 숨 고르기다.
다시 ‘엄마’라는 이름으로 일어서기 위한 조용한 재시작이다.
엄마는 매일 밤, 그렇게 스스로 꺼졌다가 다시 켜진다.
무음으로 작동하는 마음의 전원 버튼을 누르며,
나는 오늘도 아홉 시에 잠시 꺼진다.
느리게 피어도 향기 나는 삶을 꿈꾸는 ‘느린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