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 차: 왜 인간은 식욕이 있는가
솔직히 말하면, 시작은 단순했다.
“그냥 5kg만 빼볼까?”
여름이 다가오던 4월, 거울 앞에 서서 괜히 그런 생각을 했다.
청바지가 허벅지에서 딱 걸리던 순간이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청바지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네가 무거운 거야, 이건 네 사이즈 아니야." 라고 소리 지르는 느낌.
참고로 나는 원래 다이어트 같은 거 믿지 않는 쪽이었다.
그냥 내 몸은 이렇고, 나는 나니까. 당당하고 건강하면 됐지, 뭐.
하지만 그날 청바지 앞에서 내 자존심이 조용히 박살 났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자신이 날 무시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딱 5kg만. 이거 빼고 다시 먹고 살자.
진짜, 딱 5kg만.
어릴 땐 생각했다.
“스무 살이 되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예쁠 거야.”
“스물셋이 되면, 사랑도 일도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겠지.”
“스물다섯이 되면, 진짜 어른이 되어 있을 거야.”
하지만 현실의 스물다섯은…
회의실에서 자주 목이 말랐고, 엘리베이터 거울 앞에서는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내가 이 모습으로 괜찮은 걸까?’
‘사람들이 내 얼굴이 아니라 몸을 먼저 보진 않을까?’
‘내가 사랑받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머릿속을 지나갔다.
내 안에는 늘 미뤄진 변명과 작아진 자존감이 공존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친구들과 찍은 사진 속 내 얼굴이 너무 동그래서,
몇 시간 동안 휴대폰 앨범을 들여다보다가 다 지워버렸다.
어느순간부터 셀카로 가득했던 갤러리에는 음식사진, 키우는 강아지 사진, 웃긴내용이 담긴 캡쳐사진 들 뿐이었다.
한 번은 엄마가 무심코 말했다.
“넌 눈은 참 예쁜데… 살만 조금 빠지면 완전 예쁠 듯.”
그 말이 농담인 줄 알면서도, 마음 한쪽이 스르륵 꺼져버렸다.
거울을 보면 그 말이 자꾸 되새김질되었다.
예쁜데 ‘조금만 빠지면’.
괜찮은데 ‘다이어트만 하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된 건.
셀카를 찍을 땐 무조건 얼굴을 가릴 각도를 찾았고,
밝은 색 옷은 사지도 않았다.
사진 찍는 게 싫어졌고, 연애라는 단어가 나오는 대화엔 침묵했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내가 나를 미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꾸짖고, 깎아내리고, 포기했다.
결심은 아주 조용하게 찾아왔다.
스물다섯 생일날, 조용한 카페에 혼자 앉아있었다.
초도 없이 나온 작은 조각 케이크를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나는 왜 지금 내 생일인데도, 내가 축하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걸까?’
이게 단지 살 때문일까?
아니다.
나는 내가 나를 계속 외면한 탓이었다.
거울도 피하고, 사진도 피하고, 사람들의 시선도 피한 나.
하지만 진짜 피한 건, 나 자신의 가능성이었다.
나는 나를 안고 살아야 하는데,
그동안 너무 오래 외면했구나.
사랑해줘야 할 사람에게, 가장 미안한 사람이 되어버렸구나.
그날,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자.”
“지금 이대로도 괜찮지만, 더 예뻐지고 싶은 내 마음을 무시하지 말자.”
그게 나의 다이어트의 시작이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나에게 보여주기 위한 변화였다.
결심을 하고 난 후 운동복을 샀다. 원래 초보자에겐 장비빨이 중요한 만큼 나에게는 운동에 관심을 두기 위한 도구가 필요했다. 핑크, 연보라, 갈색, 검정, 베이지 등등 마치 다리가 10개는 있는 사람마냥 폭풍 같은 레깅스 쇼핑을 마친 후 유튜브에 ‘홈트 10분 운동’을 검색해서 매트 위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2분 후, 바닥에 장렬히 전사했다.
“아 이건 사람 운동이 아닌데?”
엎드린 채로 ‘내일부터 진짜 한다’는 메모를 작성했다.
식단도 바꿨다.
닭가슴살, 현미밥, 채소, 물.
첫날은 나름 뿌듯했다.
둘째 날은… 라면 국물 냄새에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배에서 얼른 탄수화물을 채워넣으라는 아우성이 울려댔다. 바다에서 들릴법한 우렁찬 뱃고동소리가 인간의 배에서 들릴 수 있는건가? 억지로 무시하며 꾹 참았다.
셋째 날엔 꿈에서 피자를 먹었다.
넷째 날엔 울면서 풀을 씹었다.
그때 깨달았다.
식욕이란 건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망이며, 마치 전 남친처럼 자꾸 돌아온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