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비밀
이성두︱시인᠊수필가
떠난다는 것, 여행, 단어만으로도 설렌다. 가끔은 틈을 내어 훌훌히 떠나고 싶은 것은 나만 그럴까?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런 날 좌도 우도 보지 않고 그냥 앞만 보고 쭉쭉 세상 끝으로 가 보고 싶다.
살면서 차곡차곡 쌓아 온 가난한 인격의 허울을 벗어 버리고 말간 속이 가는 대로 내 버려두고 싶다. 그런 날이면 내 깊은 체험으로 자리한 감각적 심상(心想) 속의 여리고 어린, 아주 어린 자신을 불러내어 톡톡 튀면서 다니는 개구쟁이가 되고 싶다.
그렇다. 그냥 장난꾸러기 아이로 변신하고 싶다. 몸이 아니면 마음으로, 너에게 나에게 사랑한다고 마구 말해도, 너에게 나에게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실수를 연발해도, 짓궂은 행동을 마구마구 해도, 차마 용서가 되는 그런 아이로 살자.
너나 나나 모두 한정된 조건 속에서 끝내 기억으로 돌아가는 원점 회기의 원칙, 고무줄로 매인 처지의 나날들, 뛰었다가도 곧장 떨어지는 널판 위의 세상......
아아, 가끔은 이 한계 속에서 탈피하고 싶지 않은가?
어떤 조건이든 어떤 상황이든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 나도 내 속에 들어앉은 억압의 갑과 을의 모습으로 변형의 삶을 살아왔지 않는가.
화려한 권력을 훌훌 털어버리는 나무처럼 잎을 털자, 놓자, 해방 시키자.
그런즉 번민의 시간이 익어, 창보다 더 강한 청춘의 아이가 태어나는 것 아닌가.
경직으로 똘똘 뭉쳐진, 아예 습관이 변이되어 살이 되어 버린 비곗덩어리를 녹여내야 한다.
자, 딱딱하게 굳어있는 고정관념을 주물럭주물럭 주무르자. 스멀스멀하게 녹여내자.
입 안에 넣으면 보드랍고 달콤한, 그저 살살 녹아버리는 마시멜로 같은 여운을 남기자.
내 젊은 날, 흥분으로 날개 단 날들의 어울림을 기억하지 않는가. 여럿이 어울린 웃음과 소리가 가득한 여정(旅情)에 올라타자. 그리고 팔을 휘저어 바람의 저항을 찢어 버리자. 별세상만큼이나 행복에 못 견디어 포옹하고 마는 그런 사랑으로 가자.
가자, 가서 고민과 걱정과 번뇌도 없고 오직 기쁨과 웃음과 행복만 가득한 시간으로 이동하자. 때로는 그것이 삶의 마디 같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마저도 추억이란 단어로 남게 될 것이리니.
그래. 주저앉아 사는 게 여정(旅程)이라고?
보행장애인의 세계여행기를 읽은 적 있다. 차라리 그에게 부러움의 박수를 보낸 적이 있다. 그와 같이 일어서는 용기를 보라.
익숙한 합리화는 습관의 산물일 뿐이다. 비겁한 변명 따위는 버리자. 슬며시 고개 숙여 변명 따위를 조몰락거리지 말자. 그냥 어린아이가 되어 풍선과 솜사탕을 들고 다니고 뻥 과자와 아이스크림도 핥으며, 그렇게 살아 보자.
사는 것이 저마다 다양한 무늬의 삶이라 우긴다지만, 나만 흔하지 않고 기약 없는 구금(拘禁)이라고 변명하지 말자. 더운 바람 후우 후우 품어내는 그 답답한 밀폐를 파괴하자.
며칠이라도 툴툴 털고 떠나보자. 푸른 하늘의 군조(群鳥)처럼 훨훨훨 자유롭게 날아보자. 내 젊은 날을 찾아, 내 지나온 시절을 찾아, 따뜻한 곳, 그 아래로 아래로 가자. 늙은 미래를 미리 엿보기라도 하듯 아픈 소식 먼저 전하는 위로, 위로도 가 보자.
공감으로 뜨겁던 무리 들이여. 그립던 시절을 꿀꺽 삼키며 뱉어낸 너의 젊은 생각이 멋있지 않는가.
몇 년 젊은 날만 해도 순발력 있는 언어로 뛰었던 그대들 아닌가? 그런데 왜, 침묵하는가. 무엇 때문에 시무룩한 침묵을 선택하는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 익숙해졌다는 것인가. 무디어진 칼 같은 것인가?
호기심도 줄어 관심도 애증도 사랑도 사라지고 없구나.
묵묵부답뿐, 멍한 생각만 질겅질겅 여물 씹듯 언어를 버리고 있다. 눈만 굴리는 소처럼.
나도 그런 눈인가? 그런 눈이 왠지 슬프게 보인다.
사랑한다고 말하자. 아프면 아픈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온통 사랑이고 싶다고 말하자. 지금 어떤 모습이라도 상관없다. 누가 뭐라고 하든 그냥 세상을 사랑하자. 행복은 내 마음의 거울이다. 그것이 행복한 비밀이다. 낮달이 기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