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이성두︱시인᠊수필가


목요일 오후 퇴원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어쩌면 병원이 마치 수용소 같은 형태로 변절된 이 병실을 지켜야 할 만큼 여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어느 나이 든 느긋한 사람처럼 여유 있는 시간을 체념한 것도 아니다. 곡간 속에 꽉꽉 채워진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많은 시간을 장돌뱅이 전대 차듯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 더는 더 이상 폐쇄된 공간에서 용만 쓰고 시간을 죽이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인 거다.

머리 싸멘 공부맨이기 보다 덜 배웠지만 가까이 있는 자식이 부모에겐 더 위로나 효도가 될지도 모르는 것처럼,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키는 것처럼, 이 시대, 이 시간을 지키는 현재의 자유를 선택하고 만 거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도대체 어떻게 변절 되어 갈지도 모르는 이 세상... 지금, 이 순간이 자유롭고 행복해야 될것 아니겠는가?

미래의 보장되지 못한 즐거움, 행복? 그런 착시 된 눈으로 과거 내 부모님께 효도할 기회조차 잃어버리고 한때 남몰래 눈물 흘렸던 것처럼 또다시 후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홍콩은 강력한 국가보안법이 탄생하여 중국은 홍콩을 일국양제에서 포기했고, 우리는 코로나19의 확산에 교회 예배나 집회조차도 통제하는 그런 긴박한 세상이건만 아내와 나는 더 이상 우리의 작은 자유조차 구속케 되는 현실이 밉고 싫었다.

차라리 여유 있는 시간으로 즐거움을 만들며 운동을 놀이로, 산보로, 산책으로 변형시켜 우리의 별난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한 것이다.

아내의 뇌출혈로 쓰러진 2018년 10월 17일로부터 이후 수일 동안에는 절망적이었던 시간이었다.

뇌출혈 수술한 환자는 2~3일만 지나도 일반 병실로 올라가 안정을 취하는데 아내는 그렇질 못했다. 어쩌면 아내를 포기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불안감에, 절망감에 가슴 조이며 조이면서 주치의의 눈치만 보면서 24시간 대기해야만 했다. 끝내 간절했던 기도의 덕분으로 처절하고 조마조마한 시간을 극복하여 21일 만에 겨우 중환자실을 벗어났고 또 일반 병실에서 일주일을 치료하고서야 재활 전문병원인 남산병원으로 오게 된 것이다.

스스로 호흡조차도 할 수 없는 환자가 큰 산소통을 휠체어 뒤에 질질 끌며 재활병원에 입원했다. 그때의 그 처연함은 기억 자체만으로도 괴로운 일이다. 도대체, 호흡도 제대로 못 하는 와상상태의 환자를 조급하게 재활하라니...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매일 밤마다 호흡의 불안정으로 밤새 잠 못 자며 간병했던 그 시간에 한 달이 넘어서서야 겨우 안정을 찾았다.

그 호흡의 안정이 오고 나서부터는 아내의 섬망과 망상이란 현상이 시작되었다. 밤마다 천장에 뱀에 기어 다닌다고, 누가 칼로 죽이러 온다고, 누가 왼쪽 팔을 끊어서 휠체어 가방에 넣어 뒀다는 등 말이 안 되는 섬망과 망상이 시작된 것이다. 도저히 그대로 방치할 수가 없어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된 것이다.

치료 초기에 있었던 이야기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을 자신의 논리로 자신의 잘못된 시야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의사들은 뇌출혈 발병 후 6개월이 지나면 재활의 가능성이 점차로 줄어든다고 했다. 그러니 그 말에 내 조급한 마음이 생겼고 또 그런 문제로 신경을 참 많이도 썼던 것 같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내는 몸무게가 5kg이 늘었고 나는 5kg이 빠졌다. 병원에서는 몸무게를 줄이라고 하지만 일단 불어난 몸무게를 줄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먹는 양도 아기들 먹는 수준이건만 살은 빠지질 않는다. 하지만 지난 일들을 기억해 보면 아내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기쁘기 짝이 없다. 그런 시련의 시간도 지나가고 2020년 7월 2일, 20개월의 입원 치료 기간이 지나고서야 퇴원을 결정한 것이다.

퇴원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다 나은 것 같은 착각에 빠져 혹여 심리적으로 게을러질까 봐 부지런히 집에서 운동 아닌 운동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고 이제는 일주일에 두 차례씩 남산재활병원으로 가서 통원 치료를 하고 있다.

일어서질 못하고 걷지 못하고 해서 안타까움이야 있지만, 아직 되지 않고 있는 일을 미리 불행이라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 같다. 그나마 지난날들을 생각해 보면 지금은 너무나... 많이 좋아져 가고 있지 않은가. 정말 많이 좋아진 아내가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럽다. 그나마 나와 함께 있을 수 있고 나와 함께 대화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정말 가슴 벅찰 따름이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 중 개그맨 부부들의 이야기를 담은 “1호가 될 수 없어”란 프로그램에 최양락씨의 친구인 최수종씨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부부관계나 가족 관계에 대한 소견을 피력했다. 그는 결혼 후 한 번도 아내와 화낸 적도 싸운 적도 없다고 했다. 집에서는 온 가족이 서로 존중하는 의미에서 존댓말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날의 말 중에 인상적인 말이 있어, 여기 소개하고자 한다. “가족은 신이 주신 선물이다.”라고 했다. 선물은 기쁨이다. 결국 가족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기쁨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렇다 가족은 기쁨이다. 가족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그러니 아내는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내게는 기쁨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장애등급 1급, 요양등급 2급, 준 와상 상태, 좌측 편마비... 이 낯선 단어들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며 또한 이 상태의 아내는 항상 보호자가 옆에 있어야 한다. 스스로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아내 가까이에서 누군가 함께 생활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자체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아내는 운동을 힘겨워 했었고 나는 운동을 억척스럽게 시켰다. 때때로 재활 운동에 게을리하는 마음이거나, 내 마음에 차지 않는 얄팍한 운동을 하는 때에는 여지없이 짜증과 신경질을 부렸으니, 자연히 그때마다 참으로 많이 다투었다. 그런 문제로 신경을 참 많이도 썼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그런 생각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가족은 서로 존재 자체만이라도 기쁨이고 행복이라는 것임을 깊이 인식한다. 아내의 재활을 위한 병원에서의 생활이 어쩌면 내 잘못된 인식이 꼭꼭 갇힌 상태로 있었던 시간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내보다 내가 비록 육신은 멀쩡하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무한히 부족한 그런 장애인이지 않았나 라고 생각해 본다.

아내와 함께 퇴원했듯이 나의 잘못된 생각도 바르게 하여 병원으로부터 퇴원시켜야 한다. 이제 건전한 생각으로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기뻐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하여 퇴원하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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