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노마드

그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성두︱시인᠊수필가


해피 노마드

내가 아는 지인 중에 '한원'(본명 한상섭)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전남대학교 인문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과 전공한 괴팍스러운 사람이다. 나는 늘 이 사람을 소탈한 괴짜라고 놀리곤 했다. 그는 심할 정도의 신랄한 비판을 맛깔스럽게 해대는 희한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적 가려움을 긁는 정도도 상대가 삼복더위에 청량음료처럼 시원할 정도였다.

작년 5월 어느 날 그는 '김인자'의 여행산문집 『그린 노마드』를 읽고는 코리타분한 삶 속에 유폐되어있는 자신을 당장에 해방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떠나자’라고 했다. 그랬던 그의 핸드폰으로 어느 날 카톡이 왔다. 자신의 핸드폰으로 자신의 부고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죽음이라 핸드폰에 있는 연락처로 그 아들이 카톡을 보낸 것이다. 향년 71세다.

그는 해피 노마드(happy nomade)를 향한 마음만 먹고 실행하지도 못하고 떠났다. 아니 어쩌면 영원한 해피 노마드노마드(happy nomade)를 실행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제 남은 것은 후회도 미련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남은 자의 슬픔뿐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 뿐이다.

“님은 갔습니다”의 '한용운'도 가고 “해피 노마드”를 추앙하던 '한원'도 갔다. 오늘 또 다른 이가 가고 어느 누군가 또 갈 것이다.

그는 마음먹은 그것을 실행하지도 못하고 그때 그 마음만 공허에 남았을 것이다. 다수는 그렇게, 이렇게 생각만으로 끝나는 것일 것이다. 그래. 사는 일이 그렇가. 생각만으로는 늦다, 더 늦기 전에 뭔가를 해야 한다. 그가 이미 결정한 그 느낌대로 우리는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 떠나자. 가 보고 싶었던 곳을 가자. 아니다, 가 봤던 곳이라도 좋다.

팍팍한 메카니즘에 찌든 내 애착의 시간에게 자유를 선물하자.

더 아름다운 자유를 향하는 유목민처럼, 딱딱하고 메마른 일상에서 단 하루라도 벗어나 보자. 훨훨훨 날아보자.

술도 마시지 못하는 내가 가끔 목구멍마저도 칼칼한 것은 어쩌면 채우지 못한 무의식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던 갈망 때문인지도 모른다. 놓아주자, 몸도 마음도 차꼬(shackles)같은 구속에서 풀어 놓아보자. 언젠가 다녀온 백야의 나라 러시아 상트페르부르크에 다시 가서 스미노프(Smirnoff) 한 잔으로 목, 가슴을 태워도 좋고, 중국 산둥성에서 달콤하니 황홀한 맛 공부가주(孔府家酒) 한 잔에 황홀해해도 좋고, 도쿄의 긴자 어느 골목 주점에서 따뜻한 사케(酒) 한 잔으로 청춘을 소환해도 좋다.

당장 내 속에 고착되어있는 부정적 단어들을 뱉어내 버리고, 가족과 사회와의 끈적끈적한 관계를 일시 해지하고서 하루라도 자유로워 보자. 오로지 육신은 가고 생각만 남는 일은 모두에게 있는 일이다. 192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의 극작가 겸 소설가인 '조지 버나드 쇼'의 유명한 묘비명이 떠오른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자유를 향한 유영을 하자. 눈빛만이 아닌 영혼까지도 흔들릴 수 있는 게 여행이다. 이미 이십여 년 전에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어느 광고 카피라이터를 소환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멋있지 않는가?

『나는 외과 의사다』, 『수술, 마지막 선택』의 저자이자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외과 교수인 '강구정 박사'와 마침 식사를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치유와 예술을 접합하는, 치유의 예술을 위한 깊은 고민을 발견한 그의 저서에서처럼 가슴에서도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의술을 예술에 승화시킨다는 것은 대단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틀 뒤 그도 나도 잠 오지 않는 현충일 밤이었다. 문득, 밤이 깊어 침묵뿐인데 이명 소리조차 놀라 도망가게 하는 카톡 소리가 왔다.

“내일, 아니 오늘 저는 스페인으로 열흘, 훌쩍 떠납니다. 역시 나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이른 아침 떠나야 하는데 쉽게 잠이 오지않아...”

그리고 몇 시간 뒤 훌쩍 떠났다. 일상에 맞물려 자신은 없고 일상만 남는 시간에서, 기필코 자신을 자신만의 절제 안에 두는 그의 결정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얼마나 멋진 선택인가?

아니, 아니, 결정을 숨도 쉬지 않고 결행한 용기에 존경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부럽다. 부러워만 할 것인가? 남은 우리 또한 떠나면 되는 일인데..

고개를 내밀어 세상을 살펴보자.

인디아나 존스, 알 포인트, 화양연화 등의 뒷이야기, 채 보이지 않는 아쉬움과 부스러기 이야기가 있는 곳도 좋다.

어디든 중요하지 않다. 그냥 자신에게 궤도를 이탈하는 자유를 허락하자. 그동안 뜨겁게 달구어 부풀렸던 자신을, 냉랭하게 식어버려 바람까지 다 빠진 뒤에서야 돌아보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떠나자.

한 계절이 늙기 전에, 내가 더 늙기 전에, 가자. 가!

자신의 가치 있는 시간은 나와 상대와 같이하면서일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과 소탈하게 어울려지는 것이다.

자! 가자, 넓은 세상으로 뛰쳐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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