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평론을 읽고

어느 시인의 시

계간 『문학평론』 제10집을 성창경 시인께서 보내주셨다.

뵌지가 몇 해가 되었는가? 그렇게 아스라한 마지막 그림자를 남기고 헤어진 추억도 생생하기만 하다.

300쪽이나 되는 계간지, 중후한 무게감을 느끼며 열었다


초대시인으로

김종근, 최용대, 오순덕, 성창경, 권영숙의 시가 실렸다.

그 중에 몇 편을 생각해 본다


「그지 같은 풍경에 돌을」

지겹기 그지없는/이 초저녁에/난 텔레비전도 끄고/거실에 불도 끄고/당신에게 편지를 쓴다/그간 안녕했는지?/그리고 강아지들은 별고 없는지/혹 당신은 행복한지?/ 광화문에서 시청 앞까지/이 그지 같은 풍경을 매일 매일 지나면서/그래도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폭망하지 않고 너무나 신기하여/미친 듯 마구 돌 던지고 싶은/저 푸른 깃발과 천막/것들 앞에서 한숨 쉬며/당신의 안부를 묻는 카톡 편지를 쓴다/홀로/쉰내 나는 막걸리를 후룩 후룩 들이키며

김종근의 「그지 같은 풍경에 돌을」 전문


'그지'라니, 마치 경상도 출신 같은 느낌이 성큼 들었는데, 충북 괴산 출생이다. 1982년 월간 시문학에 문덕수, 이원섭 추천으로 등단했다.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 프랑스 파리1대학 미술사 D.E.A과정 졸업 및동대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그는 왜 '쉰내 나는 막걸리를 후룩후룩 들이키며' 있을까?

저녁 마저도 지겨운 사간, 그는 고요를 선호한다. 떨어져 있는 당신과 안부를 다루고 있으나 아이들 이름은 나열되지 않는다.차라리 이름도 없는 강아지 안부를 궁금해 하고 있다.

작은 기대감으로 '혹 당신은 행복한지?'라고 묻는 장면에서는 차마 쓸쓸하기가 어둠 같다.

그는 그가 거주히는 것으로 유추되는 광화문 인근에서 날마다 시청까지를 왕래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 시대의 산만함조차 신기하다고 단정 짓고 있다. 보라! 사람, 사람들이 여기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미친 듯 마구 돌 던지고 싶은' 이 욕망을 모두가 억누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름의 자유로운, 그래서 쓸쓸함을 넌지시 '홀로'라고 힘주고 있는 것이다. 오롯이 그것만 한 행 속에 새기고 있다. 거기 '쉰내 나는 막걸리'가 사뭇 어울리면서 짠한 공감이 느껴진다.


「찬란했던 시절」

한때는 찬란했던 시절이 있었다/그 영광은 순식간에 사라졌다/분노와 슬픔이/그 영광을 집어 삼켰다/ 찬란했던 그 시절은/짧았던 봄날 같이/순식간에 지나갔다/분노와 슬픔은/한평생 동안 나를 괴롭혔다/악마처럼 우울한 나날들이/죽을 때까지 나를 괴롭혔으나/나는 굴복하지 않았다/이제는 그 찬란했던 시절 보다/더 큰 영광이 찾아왔다/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으로/회복 되었다/하나님의 아들로

성창경의 「찬란했던 시절」전문


그는 경남 마산 출신이다. 1975년 갯물동인에서 회장으로 활동했다.

1978년 월영문학상 시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본격적인 문단 활동은 1980년 서정주 시인의 추천으로 <시문학> <한국문학> 최우수 시로 당선 되었다. 이후 1985년에는 최동호 교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발표, 1988년에는 박재삼, 정진규, 김춘수 시인이 추천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였다.


그의 시의 배경은 아마 추측컨데 마산에서 민주항쟁의 현장에서 느낀 감정을 또렷하게 새기는 것 일 것이다. 필자가 알기에는 그 시절에 자유시를 창작하여 대중의 앞에서 자유민주에 대한 인식을 토하기도 하였으리라.

그가 청춘을 담보하여 얻은 아픔이 훈장처럼 자랑스럽다.

훈장처럼 보이는 상헌이 지워지지 않아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러니에 빠지기도 했으리라.

그것은 이 시 8행과 9행에서 직시하고 있다.

'분노와 슬픔은 한평생 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그것의 포상으로 지금은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으로/회복 되었다/하나님의 아들로'

과히 이보다 더 영광스런 상급이 어디 있을까?

그의 시 백합화에서도 그와 같은 서정이 엿보인다. 또한 이것은 말을 숨기고 순한 눈으로 일상에 임하는 대중에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짐이 과하지 않다.

'그대 고통이 끝나는곳에서/한송이 흰 뱁합화 피어나네'

다음은 성창경의 「백합화」이다.


그대 고통이 끝나는 곳에서/하이얀 백합화 피어나네/그대 막다른 골목의 어둠속에서/한송이 흰 백합화 피어나네/어두운 대지 위에/태양도 빛을 잃고/죽음과 고독이 휩쓰는 겨울/얼어 죽은 대지 위에서/숨죽이고 기다리던/그대 고통이 끝나는 날/부활의 아침이 열리네/그대 생명의 한 가운데서/두려움 이겨내고 꽃 피네/하늘 나라로 가는/길을 잃어버린 그대/기억 상실증에 걸린 계절/망각의 늪에서 울고 있을 때/홀연히 태양은 빛나고/부활의 아침이 열리네/그대 고통이 끝나는 곳에서/한송이 흰 백합화 피어나네

성창경의 「백합화」 전문


금실 좋은/자귀나무에 분홍 꽃 피니/아득한/그대의 괴색이/슬픈 환희다/오늘 지나가다/잠깐 머물기는/그대의 굄이/슬프게 아름다워서다/다 지난 일이다

신재실의「자귀나무 꽃 피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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