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약을 먹고는 하염없이 허물어지기에
나 또한 그래, 그렇게 허물어지는가
직접 먹어봐야겠다고,
당장 먹었습니다
엄살처럼 보이는 왜곡된 생각인 줄 알았기에 나도 먹었습니다
도대체 어떻단 말인지?
저 사람이 먹는데 나도 먹어, 먹어나 보자고 며칠을 따라 먹습니다
저 사람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
저 사람이 죽으면 나도 죽어도 된다고
(설마 죽기야 하겠냐만은)
나와는 상관없는 그 약을 마구
먹었습니다
한 이틀 지나니 노긋노긋해지는 몸
드디어, 스르르르르 나도 정신이 멍해지면서 내가 사라져 갔습니다.
정신이 없으면 육신이 어디 있건데
간다간다 잔다 온다 간다온다는 계획도 없이 마냥 나를 지우고 말았습니다.
그냥 잠잠히 사라지는 수평선 위의 점처럼, 끝내는 아스라히 사라졌습니다. 아마도 세상의 끝도 마치 이와 같으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이
기억이 지워지는 현상이었습니다.
멍하니 하룻밤이 어디로 가고
생소한 아침이 열렸습니다.
창문으로 어제란 세상은 이미
훨훨 날려가고 없고 다른 세상
다른 계절이 지키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벙한 상태로 어색한 문을 닫으니
그때야 내 공간이 스르르 자리를 내놓습니다.
밤새 다른 세상이 점령한 것이었습니다. 밤새 무엇이 들어와 무엇을 하고 간 건지 알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누군가 이 공간에 왔다가 머뭇머뭇 살다 간 모양입니다.
내 막내 딸도 살며시 내 옆자리에 누웠다가 갔다는 후문같은 허상만 남았습니다.
귀뜸이 있는 아침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우리의 삶과 죽음도 무릇 이렇게 자다가 깨어나지 못하는 것 같은 현상쯤 일진데, 별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나만 지워지는 것
내가 없으니 나는 모르는 세상일 뿐이겠지요.
죽고 난 이후에 모양이 이러니 저러니, 허헛하니 아무 소용없는 짓입니다.
있을 때 재미나고 보람되고 늘 웃는 사람으로 사는 것, 더 바람직한 것은 그저 좋은 사람으로 사는 것 그 뿐인 것입니다.
더불어 아끼고 사랑하고, 오직 설레는 세상으로 만드는 것뿐이 자기만의 최고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겠지요.
모두 사랑합시다. 추억을 많이 만들고 그런 죽음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순간이라도 아스라히ㅈ남는 그런 삶을 아름답게 행복하게 재미나게 남겨야겠지요.
끝날에는 깨달을 것입니다
어쩌면 돈도 명예도 지식도 더한 모든 것들도 한낱 보잘 것 없는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지난 추억이 떠오르는 순간들을
끄적끄적거려봅니다.
저 사진 곁으로 지나간 사람들이 무척 그립습니다.
내가 그렇듯 내가 그리워하는 그들도 가끔 나를 기억해 내겠지요.
만나지 못하는 사람, 그 틀만 남는 법입니다. 우리의 끝은 그런 것입니다.
사진으로 영상으로 생각으로 보이지도 않으며, 또 보이는 것만 남는 것이지요.
증거 할만한 소재만 남는 것이지요
그것 또한 하루살이 일년살이 십년살이 또는 영원히 남는 역사적인 근거이던가요.
나의 생각, 의식은 어디에 남는가
나의 행위는 어디에 남는가
내 지나온 근거를 꼬옥 끼인 사진으로 펼쳐 봅니다.
떠오르는 이름, 얼굴, 사건들
그들이 보는 그 속에 나는 있기나 한 걸까요?
내 사랑하던 여인은 나를 기억이나 할까요?
한때 둘도 없이 사랑한 친구, 그 친구도 나를 눈꼽 만큼이나 기억하고 있을까요. 모두 나만의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이제 나를 기억하는 흔적을 글이라도 마구 남기고 싶어집니다.
여기 저기, 나의 그림자든 흔적이든 마구마구 남기고 싶어집니다.
꿈결 같은 오늘, 허헛한 생각으로 주절주절거려 봅니다.
아직은 산 것인 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