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봉 시집 『그녀는 선수였어』

그녀는 선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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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봉 시집

시인의 말

가득하다/저 달빛처럼, 내 삶이//구름 속에 있거나/날아다닌다//이제 허공에 떠도는 꽃잎 모아/나의 집을 짓게 되었다//첫 집이어서 가슴 설렌다//가면 갈수록 적막한 /세상살이여!//나의 집에 들러/잠시라도 쉬어가는/벌 나비 있길᠁

2025년 가을 김창봉

1부 13편, 2부 13편, 3부 14편, 4부 13편, 5부 14편 총67편

제1부 인생 한판

너는 태어날 때부터 오광이더냐/뒤집고 흔드는 거야//광박 씌웠다고 하늘이 내 편 되는 것도/피박 썼다고 구름이 무너지진 않아//한 장이 모든 걸 말하진 않듯/인생 또한 한판에 결정되지 않아//희망의 패 절망의 패/먹고 먹히는 그 판때기 속에서//침침한 눈 비비며 뒷골 잡다 보면/피박도 쓰고 설사도 하는 거지 뭐//끝없는 손끝에 흥분과 스릴 거머쥔 채/한 장 한 장 쪼르다 보면//반드시 인생 한판/쓰리고 할 날 용코로 오거든!

「인생 한판」 전문

“너는 태어날 때부터 오광이더냐”

흔히 우리는 인생을 화투판에 비유하기도 한다. 시인은 비루한 세상에게 따지듯 묻고 있다. 눈앞에 일시적으로 보이는 현실에 좌지우지하지 말 것임을 직시하라고 한다. 살다 보면 광박도 피박도 쓰게 되지만 그것이 인생 모두를 흔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면 전화위복이 되는 기회가 온다고 한다. 실감하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시인은 자신 있게 말한다. ‘살아 본 자’의 체험 속에서 끌어내는 외침이라고.

“끝없는 손끝에 흥분과 스릴 거머쥔 채/한 장 한 장 쪼르다 보면//반드시 인생 한 판/쓰리고 할 날 용코로 오거든!”

여기에서 ‘용코로’는 ‘영락없이’를 속되게 쓰는 말이다. 즉, ‘조금도 틀림없이 맞다’는 말이다.

보라, 마지막 연에서의 도박의 은유로 인생을 통찰하는 저 결기를 보라.

체험하지 않으면 내놓을 수 없는 저 자신감을 여기 녹여놓은 것이다.

「석 잔」에서는 첫 연에서부터 ‘청춘 보낸 선술집’이라 했다. 시인은 소주의 맛을 인생의 맛에 비유하고 있다.

‘치솟는 물가/나락으로 떨어진 빈 지갑//막창처럼 씹히는/마르고 질긴 삶’이라 했다. 마르고 질긴 맛을 보았는가?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는 모 패스트푸드 광고 중에 그 회사의 카피 문구가 연상된다. 인생이란 살아 보니 그렇다고 술회하는 소리 같다. 맛본 자만의 자신감일 것이다.

텅텅 빈 지갑으로 소주 한 잔에 질긴 안주를 꾸역꾸역 씹고 있는 가난한 모습의 처절함을 씹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알기나 할까?

시인 정호성의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라는 시를 떠올리게 할 만큼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의 이 절절함의 인생을 바라보는 눈 뒤에 숨은 또 하나의 눈이 매력적이다.

‘코 고는 본처 몰래/술맛 한번 볼 거예요’ 라는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는 장면은 과히 한 인생을 호쾌하고도 남을 열정이 있기도 하다. 술과 여인을 탐미하는 마음이 엿보이는 것이다.

「월력에서 나온 여인」과 함께 살며시 술을 음미하고자 하는 욕구가 참으로 인간적이다.

넌, 내가 마누라와/각방 쓴 지 오래된 것 다 알지//무지무지 덥던/지난해 어느 날 밤이었어//옷 홀라당 벗어 던지고/침대에 누워 막 잠들려고 하는데//은밀히 다가와 예민한 곳 더듬어/찔러댄 그녀//절정 때마다/몸 뒤틀 수밖엔 없었지//달라지는 체위 능수능란한 테크닉/그녀는 선수였어//솔직히 놓치기 싫어 잡아보려고 했으나/그녀//황급히 모기장 밖으로 떠났어/난, 분홍 뒷모습만 바라보았을 뿐᠁//간질간질/온몸 복사꽃 터지는 밤

「그녀는 선수였어」 전문


이 시집의 제목으로 선정한 시다. 여름철이면 극성을 부리는 모기와 합방한 시간을 마치 애정행각쯤으로 비유하여 적나라하게 묘사한 시다. 야릇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묘사가 독특하다.

암컷 모기는 산란을 위해 사람이나 동물의 피를 빨아 단백질을 섭취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자연 생태계 속의 이야기, 여름날 밤의 일상을 문학적으로 풀어놓은 시인의 발상이 뜨겁다. 어쩌면 암컷 모기들의 품격을 높여놓은 김창봉 시인에게 세상의 모기들은 감사해야 할 것이다.

“야! 이놈들, 세상의 모기들아!”

김창봉 시인의 존재라도 느껴지거들랑 더 이상 더듬더듬 더듬지 말고 오히려 비벼대는 날갯짓이라 할지라도 뜨겁게 뜨겁게 박수를 보내라. 이제껏, 너희 생에 이처럼 품격 높여준 적 어디 있던가?

평소 ‘아픈 곳 알려주면/언제든 다른 사람의 것으로/슬쩍 바꿔치기해주겠다‘고 술 한잔하면서 어련히 농담 삼아 말하던 장의사 친구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추석을 맞아 그가 영면하고 있는 명당에 찾아가는 마음이 짠하게 느껴진다.

함께 즐겨 술 마시는 친구와의 정감 있는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연상 되는 것 같다. 술잔마다 도타운 우정의 꽃이 향기로 가득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눈 깜빡이는 사이에 1,300억 비트의 정보를 습득한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그 모든 것들은 기억이란 저장 장소에 쌓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찾아내거나 기억해 내지 못한다. 한편 최면술을 통하여 기억을 찾아온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입증된 바는 없다.

시인들 역시 숱하게 보고 체험한 기억을 불러다 시로 환치하거나 변용하여 시를 쓰기도 한다. 누구나의 머릿속에, 가슴 속에 있는 것들을 불러내어 시를 쓰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수훨 하지는 않다. 그런데도 술은 사람을 예민하고 센치하게 하는 경향이 있으니 시인은 술을 마심으로 인해 없던 시심을 불러내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시인들은 술을 즐겨 마시고 시를 노래하곤 한 것이다. 김소월, 박목월, 박용래, 천상병, 김춘수, 김규동 모두 술을 좋아하던 시인이다. 그들의 시 모두가 그들 기억 속의 감정을 시로 환치해 놓은 것이다. 술을 마시면서 영감을 얻고 또 술을 마시고 반짝이는 언어들을 토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시는 술과 아주 긴밀히 가까운 관계인 것임을 알 수 있고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다. 닫힌 시문(詩門)을 여는 문고리 같기도 한 것이다.

김창봉 시인도 애주가임을 몇몇 시에서 감히 단정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청매실 따라간 똘이」의 1연 3행에서도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아내 목소리’만 보아도 감지가 되는 부분이다. 얼마나 마셔댔으면 ‘너무한다’고 푸념했을까. 씁쓸하다.

「시눗대 소리」에서는 ‘와룡산 왼쪽 걸터앉아/이슬 한 잔’이라 고 신선놀음 했을 것이고 「추상화」에서는 ‘생수로 위장한 울대 축여가며 부르는 노래’를 생명수 같이 노래로 즐기곤 한 것이다. 또한 「월력에서 나온 여인」에서도 ‘코 고는 본처 몰래/술맛 한번 볼 거예요’라 아내 옆에 누워서까지 야릇하고 감미로운 술을 생각한 것이다. 「석 잔」에서는 ‘아침이면 이슬 한 잔, 점심에는 눈물 한 잔, 저녁에는 소주 한 잔’이라고 일상과 함께하는 술이고 술이 즉 인생 자체였던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아차, 하는 순간/별이 되어 별의 나라에서 살고 있다//겁박해 조지고 불러 조지고 미루어 조지는/단계별 과정 거쳐 자격증 받고 온 큰집//해가 뜨거나 구름이 산허리에 머물 때/천둥 치거나 비둘기 울어 댈 때//심지어 노을이 붉게 물들 때에도/별의 수 세고 세며 조지는 곳//의무적으로 머물러야 하는 기간/상당히 남았는데/여전히 조지키는 나날/가족이 있는 지구가 그리웠다//햇빛 없는 창살 너머/절망의 장미 가시 돋아나기 전/부처님께 손 편지 썼다//사월 초파일 별똥별 되어/생두부 맛보고 싶다고//어깨 너머 목 갸웃거리던 바람 하는 말/“설마, 그렇게 될까?/부처님 개종하시면 몰라도”

「큰집」 전문


갑작스러운 수감의 순간을 우주적 이미지로 치환하여 시작하는 이 시는 김창봉 시인의 직업적 산 경험사례를 초현실적인 전이로 표현하였다. ‘겁박해 조지고 불러 조지고 미루어 조지는’ 과정이 다소 폭력적이고 거칠다. 하지만 상당한 리얼리즘한 언어를 불러왔다는 것이 차라리 대담하게 보인다.

큰집에 사는 사람들은 사면복권을 희망으로 삼는다. ‘생두부 맛보고 싶다’는 것은 출옥을 향한 염원이다. 특히 마지막 연에서 찬 바람이 ‘부처님 개종하시면 몰라도’라는 짠한 유머스러움은 한국적 블랙 코메디의 정점이라 해도 나쁘지 않다.

이러한 느낌은 이어서 「사돈 자랑」에서도 찾아 느낄 수 있다. ‘무논 개구리처럼 몰려있는 할매들 비집고//늘 사돈 자랑하며 기죽이던 평산댁에게/실눈 내리깔며//“니, 내 사돈이 누군지 아나?” 참으로 해학적이고 유머스럽다.

「클라이밍」이란 주로 ‘암벽등반’ 행위를 일컫는 용어인데 여기에서는 주로 실내에서 행하는 운동이다. ‘초코 가루 하얗게 발라’라는 부분에 도달하면 화자의 일상으로 확실히 단정 짓게 된다.

「삼일천하」에서는 ‘내 몸은 내가 알아서 지켜야 한다는 신념 따라/우주 부동산 중개소에서 달 한 조각 계약했다’라고 밝힌다. 오랜 동거에서 얻은 문제로 인한 자가 처방이 시인의 단호한 성격의 한 부분을 보는 것 같다.

일본의 작가 ‘스기야마 유미꼬’의 2004년 발표한 저서, 『졸혼을 권함』에서 처음 사용한 졸혼이란 단어가 연상되는 부분이다. 만년이 되면 같이 사는 것 자체도 환타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수십 년을 살아봤으니 가끔은 고독도 외로움도 홀로 누릴 자유가 필요하니 ‘달 한 조각’을 계약했나 보다. 보라 저 단순한 실행력이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그래서 우둔한 티끌도 있으니 어쩌랴. 그래도 「삼일천하」로 끝나버린 일이지만.

암튼 그런 일상에서도 시적 탐구를 꾸준히 하는 모습이 범상하지 않다.

또한 시인 김창봉의 세상이 일반적인 사람보다 훨씬 광폭 적으로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꼬이는 스텝」과 「붉은 사슴의 피」와 시제만으로도 두 눈 번쩍 뜨게 한다. 그러한 긴장을 점진적으로 극대화하는 「집행」은 독자의 목울대 침 넘어가는 소리마저 묵직하게 할만하다는 것을 확연히 실감하게 한다.


제2부 노란 점

작부처럼 차가 달라붙어/강아지 기다리거나 그녀 기다리거나/그녀 강아지 안고 돌아오는 시(詩) 기다리거나//혼자 남았다//먼 하늘 어둠 사이 눈이 오기 시작한다/어디 어떻게 내려야 하나/묘수 찾아 망설이다/ㅏ ㅓ ㅗ ㅜ 위 ㄱ ㄴ ㄷ ㄹ/쌓이는 폭설//멀리서 지켜보다 달려온 강아지/꼬리 흔들어 행갈이하고/한쪽 다리 들어 노랗게/마무리 점까지 찍었지만//매서운 바람에 등 떠밀려 온 그녀//사랑한다는 말 바진 거라며/전봇대 잡고 위잉 위잉 울고 있다

「노란 점」 전부

단순히 읽어 내려가면 한겨울의 쓸쓸한 정경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랑의 불완전함을 섬세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작부처럼’ 창가에 달라붙어서 기다리니 얼마나 집착하는지 그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는 무엇인가 기다림을 열거하고 있다. ‘강아지’이거나 ‘그녀’이거나 ‘그녀 강아지 안고 돌아오는 시’이거나 무엇이라도 간절히 집착한 채, 기다림이다.

이 중에서 무엇을 이토록 간절하게 집착하고 또 기다리는 것일까? 먼 하늘에서 눈이 오기 시작하면서 그 미스테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눈이 오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내려야 하나’고 고민한다. 알 수 없는 언어를 마구 뱉어내는 언어, ‘ㅏ ㅓ ㅗ ㅜ 위 ㄱ ㄴ ㄷ ㄹ’ 배설하듯이 내려놓았다. 눈송이를 문자로 그려놓은 듯하다. 아직은 완성하지 못한 언어들을 나열해 놓은 것이다. 여기서 문득 구원투수가 등장한다. ‘강아지’이다. 과연 ‘강아지’는 무엇인가, 누구인가를 지칭하는 시적 대상(object)이다. 매서운 바람에 등 떠밀려 온 그녀일까?

아무튼 아쉬운 부분을 찾아내고 또 그렇게, 노란 점을 찍어 기다림의 마침표를 찍는다.

한 편의 시가 내리기 시작하여 안착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바, 참으로 어메이징(amazing)하다 하겠다. 목적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는 작부 같은 저 절절함으로 이룩하는 이룩한 시이다.

이것은 일상의 모든 부분에서 떨어지지 않는 집착 같은 갈망으로 보이는데, 그것을 「시」에서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에게서 찾아내는 시어들이 마치 석류알처럼 반짝이는 보석 같다. 「행간 소녀」에서도 놓지 못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종이 굴’ ‘배꼽 밑 새가리’ ‘노을 묻힌 손수건’ ‘참빗 같은 시어들’ ‘내 소년의 가려움’들은 영영 지워지지 않는 시인 만의 독특한, 송골송골 맺힌 언어로 새김 할 것이라.

그러면서도 겸손한 마음 또한 시에 대한 집착처럼 달라붙어 있는 것을 은연중에도 감지할 수 있다. 「첫경험」에서 ‘그 새벽 어찌할 줄 모르는’이라는 표현과 미도다방에 들어서면서 ‘시보다 먼저 오는 봄’이라는 표현만 보더라도 언제나 겸손함과 순수함이 묻어있다. 쌍화차 찻잔 앞에 예의로 치레한 중절모의 노신사와 미도다방 주인, 정인숙 수필가의 어울림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같은 시인으로서 부러움과 존경의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김창봉 시인의 시적 발상은 보는 것, 존재하는 것을 리얼하게 묘사하는 과감성이 돋보인다. 가급적이면 은유라는 장치 속에 의도를 감추고 숨기고 말다가, 가끔 「진짜 사랑」에서 처럼 투박할 정도로 대담한 묘사를 펼치는 용기가 있다.

‘붙은 채로/흘레 흘레 해가 지네//민망하지도 않은지/그저 묵묵히 흘레붙네’

「진짜 사랑」 1연, 2연에서

‘흘레’는 생식하기 위하여 동물의 암컷과 수컷이 성적인 관계를 맺는 일을 말한다. 그저 환경, 조건 등을 무시한 채 오로지 본능만으로 거리낌 없는 행위를 하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그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욱, 욱/그림자 끊어 먹는 소리/호스피스 병상/사흘째 입 벌린 채 멈추지 않는 딸꾹질/폐암 3기 선고받고도/십 년을 버터 낸 놈이다//병팔아~ 병팔아~/불러 보아도 눈물만 가늘게 매달린다/젊은 날 나보다 무거운 배낭 짊어지고/먼저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봉아~ 봉아~/내 이름 불러 대던 그//지금도/나보다 먼저 수미산 도솔천에 오른다고/링거줄 잡아당기고 있다/딸꾹! 딸꾹!

「딸꾹질」 전문

딸꾹질은 어떤 자극으로 인해서 하게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누구나 한 번씩 경험한다. 대부분은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나 급하게 음식을 섭취했을 때나 추운 곳에 오래 서 있을 때 등의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데 정확히 그 원인은 알려진 바가 없다. 경험적으로 깜짝 놀라게 함으로써 멈추는 경우가 있다고 필자도 흔히 급작스럽게 놀라도록 조치하는 경험이 있다.

그러나 당사자는 무척 괴로운 순간이다.

여기 「딸꾹질」에서는 ‘폐암 3기 선고받고도 십 년을 버텨낸 놈’이라 했으니 얼마나 가까운 절친인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런 친구가 호스피스 병상에 누워있다. 흔히 항암 치료 후 신경계와 소화기계통이 민감해져 딸꾹질이 잦아질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딸꾹질하는 당사자도 괴롭고 보는 사람도 무척 안타까운 심정일 것이다.

”병팔아~ 병팔아~“라고 부르는데 여기 병팔이의 본명은 병욱이다. 나도 함께 한 반에서 공부한 동기다. 가슴 아픈 일이다. 지리산 천왕봉에 먼저 올랐더니 수미산 도솔천에도 먼저 오르려 한다고 안타까워한다. 지리산 천왕봉은 1,915m이다. 까마득하게 높다. 구름에 갇힌 고지다. 여기 오르려면 보편적으로 미리 하루 전에 가서 익일 새벽부터 오른다. 필자도 정상 바로 아래50m 전쯤에서는 네발로 기어오른 적 있을 정도로 가파르니 미리 대단한 체력쯤을 축적해 둬야 한다. 진작 계획을 세워 오르는 곳이라 어지간한 친구 아니면 함께 가기 쉽지 않다.

그런데 도솔천은 수미산 정상에서 12만 유순 떨어진 욕계의 넷째 하늘로, 내원과 외원으로 나뉜다고 한다. 여기서 외원은 여러 천인이 모여 행복과 쾌락을 누리는 곳이라 한다.

절친의 극락왕생을 비는 마음을 담은 흔적이 역력하다.

필자 또한 고인이 된 김병욱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제3부 대 뿌리 사랑

마디는/겨울에 더 올곧은/사대부의 푸른 신념이시다//아버지의 아버지/그 할아버지는/매년 가난한 마디로 맺혔다//외줄기 바람에도 달빛은/밤마다 댓잎에 울어주었고/나는 그 눈물로 허기진 속 달래어 왔다//채우면 무거워질까 닫아버린 유가(儒家)/둥글게 둥글게 쌓이는 적막에도/나를 지탱한 것은 저 흙 속 뿌리였다//개발의 바람이 대밭에도 찾아와/시경(詩經)을 할퀴고 간 자리/뜬구름만 헤아리고 있는 반거충이들//주춧돌을 꼭 움켜잡고 있는 것은/오로지 종부(宗婦)의 빛바랜/허연 모시 적삼//어루만져주어야 할 속울음이여!/죽부인으로 새 세상 태어난다 해도/이제, 선비의 품에는 들지 마시길᠁

「대 뿌리 사랑」 전문

유추컨대 대대로 모여 사는 집안의 동네에도 도시 재개발 계획이 시행되었나 보다. 그로 인하여 발생 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 인간 본연의 욕구와 갈등이 혼재하게 된다. 거기에 얽힌 비애 등을 시 속에 녹여놓은 것으로 추측이 된다.

1연 3행에서 ‘사대부의 푸른 신념’은 윗대로부터 내려오는 재산과 전통을 해하지 않고 지키려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4연에서는 ‘채우면 무거워질까 닫아버린 유가(儒家)’라 했다.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할 수도 있음에도 전통을 계승하여 이어오는 유가(儒家) 집안이라 더 소통하지 않았으니 오히려 적막이 쌓이고 전통의 상징인 대나무 뿌리만 내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후 도시가 팽창하는 것은 세상이 발전하는 증거이다.

그런 개발 바람에 드러나는 반거충이들과 허연 모시 적삼, 그들의 갈등으로 양산되는 비애를 낱낱이 체감하고 또 소회하고 있다. 여기서 반거충이는 배우던 것을 중도에 그만두어 다 이루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데 요즘에는 자주 쓰이는 말이 아니라 다소 낯설어 차라리 그리운 단어다.

마지막 연에서 ‘죽부인으로 새 세상 태어난다 해도/이제, 선비의 품에는 들지 마시길᠁’이라고 끝맺음하고 있다. 안타까울 지경으로 아픔을 감내하는 여인들의 아이러니(irony)가 짠하다.

시집 곳곳에서 참이슬이 보이고 등장한다.

「석 잔」에서는 ‘청춘 보낸 선술집’이 그랬고, 「월력에서 나온 여인」에서는 ‘술잔 든 그녀 옷 벗고 기다리고’라는 연상이 그렇고, 「연탄불」에서는 ‘작대기 긋고 다니던 만평시장 뒤쪽’이라고 기억을 추억하기도 하고, 「아차!」에서는 ‘참이슬 털어 넣으며 꼬인 실타래 풀다’고 했으며, 영덕 대게를 「은밀한 거래」로 불러오는 능숙함이 그랬고, 그리고 ‘노가리 구워 마신 외상 술값도’에서 「순천만 무진기행」에서는 ‘갈대술 한 병 들고 그녀 기다린다’고 넌지시 밝히고 있다. 이쯤 되니 얼마나 술을 좋아하는지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이같이 시인의 일상에서 어느 정도 독자들이 만나지 못한 시인의 아버지 술 사랑마저도 추정해 볼 수 있다. 「엄마의 달빛」 2연에서에서 ‘대문까지 취해 흐느적거리는 자리/윗도리 벗어 베고 코 고시던 아버지’를 만나면 쉽게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목욕하시던 영자 엄마/ 돌 틈새 부딪친 눈빛의 「아직도 그 버릇」에서는 차마 순수한 인간적 호기심이 발가벗은 채 묘사되고 있으며 「철웅이」에서는 삼십 수년 전의 우매하지만 맑고 우직한 사랑을 가진 추억의 이름, 철웅이를 불러들여서 그리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자세 또한 순수한 영혼임이 드러나 보인다.

‘수평선과 지평선이 만나는 땅 위’라 했다. 수평선(水平線)은 물과 하늘이 만나는 선을 말하고, 지평선(地平線)은 땅의 끝과 하늘이 만나는 선을 말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거기가 시제에서 밝혔듯 「그 섬」일까? 그렇다면 그 섬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 존재하는가?

‘먼저 간 너희 아버지 보고 싶다고 하신 뜻을,//그땐 그 섬 그늘/정말 몰랐다’한 부분이다.

필자도 이 부분에서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아려왔음을 고백한다. 먼저 임을 보내시고 17년이나 홀로 지새우셨을 나의 어머니, 홀로되신 어머니의 차갑고 긴 밤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렇구나. 그땐 그 섬 그늘, 아! 필자도 정말 몰랐구나.

육지와 바다의 기온 차이로 인해서 불어오는 것을 해풍이라 한다. 낮에는 육지가 바다보다 먼저 온도가 상승하고 밤에는 바다보다 육지가 먼저 식는다. 이때의 기온 차이로 대기의 이동이 생기는데 그것을 해풍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해풍의 깊은 의미는 어쩌면 윤회하는 이 세계를 비유적으로 끌어오기 무의식적 시도가 감행된 것일지도 모른다. 화자가 묵시(默示)하는 해풍의 근거, 즉 육지와 바다라는 의미는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세계와도 맞닿아 있지 않을까? 그 의미심장함을 직관시키는 부분이 마지막 연이다.

‘바닷물 차오르는 줄 알면서도/가부좌 틀고 앉아/마른 살갗 해풍에/당신을 돌려주고 있었다는 것을’

시를 짓는 것은 사랑을 비롯한 서정적인 주제와 시대적 고통과 존재적 갈등까지 육화(肉化)하고 시적인 아포리즘(aphorism)으로

승화(昇華)하는 일이다. 그래서 비유도 있고 은유도 있고 또한 단순화를 지향하는 단순주의(minimalism)가 있기도 하고 나아가 극도의 단순화 경향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심오한 메타포(metaphor)와 단순한 심플리즘(simplism)이 모두 공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감동이다.

다음의 「뿔테안경」에서는 단순하면서도 미묘한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다.

아이는 철 대문 발로 차며 울고/이웃에서 구해 온 갓 젖 뗀 강아지/친구도 없이 시골집에 혼자 남은/뿔테안경 보고 울었다//떠나가는 엄마 향해/“애는 걱정일랑 말고᠁”/이해할 수 없는 외할머니의 말끝//어둠이 보스락거리는 시간/마당으로 내려오던 어스름 달/감나무 품에 안겨 헉헉댄다//아이도 강아지도 어둠 속에서/마주 보며 훌쩍이다//모기향 피우고 부채질해주던 엄마 생각에/밤이슬 흘러내리는 뿔테안경

「뿔테안경」 전문

「뿔테안경」에서 왠지 모르게 백석의 「여승(女僧)」의 시풍이 느껴지는 것을 감출 수 없다.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이 시는 백석의 「여승(女僧)」의 도입부의 글이다. 가족 공동체의 붕괴와 한 여인의 삶이 왠지 백석의 「여승(女僧)」에서의 비극적인 삶이 느껴진다.

아이를 두고 떠나야 하는 마음 찡한 엄마 등 뒤에서 대문을 차는 아이의 슬픔이 적나라하게 눈에 보인다. 그것을 아는 외할머니는 미리 갓 젖뗀 강아지를 구해 놓았지만, 아이의 슬픔은 멈추지 않는다.

이 시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도록 만드는 비경제적인 양식으로서, 원활한 독서보다 지체의 독서를” 지향하고 있다. 독자를 한동안 침묵하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여운이 남는 것이다.

김창봉 시인의 시에서 느끼는 공통한 감동이 그런 것이다.

벌초 중에 느끼는 「저승에서 온 꽃」도 개구리 소년을 담은 「엄마의 가슴」도 보이지 않는 아련함이 흠씬 젖어있다.

이 시대의 시는 산문 쪽으로, 산문은 시 쪽으로 접근하고 있다.

화자와 등장하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setting)과 상황(situation)을 제시하고 그 작품의 주된 화제를 제시하는 순서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 작품의 첫머리에서 언제, 어디에서, 누가를 밝히지 않으면 독자들은 작중의 상황을 짐작하며 읽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시가 독자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표현하려는 ‘경제적 양식’이 아니라, 언뜻 들어서는 알 수 없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도록 만드는 ‘비경제적인 양식’으로서, ‘원활한 독서’보다 ‘지체의 독서’를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함은 필자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설마, 산사에서」에서 ‘아스라한 도량석 소리’가 나온다. 여기서 도량석(道場釋)은 새벽녘에 게송(偈頌)을 외우고 목탁을 치며 사찰 도량을 한바퀴씩 도는 의식을 말하는데, 새벽 목탁 소리쯤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목탁 소리는 고요한 상태에서 작은 소리로 시작해 점점 커졌다가 마칠 즈음에는 큰 소리에서 점점 작아져 마침내 본래의 고요 속에 묻히고 만다. 여기에서 작은 소리는 어둠과 고요한 본체를 상징하고, 큰 소리는 밝음과 힘찬 움직임을 상징한다고 한다. 화엄경에서는 인생난득 불법난봉(人生難得 佛法難捧)이라 했다. 사람의 몸 받아 태어나기가 어려우며 또한 부처님의 법 만나기 어려워라. 했다.

여기 김창봉 시집 『그녀는 선수였어』에서는 의도적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군데군데 「설마, 산사에서」나 ‘물로 나와 불로 가시는’ 어머니를 「여행」과 같은 불심으로 내비치고 있어 불자들에게는 큰 깨달음이 따르리라 본다.

「대구관」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를 더듬어 보는 아련히 깃든 효심을 엿보이고, 어떤 연유로 아버지 유골을 정리하는 「윤유월의 당신」 그리고 어머니의 마지막 향기 같은 「국화 향기 속으로」가 독자들의 가슴을 절절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절절한 마음을 미리 알아차리고 「괜한 심통」으로 3장을 ‘젠장! 소변이 마렵다’ 면서 끝맺는 포장을 하기도 한다.


제4부 서로 기댄 삶

매달 삼십만 원씩 나가는 원룸도 버거워 어느 시골로 천거한

가난함이 깊을수록 배는 더 고픈 법, 얼마나 많은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을까. ‘넌더리 나는 라면 암팡지게 끓어 울고’

여기서 넌더리는 지긋지긋하게 몹시 싫은 생각이라 했으니 삼시 끼니를 거의 라면으로 연명해 왔던가 보다. 그래도 라면을 통하여 그 지겨움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은근히 내비치고 있다.

‘암팡지게 끓어 울고’라는 부분에서 왠지 극복을 부채질하는 의지가 서린 듯하다. 그래도 기댈 수 있는 삶이라도 있어 위안으로 삼는 저 태도가 묵직하다.

사물을 보는 각도에 따라 피사체의 느낌이 달라지듯, 작가의 보는 마음에 따라 작품의 퀄리티(quality)가 다르며 그 의미하는 메시지나 담은 스토리가 달라진다.

7연으로 나누어진 「다큐 2편」에서는 ‘홀랑 벗고 침대에서 시작한 첫 신/그 몽환적인 시간’이 클라이막스에 다다른다. 여기까지는 정말 몽환적 서술이 펼쳐진다. 그러다가 마지막 연에서 적나라하게 모든 것을 밝히는 기법이 호기심을 자극하게 한다.

‘세상에 드러난/부끄럽고 질퍽한 나의 속살/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이라고 맺는다. 마지막 7년의 3행에서 그 몽환적인 기분을 내려놓게 하는 것이 어쩌면 허헛한 웃음을 준다.

또한 「쪼그려 쏴」에서는 이 시대 남자들의 야릇한 변심을 그려놓기도 한다. 시기와 어느 프로그램인지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시대의 카리스마 배우 최민수가 집에서 소변을 볼 때는 반드시 앉아서 본다고 계측할 수 없는 많은 남자가 설득되기도 했을 것이다. 전통적 권위보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한 편의 시가 된 것이다.

「가시고기」에서는 왼쪽 발뒤의 이야기인데 왜 시제가 ‘가시고기’일까?

필자도 자주 접하는 이름이 아니라 사전을 뒤적거려봤다. “가시고기(Gasterosteus aculeatus)는 담수와 해수에서 모두 서식하는 독특한 물고기로, 작은 체구와 몸에 있는 가시가 특징”이라고 한다. “이 물고기는 특히 번식기 동안 수컷이 둥지를 만들고 알을 보호하는 독특한 번식 습성을 가지고 있어 학문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는 어종”이라고 한다.

가시고기 특징이 그렇기에 이 시에 대한 이해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다.

3연에서 ‘암컷이 물풀에 알 낳고 떠나가는 물고기처럼/아내가 안방에 쏟아내고 가버린 핏덩이/눈물로 씻어내고 땀으로 키워냈다’고 하는 호야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마지막 연에 담았는데 정서적으로 각박하고 메마른 시대에 참으로 찡한 가슴을 느끼게 한다.

“허기로 누렇게 뜬 마지막 말/’네가 있어 내가 여태 살아 냈다/고맙다 호야!”

묵언이라 할 장치, 사일런트 장치로 침묵하는 화자의 토라진 상황을 노출한 「사일런트」 그리고 「처음 가는 길」이 눈을 빼앗고 마음을 빼앗고 밤을 빼앗아 갔다.

「녹슨 첫사랑」은 화자의 옛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 40여 년의 환상을 보기라도 할 듯이 가슴속 철길을 오르게 한다.

그리스의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가 작곡하고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가 부른 ‘기차는 8시에 떠나네’라는 노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카테리니(katerini)행 8시 기차를 타고 떠난 연인을 기다리는 여인의 애절한 심정을 담았는데 결국 돌아오지 않는다는 노랫말을 추억하며 덩달아 더듬게 한다.

아마도 그런 느낌이 드는 이별이랄까? 사십 년 별리의 심경이 담긴 인연처럼 느껴지는 「녹슨 첫사랑」도 바퀴벌레와의 전쟁 이야기를 코믹하게 꾸며놓은 것 같기도 하고, 마치 생과 사가 엇갈리는 전쟁터 같기도 한 리얼리즘을 다룬 단편소설 같기도 한 「마누라 눈빛」도 독자의 깊은 사유를 불러오게 한다.

오랫동안 나팔꽃 속에서 기다렸을/너를 만난 행운/어디서부터였을까/나는 물방울이었어//품바 가수 아버지 속에 있다가/너를 만나 노래가 되었지//함께 맞춘 춤과 화음 연습/두 손 두 발 없이 가늘게 뛰는 어설픈 심장//작은 우주 속에서/달이 차오르고 기울기를 반복하다/드디어 달 문에 이슬이 찾아온 거야//조명이 켜지자 바빠진 스태프들/엄마의 장엄한 서곡 신비의 막이 열리고/세상 향한 별의 첫 무대//성공적인 안착/지켜본 사람 전해 들은 사람/너 나 없는 환호//너도 기억할 거야/팔다리 흔들어대며//웅애~ 응애~/악보 없이 온 힘 다해 불렀던/황홀한 첫 노래를

「신비의 막」 전문

이 시 1연에서 단번에 ‘나는 물방울이었어’라고 단정 짓고 시작한다. 그래, 맞아. 우리 모두 물방울로 시작된 것이네. 물방울로부터 한 생명으로 탄생 되는 이야기임을 인식하는 것은, 결국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와락 쏟아지는 감동 같다.

화자는 생명의 시작을 마치 공연과 노래로 변주하여 예술적 은유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나팔꽃 속에서 기다렸을’로 시작하는 나팔꽃이 나팔관과 묘한 연상으로 적중되는 부분이다. 아마 발상의 시작도 그런 연상이 작동했을까? 필자 혼자 그런 예측을 해보기도 한다.

꽃일까, 나팔꽃일까 그저 추상적으로 인식하다가 악보 없는 첫 노래 ‘응애~ 응애~’라는 마지막 결론이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소리가 된다.

예술적 은유로 승화시키는 기법이 서투르지 않고 익숙하다. 그래서 풀어내는 과정이 절대 서두르지 않는 시적 퍼포먼스처럼 눈길을 끌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순진하게도 나팔꽃의 변신인 줄 알고 새초롬한 눈으로 읽어 내려가다가 꿈을 깰 독자들 많을 것이다.

「누구십니까」에서는 낡은 구두를 등장시켜 그 이미지 속에서 인생의 피로와 정체성을 회상한다. 구두를 의인화 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쩌면 노쇠하고 낡은 자아의 은유처럼 보인다.

제5부 내 피를 훔쳐 간 년

시는 어디에서 오는가? 심히 고민해 본적이 많다. 또 시인들은 시를 찾기 위해 들로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자연 속으로 군중 속으로 뛰어다니며 취재하기도 한다. 그래 때때로 문학기행을 떠나면서 사냥하듯이 시를 탐색하기도 한다. 어쩌면 보물찾기처럼 왕창 찾아내는 시인도 있고 일 년이 지나도 한 편의 시도 찾아내지 못하는 시인도 있지.

보이는 것, 보는 것, 본 것, 경험한 것들에서부터 수색해 내는 일이 창작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1초에 1,300억 비트의 정보를 수집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많은 것 모두를 기억에서 절대 찾아내지 못한다. 필자는 어쩌다 떠오르는 상념이나 번뜩이는 시상이 그런 기억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사람의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의 기억을 들여다볼 수 있다.

여기 김창봉 시인의 시에서 그런 것을 즐겨 찾아볼 수 있다.

‘또, 한발 늦었어/야밤 도주한 그녀는 도둑년이야’

남의 눈을 피하여 밤사이에 도망가는 것을 야반도주라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야밤 도주라고 한다. 하마터면 함정에 빠질 뻔했다.

「내 피를 훔쳐 간 년」에서 나오는 시어들이 어디에 어떤 일에 종사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는 것이지.

‘야밤 도주, 압수수색, 영장 발부, 공개 수배, 범인, 현장, 함정 수사, 무죄’가 그렇다

시인은 평생의 기억을 여기 「내 피를 훔쳐 간 년」에 가감 없이 녹여놓은 것이다.

얼마나 흥미롭던지 하마터면 생각이 엉뚱한 곳으로 갈 뻔했다. 그래도 이 시 5연에 와서 ‘귓전에 무심코 툭 던지고 간 모기 년’이라고 공개했으니 망정이지. 「내 피를 훔쳐 간 년」과 표제 시 「그녀는 선수였어」와는 서로 분위기가 같다. 역시 그녀도 선수지만 화자가 더 선수다.

늦가을 팔공산 지슬가지 부인사/몽골 침략 때 초조대장경 탄 그 자리/검은 재물이 키워낸 호박 한 쌍/속계와 법계 틈 사이 끼어/서로 쳐다보며 염불하고 있다//여전히 야음 틈탄 칭기즈칸의 말굽 소리/주지 스님 몰래 삼 층 석탑 찔러대고/속으로 삭인 비명/느티나무 가지 끝에 달려 팔랑인다//널브러져 있던 늙은 판석들/숨죽이며 천 년 동안 풀섶에 숨긴 몸/드러난 등짝 위를//스스로 잡풀로 덮고 있다//풍경 소리에도 외다리로 선 은행나무/남은 잎 부둥켜 노랗게 떠는데/탐방객들은 패잔병처럼 몰려/실성한 웃음 흘리며 사진 찍기 바쁘다//아!/슬픈 구름 속으로/사라진 묘법연화경/아득한 밤 별들이여..

「부인사」 전문

부인사는 대구광역시 팔공산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로, 동화사의 말사이다. 초조대장경은 해인사 팔만대장경, 즉 재조대장경을 만들기 전에 고려에서 처음 판각했던 대장경을 말하며, 대장경이란 불교의 경장·율장·논장을 모두 합친 것을 이른다.

1010년에 요나라가 고려를 침입하였을 당시 부처의 힘으로 요나라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고려 조정에서 국왕과 신하들이 대장경 제작을 발원하여 만든 것이 바로 초조대장경이었다.

1232년 몽고 침입으로 경판은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당시 강화도에 있던 고려 조정은 현종대에 부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물리쳤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번에 다시 대장경을 판각하여 몽고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으로 재조대장경을 판각하였다. 이것이 현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판이다. 국내에 전하는 초조대장경 가운데 24권이 국보로 지정되었고, 11권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필자도 알아둬야겠기에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에서 발췌했다.

‘늦가을 팔공산 지슬가지 부인사’로 시작한다. 여기서 ‘지슬가지’는 ‘기슭’의 방언이다. 팔공산 기슭에 부인사가 있다는 것이다. ‘몽골 침략 때 초조대장경 탄 그 자리/검은 잿물이 키워낸 호박 한 쌍’은 그곳에 몽골 침입으로 소실된 초조대장경의 슬픈 역사를 되새기고 있다.

소실되어 까맣게 탄 자리에서 호박 한 쌍이 속계와 법계 사이에서 염불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속계와 법계는 현실 세계와 해탈의 세계를 말한다. 그러니까 보통 사찰에 들어서면 일주문을 만나는데 여기가 속계와 법계의 경계선으로 여겨진다. 거기 들어서면 까맣게 타고 남은 재뿐이었는데 그 속에서 다시 수행하는 생명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기억의 잔향들로 과거의 폭력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깨닫게 하는 것은 ‘느티나무 가지 끝에 달려 팔랑인다’고 하는 부분이다. 그날의 비명이 느티나무 끝에 매달려 애처로이 팔랑이고 있다는 표현이 범상하지 않다.

3연에서는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고도 그날을 그대로 그려놓은 듯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다시 한번 보자. ‘널브러져 있던 늙은 판석들’이 그렇고 ‘천 년 동안 풀섶에 숨긴 몸’이 그렇고 ‘드러난 등짝 위를 잡풀로 덮고 있는’모습이 그렇고 시인 김창봉의 시가 그렇다.

마두금(馬頭琴)의 거문고 금(琴)은 마음으로 듣는 음악이라고 한다. 마두금은 두 줄의 현이 있는데 말의 꼬리로 만든다. 두 줄 가운데 큰 것은 ‘수컷줄’이라 하고 꼬리털 130개로 만들고 ‘암컷줄’은 암컷 말의 꼬리털 105개로 만든다고 한다.

몽골인들에게 중요한 교통수단은 말과 낙타인데 어미 낙타가 두 개의 봉우리와 긴 다리의 새끼낙타를 낳는다는 것은 큰 고통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기가 낳은 새끼조차도 젖을 주지 않고 방치한다고 하는데, 이때 마두금으로 연주하면 자기 새끼가 아니라도 어미 낙타는 눈물을 흘리며 젖을 먹이게 된다고 한다. 마두금은 이처럼 사람뿐 아니라 짐승도 감동하게 하는 가장 자연 친화적인 악기다. ‘새끼 낙타를 위한 달래기 의식’은 2015년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이제 「마두금」을 감상해 보자. 4연에서 ‘기어 다니던 어린 낙타/지평선 끝자락 가까스로/집 나간 어미 낙타를 찾았다’고 하고 이어 5연에서 ‘매달리는 새끼 뿌리치는 어미/시선이 교차하는 둘 사이/검은 비가 내린다’고 했다.

‘검은 비’가 내린다. 결국 마두금의 연주로 낙타의 심금(心琴)을 울리고 심지어 ‘노을 홀리는 붉은 눈물’이라고까지 한 것이다. 저녁노을이 마두금 소리에 홀려 넘어가지도 못하고 파르르 떨고 있는 장면이 연상 된다. 몽골에 가서 직접 보고 듣고 이 시 「마두금」을 남겼으리라 추정된다.

당뇨, 혈압약 담긴 약통/밥풀때기 묻은 숟가락 쉰내 나는 갓김치//이놈들, 그곳에 숨어/임종을 기다리거나 바라기라도 하는 걸까//묻지도 따지지도 않고/성급히 전 재산 자식들에게 증여해 버려//뒤늦게 폐지 줍는 삶/다섯 평 판잣집에 수장되어 허우적거린다//진종일 발로 밟고 혀를 차며/시골 장바닥 핥아도 빈번히 공수래공수거//혼자 짊어진 하늘의 무게로/돌쩌귀 빠져 뒤틀어진 철 대문 열어놓고//유기견처럼 버리고 떠나가 버린 것들/기다려보지만 더는 바람조차 없어//마당 한 켠 널브러진 파지/한 장 두 장 들추어 보는데᠁

「바퀴벌레」 전문

화자가 묵시하는 언어들이 가슴에 와닿는다. 마치 마두금 소리에 심경의 변화를 느끼는 낙타의 눈빛이 와닿는다. 아, 사회에서 밀려나고 버려진 노인의 자화상 같다. 한국적 현실의 비극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노년의 고독, 버려짐이 느껴지게 한다. 노년에 아프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아프면 서럽다. 특히 소외된 사람은 더 서럽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보자 여기 「바퀴벌레」에서 소외된 노년의 느낌을 세세히 표현해 놓았다.

‘임종을 기다리거나 바라기라도 하는 그놈들이 밉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 재산 증여받은 그놈들이 밉다.’

‘알게 모르게 바퀴벌레로 밀어붙이는 그놈들이 밉다.’

‘유기견처럼 버리고 떠나가 버린 것들이 밉다.’

제4연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뒤늦게 폐지 줍는 삶/다섯 평 판잣집에 수장되어 허우적거린다’의 처지가 꼼짝할 수 없다. 여기서 ‘수장되어 허우적거린다’는 표현이 감상하고 있는 독자들조차 꼼짝하지 못할 실감으로 연결된다. 물에 빠져 꼼짝하지 못하는 처지를 당해보았는가? 고래고래 소리 질러도 아무 기척 없는 기다림이지만 기대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삶의 의미를 찾고자 파지를 줍고 마당 한 켠의 파지를 한 장 한 장 들추는 마지막 연의 표현은, 어쩌면 존엄의 마지막 흔적이리라.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끝까지 파지를 들추는 모습은 비애를 딛고 일어서는 고독한 삶에 대한 저항을 함유한 시인 김창봉이 그린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보인다.

「추상화」는 또 어떤가,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과 만나 남자들만의 장난 같은 어릴 적 얄궂은 추억 하나를 시적 변용을 통해 마치 유쾌한 데포름(Deformation)을 사유화한 것같이 자연스럽다.

‘달빛 아래/매화 년 화사한 입술에 흐느적거릴 때/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아내 목소리 ~ 중 략 ~ 너 나 쳐다보고 웃고/나 너 쳐다보고 웃고/우리는 웃고웃고//기특하게 편 되어 주던 놈/청매실 노름해질 때/목줄 풀고 우주로 자유여행 떠났다’

「청매실 따라간 똘이」 중에서

화자의 일상의 한 부분이 참 단조롭다. 기대만큼이야 못되어도 어느 정도 변화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하는 가족의 염원도 습관처럼 밋밋하다. 그런 눈치에 위축되는 나날이지만 그 맛있는 순간을 버린다는 것이 쉽지 않다. 술 마시는 습관을 버린다는 것, 그쯤은 거의 개혁이요 변혁이다. 개혁이니 변혁이니 말이 그렇지, 목숨쯤 걸어야 할 만큼 위대한 일이다.

그렇다. 어쩌면 평안을 위한 귀가 후의 소외를 습관처럼 껴안는 것도 당연하다고 수긍하는 이유도 다 그러함에 기인한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너’가 있어서인데, ‘너’가 영원히 우주 속으로 자유여행 떠났다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라 해도 유일하게 따뜻한 사랑과 충성을 보여주는 생명체인데. 이 시대, 반려견이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지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생각도 동작도 잠시 멈춘다.

「미스터 스텐드」에서는 ‘심장 향해/ 선을 따라가는 걸음’이 시술의 순간들을 묘사하고 있지만 「외줄 인생」에서는 ‘대목수’가 등장하고 ‘미용사’가 등장한다. 한 편의 연극을 여는 것 같은 궁금증에 빠지게 한다. 대목수의 대패질이 상상되고 면도기 든 미용사의 손놀림이 연상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심장에 지은 스탠드 한 채’라고 맺음을 한다.

이렇듯 김창봉 시인만의 표면적 이야기에 빠지다가 끝내는 서사 너머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한다.다. 전체를 파악하면 그때야 깨닫게 되는 시적 알레고리(allegory)가 돋보인다.

2025년 11월 6일

기억 보존을 위한 소회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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