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복치회

Something unachieved

by CSK

바쁜 날이었다. 해야 할 일은 끝이 없었고, 생각은 자꾸만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사람은 대개 현실에 붙잡혀 살지만, 때로는 전혀 쓸모없어 보이는 상상이 하루를 버티게 해 주기도 한다. 그날 나를 붙잡고 있던 생각은 다름 아닌 개복치회였다.


처음 그것을 본 것은 경북 출신 와이프와 결혼한 뒤, 처가에 가던 길에 들른 포항 죽도시장에서였다. 수산물 특유의 비릿한 냄새와 상인들의 목소리가 뒤섞인 그 시장 한켠에서 나는 처음으로 개복치회를 보았다. 회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나는 그것을 먹지 않았다. 이유는 지금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단지 그저 지나쳤을 뿐이다.


그러나 그 순간 이후로 개복치는 내 기억 속에 남았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은 묘해서, 사소하게 스쳐 간 것일수록 오래 남는 법이다. 잊었다 싶으면 다시 떠오르고, 떠올랐다 싶으면 또 어느새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그렇게 개복치회는 내 삶 속에서 하나의 작은 집착이 되어 갔다. 몇번이고 이커머스를 통해 주문을 하려고 했지만 이상하리만큼 이 생선에 대해서는 결제 완료 버튼이 눌러지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다섯 해가 지났다. 나는 여전히 그것을 먹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꼭 아쉬운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루지 못한 작은 꿈 하나가 삶을 조금 더 견디게 해 준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은 누구나 좌절의 순간을 맞는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날도 있고,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이면 나는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그래도 죽기 전에 개복치회는 한 번 먹고 죽어야지.’


남들이 들으면 웃을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우스운 다짐이 이상하게도 상황을 반전시키곤 한다. 아주 거창한 희망이 아니라도, 아직 이루지 못한 사소한 욕망 하나가 사람을 앞으로 걸어가게 만든다는 것을 개복치를 통해 조금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지금도 나는 그 개복치회를 먹지 못한 채로 두는 것이 어쩌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직 이루지 못한 사소하고 특이한 욕망 하나가 나름대로 삶을 조금 더 견디게 해 주고, 내일을 기다리게 만드는 이유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렇게 사소한 것 하나를 마음속에 남겨 둔 채, 그것을 핑계 삼아 또 하루를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Fa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