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결혼식에 다녀오신 아버지는 오래전 멀어졌던 이종사촌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러나 대화는 중간에 매몰차게 끊어져 버렸다. 두 살배기 아들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애교를 부리자, 방 안의 시선이 모두 그 작은 몸으로 쏠려버렸기 때문이다. 아버지 이종 사촌 얘기에는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말을 멈추고 잠시 허공을 바라보시다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조용히 웃으셨다. 아기와 노인의 공통점은 모두 관심을 구한다는 것이고 차이는 아기에게는 모두가 관심을 주지만 노인에게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것이라 했던가.
나는 그 웃음이 마음에 걸렸다. 괜히 멋쩍어하실까 싶어 다시 대화를 이어보려 했지만, 아버지는 애써 그럴 필요 없다는 투로 이야기를 흐리셨다. 그러고는 아기를 바라보며, 어딘가 비어 있는 듯한 웃음을 지으셨다. 그 웃음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한 것들이 고여 있었다.
아버지는 소위 말하는 가방 끈이 길지 않으신 분이었다. 그러나 성실함 하나로 가족을 지켜오셨다. 매일 같이 새벽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오시곤 했다. 그 고되었을 시간이 있었기에 우리 가족은 굶지 않았고, 추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버지는 묵묵히 자신의 몫을 살아내셨고, 그 삶에 대해 한 번도 유세를 부리신 적이 없었다.
이제 아버지는 연로해지셨다. 말은 예전처럼 또렷하지 않고, 곧 심장에 큰 수술도 앞두고 계신다. 이런 상황임에도 나는 요즘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곁에 있어 드리지 못한다. 모처럼 함께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어딘지 모르게 어눌하게 느껴지는 아버지의 말투를 보며, 나는 비로소 시간이 우리에게서 무엇을 가져가고 있는지를 실감했다.
불현듯 측은함과 죄송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자식으로서 더 잘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마음 한켠을 무겁게 눌렀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얼굴로 손주를 바라보고 계셨지만, 그 평온한 표정 뒤에 쌓여온 아버지의 세월과 희생에 대한 갑작스런 자각은 눈도 내리지 않는 겨울 밤처럼 내 마음을 오렸다. 그날 저녁, 나는 아버지 앞에서 내가 오랫동안 결론 내지 못했던 '언제부터 어른인가'에 대한 답안을 조용히 적기 시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