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지구생활자의 숲 아지트 방문기 12.19
202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 활동지원 Reboot 선정작 <숲은 노래하지 않고>(프로젝트 산파)는 사운드아트와 배우의 퍼포먼스, 설치미술 등이 융합된 이동형, 전시형 작품이다. 친구가 공연 정보 링크를 공유해줘서 보자마자 예매했다. 한 타임에 5명이라니 선착순에 들기를 바랐고 다행히 예매 성공. 인류가 소멸된 불타는 2121년의 지구라는 세계관 속에서 한양도성길을 따라 걷는 작품이라는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공연은 한양도성길 계단 아래에서 시작된다. 계단 시작점에 관객 전원이 모이면 현장 진행을 맡으신 분께서 이름과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한 후 문진표를 작성하게 하고 공연 정보지와 함께 '팥알이 들어있는' 양말처럼 생긴 핫팩을 나눠준다. 핫팩에서 나는 고소한 향이 공연의 첫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길 곳곳에 눈이 쌓여있었고 체감 온도도 꽤 낮았지만 핫팩과 팥의 향 덕분에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 채로 작품에 임할 수 있었다. 그 후 관객은 주머니에서 카드 5장 중 1장을 뽑아야 하는데,각 카드에는 2121년 지구에서 살아남은 지구생활자들인 '꼬불이, 더듬이, 따닥이, 따부기, 탱탱이'에 대한 정보와 그들이 남긴 '지구생활자에게 보내는 편지'가 나오는 QR코드가 있다. 이 카드는 정보성의 기능을 넘어 공연 중 관객이 담당할, 그리고 교감할 캐릭터를 결정한다. 나는 따닥이 카드를 뽑았다.
배우 한 분이 약간의 퍼포먼스를 곁들여 인사를 하면서 계단을 내려오는 것으로 공연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이분은 따부기고 자신과 함께 사는 다른 지구생활자들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다. 3명은 정찰을 나가서 오늘은 따부기와 더듬이만 볼 수 있다고도 알려준다. 그리고 관객 한 명 한 명 어떤 카드를 받았는지 확인하며 마치 집주인이 집에 친구를 초대한 것처럼 반갑게 맞이한다. 관객을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러 온 상대나 인간 종족이 아닌 숲 속 아지트에 방문한 생명체들처럼 대하는 태도에서 세계관 몰입이 확실하다고 느꼈다. 이렇게 따부기 배우 분과 관객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서 배우 분이 계단을 먼저 올라가면 관객들은 자신의 카드 색깔 천이 계단 난간에 메어져있는지 확인하면서 따라 올라간다. 천 5개의 위치를 다르게 한 것은 음성 파일들의 재생 시간과 관객이 아지트 근처에 도착하는 시간을 맞추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한다. 천이 있는 위치에서 카드 뒷면의 QR코드를 스캔하여 사운드클라우드로 재생되는 음성 편지를 들으면 되는데 그 내용은 크게 각 캐릭터가 아지트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 평소에 무엇을 하는지, 지구에서 생존하고 있는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다. 캐릭터 별 성향과 서사를 인지하고 있으면 작품과의 심리적 거리를 더욱 좁힐 수 있다.
편지를 들으면서 약 5-7분간 한양도성 길을 걷다가 우쿨렐레처럼 보이는 악기를 들고 있는 배우 분이 있는 곳에 멈추면 된다. 배우 분은 키가 작은 관목으로 만들어진 '지구생활자 무덤'을 돌면서 악기를 연주하다 관객에게 인사를 건네고 본인은 더듬이라고 소개한 후 아지트로 동행한다. 소규모 지구생활자들의 아지트(369 예술터)는 세 공간으로 나눠져있고 우선 왼쪽의 공간에서 더듬이가 식사를 대접한다. 종이와 플라스틱, 젤, 흙 등이 있는 아지트만의 음식이다. 여기서 식탁을 빙 둘러앉은 관객들은 자기소개를 하게 되는데 이름(자신이 갖고 있는 카드의 캐릭터) 어디서 왔는지를 말하면 된다. 협조를 잘하는 관객은 작품의 세계관에 맞게 적극적으로 대답한다. 식사 후 관객들에게는 아지트를 둘러볼 자유시간이 무려 45분 이상 주어진다.
아지트가 세계관의 총집합소다. 벽에는 지구생활자에게 보내는 편지들과 아지트 공동 생활 규칙이 다수 붙어있다. 5명의 생활자들이 갱지나 뜯어진 박스 등에 크레파스로 자신의 표식을 그리고 하나하나 손글씨로 글을 남긴 것이다. 아지트에서의 생활, 대재앙에 대한 생각, 슬픔, 하루 일기와 같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또한 아지트 가운데에는 페트병, 캔, 어항 등으로 이루어진 따닥이와 꼬불이의 수집품도 전시되어있다. 관객들은, 아니 초대받은 지구생활자들은, 돌아다니면서 아지트 세 공간에 흩어져 있는 편지들을 읽거나 직접 편지를 남기고 아지트에 붙여놓을 수도 있다. 기존의 기억 수집소에 새로운 이야기, 관객의 흔적이 실시간으로 쌓이는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큰 비닐을 치마처럼 두른 따부기 배우 분이 종을 흔들며 등장한다. 아지트의 오른쪽 공간에서 배우의 퍼포먼스가 이루어진다. 공간 가운데의 나무 토막 안에 짧은 그림책이 있는데 관객들이 의자에 앉으면 따부기 배우 분이 그 토막 위에 앉아서 책을 읽어준다. 책은 '우리는 숲에 잘 살고 있었지만 거친 손을 가진 사람들이 숲을 망가뜨리고 산불이 나고 지구가 황폐해졌으며 결국 숲의 노래를 빼앗겼다'는 내용이다. 배우 분의 목소리는 한양도성길 계단 아래에서 보여줬던 활발함, 발랄함이 전혀 없이, 화가 약간 북받친 듯하다. 낭독이 끝나면 비닐을 다 뒤집어쓴 더듬이 배우 분이 나타나서 따부기 배우 분을 안아주고 둘은 단조의 음악에 맞춰 움직임 퍼포먼스를 시작한다. 정확한 의도는 파악하기 어려웠으나 아마도 비닐 속에 사는 것, 즉 그만큼 답답하고 자연이 파괴된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비애와 혼란스러움을 몸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공연의 마지막 순서인 퍼포먼스 이후, 처음에 현장 진행을 맡으셨던 분께서 공연이 모두 끝났음을 알리고 15분간의 남은 시간 동안 (러닝타임 90분으로 사전 공지) 아지트를 더 둘러봐도 된다고 말한다.
처음 경험해본 형식의 공연이었기에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했다. 내가 세세하게 기록한 것 이상으로 아지트는 훨씬 정교하게 구성됐다. 이동형, 전시형, 퍼포먼스까지 여러 장르를 융합한 재미 뿐 아니라 아지트의 지구생활자들 별로 다다른 성격과 역할이 글씨체와 음성 파일 속 말투에 모두 반영되어 있었다. 비록 작품의 배경은 아포칼립스와 다름 없고 아지트의 지구생활자들이 남긴 편지 기저에 깔린 음울함도 느껴졌지만 이상하게도 나를 감싼 감촉은 포근함이었다. 손에 들고 있던 팥알 핫팩 덕분이었을까, 아지트 자체가 주는 안정감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작품이 관객에게 말을 거는 방식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배우 분들이 관객에게 건네는 인사나 "나는 ~해, 했어, 어디서 왔어?, 너를 위해 준비했어"라는 평어가 '아지트에 너희를 초대할게, 편히 쉬다 가'라는 작품의 스탠스에 잘 어울리는 접근이었다고 생각한다. 얼핏 들으면 아동극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위에서 말했듯 기저에 깔린 상실의 아픔과 친근함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캐릭터 카드와 아지트에 있는 편지들, 그곳에 그려진 캐릭터 표식들 등 관객이 작품과 심적으로 연결되어있게 하는 장치들의 활용이 효과적이었다.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시간과 관객의 역할 및 마지막 퍼포먼스였다. 이동형과 전시형 작품이라고 했지만 이동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짧았다. 총 러닝타임 75분 중 야외 이동 시간은 10분 정도였다. 물론 관객은 작업 경위를 알 길이 없기에 추위를 고려한 선택 또는 코로나 상황에서의 장소 활용 제한 때문이었을 거라고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그저 한양도성길이라는 분위기 좋은 장소를 더 오래 걷고 싶었던 것 같다. 또한 관객들에게 아지트 안을 구경할 자유시간을 많이 주다보니 편지를 읽고 쓴 다음 남은 시간은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몰라 몇 분간은 방황했다. 다음으로 '관객의 역할' 측면은 내가 아지트에서 순간 갖게 된 의문과 연관되는데, 그 의문은 '극 중 아지트의 지구생활자들이 '꼬불이, 더듬이, 따닥이, 따부기, 탱탱이인데 관객들에게도 똑같은 캐릭터를 부여한 이유는 무엇일까?'였다. 지구생활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면서 나도 따닥이고, 이 편지를 쓴 존재도 따닥이면? 내가 괜히 복잡하게 생각했던 것인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을 5개의 캐릭터, 5개의 유형으로 분류했던 것인지 아직까지 답을 찾지 못했다.
배우들의 마무리 퍼포먼스는 공연 분위기의 85%를 차지하던 따뜻함과 정반대의 결인 우울함만 남겨 오히려 그 강한 인상이 아쉬움을 남겼다. 사실 명확한 창작 의도가 부재했다 하더라도 세계관, 아지트, 따닥이 전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이 작품만의 힘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 퍼포먼스를 통해 그 앞의 이동형, 전시형으로 보여준 것들을 건너 뛰고 환경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급하게 남기려는 것처럼 느껴져 당황스러웠다. 더불어 퍼포먼스가 따부기와 더듬이 배우 분들로만 진행되어 그 캐릭터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대재앙과 2121년의 삶으로 공연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내가 받은 캐릭터인 따닥이는 아지트 밖 지구생활자들의 삶에 관심이 많아 페트병이나 캔 등을 수집해오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자고 주장하는, 그로 인해 아지트 생활자들에게 간혹 혼도 나는 캐릭터였던 반면에 따부기나 더듬이, 탱탱이는 유독 아지트의 편지에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말들을 많이 남겼다. 그래서 더욱 퍼포먼스의 시선과 입장에 대해 궁금해졌던 것일 수도 있다.
그만큼 <숲은 노래하지 않고>는 관객에게 다원예술이라는 융합적인 장르를 친근하게 소개하고 공간, 글, 음향/음성 등 다양한 텍스트의 역할과 관계성, 그리고 탈인간중심주의적 태도의 적용 방식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게 한 작품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실제 숲에서 진행되는 <숲은 노래하지 않고>를 경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