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자갈 Feb 04. 2022

전시 <이규태: 순간의 기억>

얇은 획으로 머문 기억들의 공간 방문기 02.03

    요 며칠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했던 듯하여 설 연휴 기간 이후 서울에 놀러가기로 다짐했었다. 무언가를 약속해서 해내기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행복감을 누리러 떠나는 소소한 여행. 서울 차도의 분주함과 골목길의 한적함 속에서 주위 생김새와 소음을 찬찬히 감상하고 싶었다. 투명한 막을 몸에 씌우고 내게 주어진 시간을 주무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세상의 모든 쓴맛은 여과해버릴 것 같은 치기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사색을 원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서울에 가기로 했다. 미리 알아본 전시가 하나 있었다. 알부스갤러리에 열린 <이규태: 순간의 기억>. 이 전시를 알게 된 계기는 트위터에서 팔로우하고 있는 '미술관 다니는 청년' (미청년님이라고 불리는) 계정 덕분이었다. 이규태 개인전 트윗을 봤고 색연필로 그려진 그림에 25도 정도 될 것 같은 초여름의 온기가 있어 갤러리의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졌다. '마음'만 눌러놓은 채 전시에 갈 적당한 때를 찾고 있었다. 관람객들의 후기도 가끔 보면서. 그 적당한 때가 오늘이었다. 하늘은 먼지 없이 청량하고 아직 다 녹지 못한 눈이 곳곳에 남아있고 바람은 자기 멋대로 세차게 불었다, 불지 않았다 하는 오늘의 날씨와 이규태 작가님의 그림들이 묘한 대비를 이룰 것 같았다. 따뜻한 그림들이 피부에 앉은 찬기를 감싸주기를 바랐다. <이규태: 순간의 기억>은 나의 새해 첫 전시이자 생애 첫 갤러리 방문이 되었다.


    순천향대학병원 정류장에 내려 바람을 맞으며 갤러리로 걸어갔다. 이규태 작가님이 태연의 What Do I Call You 앨범 표지 작업을 하셨다고 하여 그 노래를 들었다. 가는 길에 알록달록한 서울한남초등학교가 보여 예전에 친구가 선물해준 코닥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오르막길을 얼마 오르지 않아 새하얀 외벽의 갤러리가 보였다. 사실 바로 들어갈지 말지 고민했다. 5시 티켓을 예매했는데 무조건 여유롭게 가겠다는 의지로 4시 반 쯤에 도착해버렸기 때문이다. 입장 가능 시간을 몰랐을 뿐더러 아무래도 4시 반 입장은 불가능할 것 같아서 갤러리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최대한 5시 근처가 되기를 기다렸다. 직원 분께 문의하면 됐는데 화랑의 세련된 디자인과 그곳에 깃든 고요에 살짝-아주 살짝, 정말이다-주눅들었다. 앞으로의 적극적인 갤러리 방문을 결심하며 건물 뒷편에서 내 그림자 사진을 남겼다. 그러나 고민에 비해 인내심은 부족한 탓에 티켓이라도 받아 놓을까 하여 약 7분 후 용기를 내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5시가 되지는 않았지만 직원 분께서 지금부터 관람해도 된다고 친절하게 말씀해주셨다. 티켓비 결제와 전염병 시국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QR 체크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관람을 시작했다. 갤러리 안으로 몸을 돌리자마자 시야에 들어오는 몇 작품들에 '젠장! 너무 사랑스럽잖아?'라는 감탄사부터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깔끔한 단색의 액자 프레임 안에 얇은 종이가 들어있고 그 종이 프레임 안에 수많은 색과 선들로 채워진 작가님만의 세계가 담겨 있었다. 1층의 작품들은 잠시 뒤로 하고 지하 1층을 찾았다. 지하 1층부터 3층의 굿즈샵까지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 지하 1층에는 작가님의 애니메이션, 책/앨범 표지 작업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지상 1,2층에는 색연필과 펜, 미디어 작업 등 다양한 시도로 완성된 여러 작품들이 있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참에서 티켓을 찍었다. 두 명의 사람과 검은 개가 번갈아보이는 렌티큘러 티켓이었다. 지하 1층은 아이패드로 재생되고 있던 애니메이션의 음악 소리로 채워져 있었다. 더 빅 보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선들이 부드럽게 흐르다가 빗발치면서 음악과 감정의 고조를 이끌어내는 것을 봤다. 또한 죽음은 X X 눈 모양으로, 분노와 반발은 뾰족한 창들로 묘사된 것은 애니메이션만이 할 수 있는 직접적이고 귀여운 표현이기도 했다. 


    전시 공간의 맞은편 통창에 이규태 작가님의 문장 한 줄이 쓰여있었다. 작가님에게 중요한 소재는 상상의 범주 밖의 것을 목격했을 때라고 한다. '그동안 알고 있던 것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보일 때' (전시회 설명글 인용) 그 순간을 기록한다. 그래서인지 그림 속 풍경은 사실적이면서도, 오랜 시간 멈춰있던 회전목마를 도색하고 조명과 윤기를 추가해 재작동시킨 것처럼 아련하고도 신비롭다. 작가님의 손그림에는 순간의 현장감과 이후 그림을 그리면서 떠올리는 그 순간을 소중히 대하는 태도가 맞닿아있었다. 추억이 된 순간을 현재로 불러내어 간직하는 것. 마치 일기장을 엿보는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창작자가 향유했던 시공간이 작품 밖으로 튀어나오는 듯한 그런 공유의 감각을 느껴본 게 얼마만인지 참 뜻깊을 수밖에 없었다. 그림으로 표현된 서울, 뉴욕, 베를린 등의 동네는 물론 다 실재하는 공간이지만 거기서 유리창이 많은 건물 하나를 선택할지, 울창한 나무를 그릴지, 사람을 드러낼지는 작가님 본인의 선택이며 나는 그저 그의 시선으로 탄생한 선택들을 존중하면 되는 것이다. 조금 욕심을 부린다면, 그곳에 있을 나를 상상하면서 나라면 어떤 것을 포착하고 기억할까 혼자 고민해도 되고. 


    이규태 작가님의 그림들을 사진으로 좀 남겨보고 싶었는데 사진보다 맨눈으로 감상하는 것이 훨씬 좋았다. 그래도 앨범을 다시 보니까 사진을 많이 찍어오긴 했다. 방탄 팬이라면 거의 바로 알아볼 수 있는 화양연화 시리즈의 장면들, 태연 앨범 표지, 작품명은 없었지만 우주복을 입은 사람들이 미지의 천체를 탐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림. 그 사람들의 옷은 분명 우주복 같지만 풍경은 그저 석양이 지는 지구 어딘가의 자연처럼 보이기도 했다. 액자 유리에 코를 박고 더 자세히 보고 싶었던 예쁘고 섬세한 그림들이 갤러리의 벽과 계단을 따라 오밀조밀 걸렸다. 하늘과 땅 모퉁이까지 빈틈없이 형형색색의 얇은 선들로 채워져있었다.


    2층에 전시된 벤츠와의 콜라보 작품들은 전부 기억에 남는다. 벤츠 차의 도회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오늘 내가 경험하고 싶었던 서울 특유의 분주함과 한적함이 작지만 넓은 세상의 그림에 모두 담겨있었다. 햇빛 혹은 인공적인 광이 있는 부분들은 색연필로 색칠되어 있는데도 하얗게 반짝거렸다. 작가님은 명암과 그에 묻어있는 풍경 고유의 색감을 탁월히 표현하시는 것 같다. 미술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정말 훔쳐오고 싶은 재능이다. 저절로 반드러운 자동차 표면과 헤드라이트에 주목하게 된다. 


    큰 크기의 작품들도 인상적이었다. 풍경의 앞부터 뒷편까지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들이 놓여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 길에 서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을 나무들, 건물들, 그리고 가로등들. 의자에 앉아 쉬고 있거나 누군가와 함께 걷고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길 바랄 수도 있고 반대로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자동차들은 2배속의 시간을 원할 수도 있겠다.


    내가 야심차게 내리는 결정들이 늘 성공적이진 않지만 아주 가끔은 훌륭한 결과물을 뽑아내기도 한다. 오늘 이규태 개인전을 관람하기로 한 것이 딱 그렇다. 작년 10월부터 친구들과 하고 있는 작업의 중심 소재가 공간을 매개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들인데 기억이라는 개념과 계속 부딪치다 보니 그것을 풀어내는 다양한 시도들에 자연스레 관심이 간다. 순간의 기억을 다룬 이규태 작가님의 그림에는 당시에 존재했던 혹은 존재했을 법한 풍경과 그것을 재구성한 작가님의 시선, 그리고 관람객의 공감과 상상력이 서로 마주걸려있다. 여기서 '공감'이라 함은 작가의 시선에 무조건적인 동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소우주로의 초대에 응하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꺼내는 것이라고 정의해본다.


나의 행복을 채우러 떠난 소소한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오늘은 시간이 지나도 변색되지 않는 기억 조각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다원예술 <숲은 노래하지 않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