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릇은 언제부터 간장종지가 되었을까

by 명랑한자몽


나는 엄마다.

육아휴직 4년 차,

사회생활과 단절된 지 4년 차의


직업 엄마

전담 엄마

집사람이다.



어젠, 등원 길에

가만히 그리고 우직하게 그저 서 있는

철 바리케이드를 들이박았다.


운전 중 꽝! 하는 굉음에

옆을 보니

오른쪽 사이드미러가 형체만 남고

거울은 온데간데없더라.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운전경력 15년 차에 겪는

내 안의 과격한 부주의함이었다.


아껴둔 내 생일선물용이던 비상금(내 생일은 7월이다)이 떠올랐다.

그 귀한 것을

한낱 이 차의 오른쪽 귀를 위해 쓰게 되다니.


신랑이 시키지도 않은 비용처리를

그냥 내 양심이 그리하겠다 생각했음에도

비통했다.

억울했다.


그 비통함과 억울함은

자존감을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는 공격력이 되었다.


뭐하냐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하니
그 돈은 어떡할 거니
니가 지금 돈을 한 푼 버는 것도 아니잖니

거기까지 결국 가버리고 말았다.


엄마한테 먼저 고해성사했다.

신랑보다 엄마에게 먼저 했다.


벼랑 끝에 아슬아슬 선 내 마음이 너무 따가워

엄마의 쿨함이 필요했던 가보다.

역시나 언제나 그랬듯 엄마는

쿨한 대인배 으른이었다.


다른 차른 박은 것도,
사람을 박은 것도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니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에 얼마나 큰일이 많은데
괜찮은 거야. 괜찮아.



마음이 좀 식어 내렸다.

괜찮다는 말은

꽤 괜찮은 힘이 있는 말이다.

신기하게

전혀 괜찮지 않던 일이

꽤나 괜찮게 느껴졌다.


용기를 내서 신랑에게도 이실직고했다.


아 제발

오래된

익숙한

그런 관계에 걸맞은

그런 리액션은 부디 하지 마


하며 은근 마음 졸였다.




다행이었다.

그는 그래도 아직 꽤 내 편이었나 보다.


모든 게 훨씬

괜찮았다.


내 차의 오른쪽 귀가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도,

얼만지도 모를 수리비가 안 들게 된 게 아닌데도,

내 마음은 꽤 괜찮아졌다.


사실 엄마의 말처럼

아직은 내 편인듯한 그 이의 걱정처럼

별 것 아닌 것일지도

내가 안 다쳤으니 감사하면 될 일이었을지 모른다.

태만해진 15년 차 드라이버의 교만함을

다시 겸허히 하면 될 일이었다.



나의 세상이

집이라는 세계로 급속히 좁아지면서

나의 세상이

급속히 좁아진 상태로 지속되면서

내 마음도

급속히 옹졸해지고

내 마음이 옹졸해지면서

내 그릇도 작아지고 있는 듯하다.


엄마의 시간은

좀 그런 것 같다.


나는 별로 없고

내가 하는 것이 별 것 아닌 것처럼

그래서 나조차 별 것도 없는 이처럼 느껴지는

사실 아무도 그리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옹졸을 자처한

진짜 옹졸한 시간.


누군가의 괜찮은 말이 아니라

나 스스로 나를 좀 괜찮아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엄마가

또 그 이가 그러하듯

건강한 엄마, 아내, 딸 되어야지.


스스로 간장종지 그릇을 자처하는 일처럼

간장종지 같은 그릇도 없으니 말이다.




#간장종지야너를비하한건아냐

#넌내만두를부침개를한판더하게하는

#그런위대한존재인걸

#섭섭했다면미안해

#justametap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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