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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Aug 28. 2023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사는 삶

  어느 팟캐스트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었다. 

좋은 어린이는 많지만 좋은 어른은 별로 없다.

 

  참으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내 아이를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한다 생각하면서도 육아가 지독하게 그리고 끝도 없이 힘든 것은, 좋지 않은 어른이 이미 좋은 어린이를 뭘 더 좋아지게 하겠다고 욕심을 내려니 이건 이미 주객이 전도된 듯한 전제 자체가 이미 오류가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이 아이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정말!’ 하는 환희의 감격의 행복의 와우 포인트가 수도 없이 존재하는 엄마의 삶이지만 출산을 고민하는 어떤 이에게 딩크족의 삶을 권하게 되기도 하는 것은 어쩌면 이미 좋은 이 아이를 키워내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이 안 좋은 어른인 나의 모습에 직면하는 게 괴로워서 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요즘 살면서 가장 자주, 가장 많이, 가장 심도 있게 평생 몰랐으면 했던, 덮어두고 숨겨두고 싶었던, 나만 알았던, 아니 혹은 나도 몰랐던 나의 별로를 발견한다. 하지만 참으로 안타깝게도 나의 그 별로는 나의 아이에게 흘러간다. 아이가 보이는 행동 속에서 나의 별로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 정말 얼마나 화가 나는지... 하지만 정직해야 하고, 인정해야 한다. 네가 아니라 결국 사실 완전히 순전히 나 때문에 화가 났다는 걸.


  아이가 자라나며 기쁨, 슬픔 외에도 꽤나 복잡한 감정들을 읽기 시작했다. 

  “엄마는 바쁘면 화도 같이 생기는 거 같아. 그래서 지금 내가 바쁘지 않도록 도와주는 거 에요.”

  이제 꽤 자주 나의 작은 친구들에게 나를 들킨다. 아무래도 틀림없이 그러한 것 같다. 언젠가 알겠지. 지금은 엄마의 똥은 향고래의 똥처럼 향기롭다고 속여도 철석같이 믿는 이 친구들이지만 머지않아 똥은 똥일 뿐이고 결국 그 똥이 그 똥이라는 걸 알게 될 테지. 그것처럼 지금은 나의 어린이들에게 우주이고 전부인 엄마가 사실은 얼마나 별로이고 약하고 부족한 사람인지도 들키게 될 거다. 그날이 오기 전에 향고래 똥일 수 있는 지금 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이것도 저것도 해 보고 있었다. 영어를 유창하게 말해보고 싶어. 필라테스 열심히 해서 이노무 몸뚱이를 좀 진정시키고 싶어. 그림도 그릴 거야. 글을 써야지. 멋들어진 작가가 될 줄 누가 알아? 

  하지만 진짜 채워져야 할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단 생각을 엄마가 된 지 7년이나 지나서야 조금씩 하게 된다. 나는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얼마나 나는 무언가를 손에 쥐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저 그냥 아이들 바라보며 밥을 짓고 끝도 없는 집을 치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내가 이토록 탐욕스러운 사람이었는지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하는 지금에서야 발견한다. 아이를 키우는 너무나도 원대하고 위대한 일을 내가 하고 있다며 아무리 위로해 보아도 나의 행복은 결국 손에 쥐는 것에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좇아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늘 되뇌었고, 우린 그래야 한다고, 늘 그것을 설파했었지만 나는 참으로 모순덩어리였던 게다. 40년이 가까워진 인생에서의 삶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내 안을 들여다본다. 어떤 성과나 업적이 아닌 진짜의 나를 본다. 진짜의 나를 세우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 정도면 꽤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았던 시간이 있었다. 아니 건방지게 그것보다 조금 더 높게 평가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참으로 좋은 나의 이 어린이들과의 시간으로 나는 들켜버렸고 이 모든 게 착각이었다는 엄청난 충격을 떠안게 되었다.


  결국 처음 약속과는 달리 함께 책을 네 권이나 읽고서야 잠자리로 들어가는 나의 어린이들이 목이 마르다고 했다. 물을 한 잔씩 건네 마시게 하곤 방으로 들여보낸다. 윗옷은 바지 안에 잘 넣고, 이불이 혹시 답답하면 배라도 꼭 덮자고 이야기한다. 우리 어린이들로 시작해서 온 가족을 돌아 오늘 하루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 기도를 마친다. 뽀뽀를 하고 잘 자라고 인사를 하고는 문을 살짝 열어두고 돌아서려 하는데 또 목이 마르단다. ‘아니 방금 마셨잖…….!!!!’ 아... 또 버럭 할 뻔했다. 이깟 게 뭐라고 버럭 인지. 참.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는 컵을 건넨다.

  “자다가 화장실 가고 싶을 수 있으니까 한 모금만 더 마셔 그럼.”


  좋은 사람은 글렀고 나는 더 나빠지지 않고 싶다. 제발. 좀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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