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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Nov 13. 2019

육아의 신

                                              

나의 제2 외국어는 중국어였다.

뭐 미래지향적이라거나 장고 끝 결정은 아니었더랬고

그저 그냥 선택했었더랬다.


1년간 그렇게 중국어를 배웠다고 하지만 나에게 남은 것은

【  니 찌아오 셤머 밍쯔     니 츠 판 러마 】


 정도이다.




나에게 육아도 그런 것 같다.

지난 나쁜 엄마 되기 필승법 편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4년 간 그 어떤 전공보다 육아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배웠고,

비록 아직 논문 못 쓴 석수로 7년간 있지만서도 대학원도 진학했었다.

현장에서 일도 하다가 현재는 육아휴직 중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나에게 육아는 어떠한가?

결론부터 말해보자면,

난 요즘 미치도록 육아가 어렵다.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언제 쉬워질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만 같다.



많이들 얘기한다.

애들 키우기 쉽겠다고.

애들이 왜 그러는지 잘 알겠다고.

네가 모르면 누가 아냐고.


그러게.. 그런가?



근데 왜 난 모르겠지. 왜 이렇게 어렵지.

(치 뭐 그럼 경영학과 나오면 다 창업 성공하고

심리학과 나오면 역술인 된다냐 쳇.)


그저 나를 슬프게 아프게 하는 말들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에게 육아는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내 인생의 다인데

나는 요즘 도통 얘네들이 무슨 생각인지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는 것이 투성이다.




육아를 잘한다는 건 어떤 걸까?

육아의 바운더리는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더운 여름 온몸에서 육수 다 빠지게 놀이터서 놀아주면 될까? (나의 빠져버린 진은 누가 채워주나)
손수 만든 음식들로 밥상 가득 채워주면 될까? (왜 유독 신경 써서 차린 밥상에 그들은 더 안 먹는 것 같은 건데)
예쁘고 깨끗한 옷을 입혀주면 될까? (이런 디테일까지 챙겨야 하고)
놓치지 않고 예방접종 잘 챙겨주면 될까? (매번 문자는 오는데 도통 이게 1번 거라는 건지, 2번 거라는 건지 헷갈려 죽겄고;)
어디서도 말 잘 듣는 아이가 되도록 호되게 야단이라도 쳐서 버릇을 잘 들이면 될까? (어른들은 혼을 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전문가들은 만 3세까진 뭐 어쩌고 저쩌고 하고.. 나보고 진짜 어쩌라고!!!)


육아의 바운더리는 너무 넓고, 나는 한 명이다.

하루는 24시간이고,

나의 체력은 아이들을 못 따라간다.


한 명도 못 따라갈 판에 13개월 차이 둘이 때리고 밀치고 울고 뺏고 해대니...


육아도

어릴 적 한 때 빠져있던 프린세스 메이커(너무 옛사람 같나;)처럼

야매로 시간 막 돌려서 얼른 미래에 뭘로 자라났는지 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다시 되돌려 지난 캐릭터가 부족했던 능력치를 채워볼 수 있다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었는지 알게 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육아는 우리 아이의 능력치를 확인할 수도 없고,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 견디고 이기며 지나가며 잘 되었길 기도할 뿐이다.



오늘도 나는 살림과 육아를 한다.                                              



말린 표고, 양파, 무 조각, 파, 멸치, 다시마를 넣어 푹푹 육수를 내고,

쟁일 수 있는 반찬들을 만들어 냉동실에 꽁꽁 얼린다.

빨래와 설거지를 하고

건조기에서 나온 옷가지들을 정리한다.


바쁘게 돌아다녀도 아직 할 일은 항상 태산이다.

곧 배달 올 인터넷으로 장 본 재료들을 정리해야겠지.

아침부터 신나게 놀아재끼신 저 방도 치워드려야 또 하원 해서 신나게 놀테고,

내 육아에 식사만 없어도 꽃길 같겠다 생각될 정도로 내 안의 수많은 금수를 소환하는 식사 준비도 해야 하고 말이다.


그냥 이렇게 하기로 해 본다.

'좋은 엄마 되기'

'현명하게 육아하기' 같은

무겁고 말도 안 되는 육아의 신 강박에서 벗어나자고 말이다.


주부 9단은 있어도 육아 9단이란 건 없는 것 같다.


그저 모두 자기 나름대로 (상황에 맞게) 할 수 있는 사랑을 해주고,

아이에게 화가 나는 엄마의 마음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매일 같이 때리고 화해하고 용서하고 그러는 두 아이에게

차근차근 천천히 이해시켜 보기로.

그냥 모두 천천히 가 보기로 하자.


오늘도 숨 가쁘게 달려오느라 나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이 땅의 모든 육아 엄마, 아빠. 모두 고생하셨어요.


오늘도 열심히 사랑한 우리가 바로 육아의 신!


우리 그냥 조바심 내지 말고 천천히 하기로 해요.

다 지나갈 거고, 사랑스럽게 잘 자라날 테니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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