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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Nov 13. 2019

주류가 되고 싶었던 히피 머리 비주류

대학 때 톤다운된 핑크 저지티에 황토색의 무릎까지 오는 플레어스커트 같은 바지, 흰색 가죽 롱부츠를 신고 온 나를 보고 몇몇 오빠들은 엄청 놀려댔다.

부글부글하게 투박한 실로 짜여진 벌키스웨터를 입고 교회에 갔다가 할아버지 옷을 입고 왔다고 놀림을 받기도 했고,

지금은 시폰 드레스가 계절에 상관없이 입는 아이템이 되었지만, 그때 당시 내가 있던 세계에서는(다소 보수적 환경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겨울에 시폰 드레스를 레이어드 해 입는 나를 좀 이상하게 여겼다.

원단시장에서 초록색 울 타이즈 발견하고는 감격했으며,

한여름에 원피스 안에 레깅스를 덧대어 입으며 더위를 기꺼이 감내해냈다.

반팔티에 울 비니를 쓰고 여성스러운 드레스에 캡 모자를 쓰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머리에 하는 아이템들은 잘 어울리지가 않았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는 무난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티셔츠에 바지, 운동화만으로 밖에 나간 적은 거의 없던 것 같으니 말이다.(그렇게 입은 날은 머리라도 땋아야 직성이 풀렸던 것 같기도 하다)


주류에도 다양한 범주가 있다면,

아마 그 주류의 어떤 한 범주 정도는 차지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한다.



그러나

난 결혼을 하고 글래스고 대학의 영양학 박사 캐서린 행키님의 연구를 증명이라도 하듯 (다소 격하게) 살이 쪘으며 또 시간은 나이를 들게 했다.

그러한 이유로 나의 양심은 더 이상 미니드레스나 무릎 위로 오는 옷을 허락할 수가 없어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임신을 했고,

첫 번째 임신을 하고 13개월 후 두 번째 임신을 하며 엎친데 덮친데 굳혀버렸다.  

물론 임신은 그래. 핑계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거치고도 여전히 상큼한 엄마들도 요즘엔 정말 많으니까.. 쳇.

나의 경우는 그게 아니니 그냥 가장 좋은 그 핑계를 단호히 핑계 삼겠다.


나이도 들었고 이 몸무게를 해서는,

지금껏 지향해오던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은 너무나 양심이 없는 일이라 여기게 되었다.

옷을 좋아하는 나에게 찾아온 패션 암흑기였다.

(그래서 지난 4년간 명목으로는 계속 다이어팅이긴 하지만 성과는 매우 미미하다.)


패션 암흑기는 내 인생의 철저한 비주류기이기도 했다.

본인 확인 차원에서나 혹은 병원이나 가야 불려질 이름으로 사는 엄마의 삶이니 말이다.

엄마의 삶의 주류는 아이들이고, 남편이다.

아침에 일어나 물 한잔 마시고 이만 닦고는 그때부터 남편과 아이들 사회생활 준비(그나마 혼자 씻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음에 다행이라고 여기며)에 나는 맨날 패션 테러리스트를 겨우 피할 요량(그래 못 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으로 衣의 차원만 챙긴 채 허둥지둥 나가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는 브런치라는 일탈의 공간이 생겼다.

브런치의 시간은 비주류의 살찐 30대 중반 아주머니가 주머니에 꼬깃꼬깃 넣어두었던 소녀를 꺼내는 시간이었다.

사색하고,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배치하며, 나를 돌아보고, 나를 꺼내보았다.

어떤 날은 내 안에 소녀가 아직도 있었음에 소녀처럼 설렜고,

어떤 날은 외향과 내향의 불일치로 현실이 참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는 불쑥 정말 불쑥 미용실에 가서 히피펌을 했다.

헤르미온느의 이상을 가진 해그리드라는 실체이지만서도

히피펌은 나에게 생기로 작용하고 있다.

나는 이제 그냥 살찐 30대 평범한 비주류의 아줌마가 아니다.



심지어 히피펌의 아줌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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