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왕년엔 말야
나도 몰랐다.
내가 이렇게 얼굴과 나이에 집착하는 사람인 줄.
참으로 이 엄마의 시간은 몰랐던 나를 발견케 하는 시간이기도 한가보다.
요 근래 서울의 모 병원에 갈 일이 잦았다.
그날도 시부모님과 병원에 있었는데, 손님이 오셨더랬다.
나는 가볍게 인사만 드리고 뒤로 빠져있었고, 어른들의 안부인사가 오갔다.
(앗 여기서도 드러난다. 아직도 어른인 줄 모르는 3일 후 35살의 어른.)
손님은 우리 시부모님과 한참의 안부인사 끝에 그제야 나를 흘끗 보시고는 어머니를 향해
"누구? 시누인가?"
"아니, 우리 며느리잖아."
"아, 며느리."
난 정말 너무 놀랐다.
최근 가장
아니 내 생애 가장
갑작스럽고 전혀 예상치 못했으며 공격력도 거진 사망에 가까웠던 순간.
처음 당해 본다.
시누이 공격
시누이도 없는 내가
이토록 잔인한 시누이 공격을 당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해봤다.
자자 차분하게..
나는 녹색창에 시누이를 눌러본다.
혹시나 내가 아는 그 시누이와 다른 시누이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에이씨.....
우리 아버님이 내년에 환갑.
그래 늦둥이 여동생도 있을 수 있지.
그래. 진짜 심한 늦둥이는 몇 살까지 가능할까.
자..
아이씨 아무리 많이 봐도 진짜 심하게 양보해도 마흔 아니냐???????????????????????
손님이 가시고, 어머님 아버님과 이야기 중에
“근데요, 어머님. 저 동안이잖아요?”
(이 타이밍에 대답 안 해주시고,)
“저 동안이었거든요(이제 생각해보니 ‘이었던 건’ 뭐야). 근데 아까 저보고 시누이냐고 하셔서 저 진짜 너무 놀랐잖아요.”
(어머님 아버님이 심하게 웃으신다.)
“아니, 아버님. 그쵸? 저 동안이죠? 그렇잖아요.”
(아버님은 왜 아무 말씀 안 하시고 웃기만 하셨을까)
“에이 아니지. 그냥 말을 잘못한 거지. 누가 너를 시누이로 봐. 내가 자기 시누이라는 거지. 나보고 말한 거야. 너보고 한 거 아니야, 아니야.”
같은 말의 반복적 사용은 그 말이 가진 참 의미에 대해 다시금 고찰해보게 한다.
사실 어머님의 어떤 리액션도 큰 위안이나 만족함을 주진 못하였으리라.
하지만 정말 만족스럽지 않은 심하게 석연찮은 그러한 리액션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그래. 잘못 말씀하신 거겠지.
찝찝스러운 마음과
생채기 난 동안이었더랬었었던 경력으로
충격이 잘 가시지 않던 몇 날을 보냈다.
그리고 그제, 동네 서점에 들렀다.
요 근래 이래저래 바빠서 차분한 나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터라 간만에 간 서점에 들떠있었다.
나의 친구들이 볼 만한 동화를 들여다보고, 검색해보며 시간이 가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동선으로 도서 섹션 몇 곳이 겹치던 한 여자분께 누군가가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메*스터디에서 나왔습니다. 초등학생 대상으로... (어쩌고 저쩌고).”
아마 서점에 잠입(?)하여 호시탐탐 고객을 탐색한 후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 그 회사의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분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 엄마가 되면 진짜 저런 관리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할 수도 있겠네. 그래, 멀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어 나도.’하는 생각을 스치듯 하면서 계속 동화책을 기웃거렸다.
“실례합니다.”
그분이었다.
안 돼. 아직 시누이 공격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다고!!!!!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저 혹시 초등학생 자녀가 있으신가요?”
“아니요. 없습니다.”
초등학생 자녀라니!!!!!!!!!!!!!!!!!!!!!!!!!!!!!! 없어! 없어! 없어!!
그래, 내가 일찍 결혼하고, 아이를 일찍 낳아서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자녀가 있다라고 한다면 내 나이는 몇 살쯤 되는 거야.
그렇게 또 처량하지만 빠르게 머릿속 계산기를 돌린다.
그리고는
초등학생 자녀 앞에 붙었던 ‘혹시’에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며 현실을 또 도피해본다.
근 2주 사이에 당한 두 차례의 공격으로
난 시들해져 있다.
왕년에 기대고 살면 꼰대라던데..
정말 가지가지하고 있구나.
나는 그렇게 no동안의 꼰대 35살을 준비하고 있었다.
근데, 자기.
오늘 내가 세수 막 하고 나와서 ‘오늘 좀 예쁘지 않아?’라고 했을 때
왜 대답 안 하고 웃었어?
응?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