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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May 11. 2020

buen camino!

누워 앵앵 울기만 하여 녹색창에 '아기 울음'에 관한 검색어로 꽉꽉 채우게 하던 그 아이는,

이 닦으라고 10번 정도 화를 꽉꽉 누르며 말을 해야 겨우 듣는 4살 언니가 되었고

기저귀도 어떻게 채우는지 몰라 조리원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던 초보 엄마는

어느덧 1300여일을 채워낸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우리 친구들은 43개월, 31개월이란 시간 동안 없던 이가 나고,

직립보행이라는 거대한 신체운동 스킬을 습득해냈으며,

한국어라는 언어 능력을 장착하게 됐을 뿐 아니라,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1300여일이라는 시간을 보낸 엄마는 어떠할까,

그냥 1300일만큼 늙지 않았나 한다.


엄마의 시간은,

모래성 같아서 시간이 거듭된다고 쌓이는 것이 아니다.

많이 쌓았다 생각하면 스르르 바다로 스며들어 또다시 쌓으라 한다.



분유 타기 적당한 물의 온도를 감각만으로 알 수 있게 될 무렵엔

그들은 이유식을 먹어야 한다고 하였고,

기저귀 소변줄에 의지하지 않고도 기저귀를 교체할 타이밍을 캐치할 수 있을 즈음엔

그들에게 변기에서 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했다.


엄마에겐 어떤 스킬이 장착이 될 만하면, 새로운 스킬이 필요했고

숙달이란 단어를 사용할 겨를이 주어지지 않는다.

날마다 새로운 능력치를 생성해내는 이 친구들을 따라가기에 그저 바쁠 뿐이다.

매일매일 또 다른 시작이고 말도 안 되지만 내일은 또 시작인 셈이다.

그래서 나에겐 분명 1300일이라는 시간이 쌓였지만, 1300일만큼의 경력은 또 아닌 것이다.


지금껏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정도의 욕구 중심에 국한되던 그들의 필요가

인지, 정서, 사회관계로 뻗어나간다.

새로운 국면의 스킬이 요구되는 순간이다. 나는 또 한 번 큰 의무감과 책임감의 무게에 직면한다.

내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고 나에게 그저 잠깐 맡겨진 아이들일 뿐이라 생각하기로 했음에도

그저 나의 책임일 것 같고, 나의 잘못인 것 같다.


또 둘 밖에(?) 되지 않는 나의 이 친구들은 어쩜 그리도 다른지..

두 아이가 각자의 색으로 행복하고, 빛나길 바라는데

한 명인 엄마는 어떻게 다양한 색을 칠해줘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나의 이 친구들이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될수록 많은 것을 해야 할수록

이 엄마도 많은 것을 알아야 하고, 많은 것을 줄 수 있어야 할 텐데

아이들을 향한 욕심은 쌓이지만 스킬은 그만큼 따라가 주지 않으니 마음이 답답하고, 죄책감만 쌓여간다.


어느덧 육아휴직기간이 벌써 햇수로 4년이 되어 간다.

가끔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이나 죄책감의 무게가 버거워

‘그냥 복직을 할 걸 그랬나. 무슨 대단한 엄마가 되어주겠다고, 별 거 하는 것도 없으면서 이렇게 있나.‘ 하는 어두운 마음이 가득 채워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년 복직이라는 또 한 번의 완전한 새로운 시작을 상상하면

이 어린 친구들이 늦게까지 엄마 없이 어떡하나, 일에 지친 내가 이 친구들에게 많은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과연 그 희생과 복직이 수지타산이 맞는 계산이냐 하는 생각도 든다.

일을 하는 엄마는 일을 하는 엄마대로 엄마가 직업인 엄마는 그 엄마대로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해결되지 못할, 때 아닌 자아성찰의 시간을 새롭게 겪게 되는 것 같다.

육아에 정답이 있어서 그냥 그걸 공부하면 잘할 수 있게 되는 거라면 좋겠다.

그저 우리 친구들을 좋은 길로 안내해 줄 수 있는 엄마이고 싶은 마음일 텐데,

매일이 처음이고 시작인 엄마는 그 좋은 길 찾기가 너무 어렵다.


오늘도 엄마로 살아간다.

이들을 더없이 사랑하는 만큼 마냥 매일 예쁘지만은 않고,

이들이 자라날수록 고민도 깊어지지만 흡족하게 최선을 다하지도 못하는,

아이러니로 가득 채워진 엄마의 시간이지만 오늘도 그저 엄마로 살아간다.


매일이 서툰 시작인 이 엄마와의 시간이 너희들의 좋은 시작이 되어주길.


행복한 너희들이길.

행복한 엄마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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