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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자몽 Jul 01. 2021

우리 모두 한 때는 가졌었잖아요

이런 분홍분홍한 생각을


어느덧 나의 두 꼬마친구가 완전한 수면 독립을 한 지 8개월에 접어들었다.

육아에 있어 가장 난이도도 피로도도 높다고 여겨지던 분야였기에,

그 대단한 관문이 끝나던 날 참으로 시원하기도 했지만 무척이나 섭섭키도 했더랬다. 물론 섭섭한 건 아주 찰나이고 현재까지 쭈욱 8개월을 신나오고 있긴 하지만.

그렇게 신나오고 있던 어느 날 바로 그제였다.

여느 때와 같이 누워서 재잘재잘 수다를 떨고는 기도를 해주고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나왔다.

근데 문을 닫은 지 10초나 되었을까 울음소리가 들렸다.

"누가 우는 거야? 리온이야?"

"네, 엄마. 자꾸 무서운 생각이 들어요."

"그럴 때가 있지. 어떤 생각이었는데?"

"괴물이 집에 오는 생각이요."

"근데 괴물은 우리집 비밀번호를 모를 텐데?"

"그치만 띵동 하면 어떡해요?"

"그건 엄마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그럼 저기 창문 열려져 있으니까 저기로 올 수도 있잖아요."

"우리집은 16층이나 되는데? 너무 높아서 올라올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을까?"

 "계단으로 먼저 올라온 다음에 창문으로 가서 오면 어떡해요?"

"아 계단으로.. 그치만 계단에서 여기 창문으로 오는 건 너무 위험하고 떨어질 수도 있어서 괴물이 그 방법을 선택하진 않을 것 같아."

"알았어요."

"엄마가 기도 한 번 더 해줄게."


대화를 마치고 다시 문은 닫혔고, 이것저것 나머지 집안일이 시작되었다.

얼마 시간이 흐르지 않아 또 울음소리가 들렸고, 고민에 빠졌다.

8개월간 쌓아온 수면 독립 사업이 오늘로 도루묵이 되는 건 아닐까,

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내가 옆에서 함께 자준다면 저 여시방구 녀석이 내일도, 모레도, 울고 버티는 방법을 시전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난 8살이 되어서도 늘 아빠한테 같이 자면 좋겠다고 졸랐었지.

잠잘 시간 즈음 들려오던 경찰청 사람들의 공개수배 시그널 음악이 그렇게도 무서웠더랬지.

그래, 밤은 참 그렇긴 해.

많은 생각과 지난날을 돌려보고는 난 베개를 챙겨 들어갔다.

이마를 콩 한 대 치고는 진짜 오늘만이야! 했더니 어쩜 그렇게도 예쁘게 웃어주던지.

어쩔 수 없이 꼭 안아주고는 또 뽀뽀 백번을 해버렸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아주 업어가도 모르게 잠이든 것 같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벼운 몸짓으로 방을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늦은 밤이 돼서야 컴백한 나의 10년 지기 남자 친구와 요즘 빠진 드라마 1편을 때리고는 자정이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또 울음소리가 들려 환청인가 했지만 아니었다. 또 그 녀석이다.

아... 오늘은 진짜 글렀구나.

베개를 주섬주섬 챙겨 그녀 옆에 누웠고, 작은 손을 꼭 잡고 작은 침대에 이 큰 몸을 구겨 눕혀서는 쪽잠을 잤다. 규격에 맞지 않은 침대다 보니 나는 3시, 4시, 5시 아주 그냥 시계마냥 잠이 깨서 아침이 되어서도 영 잠을 잔 것 같지가 않았다.


또 하루가 지나고 다시 저녁.

이를 닦고, 동화책을 읽고, 잠을 자기 위한 단계가 마무리될 즈음 다시 다짐을 받았다.

"리온이가 오늘은 진짜 울지 않고 잘 잔다고 했었어. 그치?"

"응, 오늘은 울지 않을 거야."

하지만 오늘은 심지어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울먹거림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좀 화가 났다.

이미 어제저녁 너무 잠을 자지 못했고,

이게 몇 날이나 지속될까 두려움이 엄습했다.

"엄마 자꾸 괴물 생각이 나요."

"그치만 리온아, 만약에 괴물이 나타난다고 해도 말이야.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나오는 괴물도 모습은 무서웠지만..... 그 남자 친구 누구더라?"

"음... 맥스?"

"그래, 괴물들은 맥스랑 계속 놀고 싶다고 하고 맥스랑 노는 걸 좋아하는 그런 친구들이었잖아. 나쁜 애들이 아니야. 만약 괴물이 나타난다면 그건 리온이랑 놀고 싶어서 그러거나, 리온이가 잠을 자는 모습이 궁금해서 오는 걸 거야."

"나랑 놀고 싶어서?"

"응. 그니까 괜찮아."

다시 그녀는 잠을 자러 들어갔고, 나도 안방으로 기도를 하러 들어갔다.

그런데 기도가 끝날 무렵 다시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고,

결국 아름답지 않은 표정, 어조, 말투가 동원되어버렸다. 거기에 정죄는 당연히 따라오는 기본 옵션이었고 말이다.

한바탕 울고 난 친구의 코를 풀어주고 조금은 영혼을 잃어버렸던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다시 들여보냈다.

어느덧 처음 잠을 자기로 들어간 시간보다 1시간이 넘게 흘러버렸더라.


그리고는 어제,

괴물 사태가 발발하고 3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잠잘 시간이 가까워오자 그녀가 말했다.

"엄마, 어차피 괴물들은 나랑 놀고 싶어 해. 그치요?"

"응, 리온이랑 놀면 재밌거든."

"맞아. 괴물들은 착한애들이거든. 그래서 나는 오늘 울지 않고 씩씩하게 잘 수 있어."

"응, 리온이는 할 수 있어."

그리고 그렇게 3일 만에 다시 8개월간의 루틴으로 돌아갔다. 휴.


피곤한 요 몇 날이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보면 참 귀여운 사건이다.

으른 중 누가 괴물이 나타날까 두려워 잠 못 이룰까.

으른 중 누가 괴물이 계단을 타고 올라와 창문으로 들어오리라 상상을 할까.

으른 중 누가 엄마가 옆에 누워주는 것만으로 그렇게 예쁘게 웃어 보일 수 있을까.


그 시간 안에 있을 땐 느끼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예쁜 의미가 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잃어버리고 마는 예쁜 마음이 있다.


우린 모두 가졌었다.

그런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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