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 - 어쩌나(Oh my!)
나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세븐틴의 팬이었다. ‘이었다.’라고 과거형으로 적긴 했지만 완전히 탈덕한 건 아니고 차애돌 정도로 마음 한편에 두고 그들을 응원하고 있다. 여전히 <고잉 세븐틴>도 챙겨 보고 그들의 음악도 즐겨 듣는다. <고잉 세븐틴>(이하 고셉)은 케이팝 팬덤 내에서 ‘아이돌계의 무한도전’이라 일컬어지는 세븐틴의 자체 콘텐츠다.
2017년부터 시작된 고셉은 2019년 중반기에 외주 제작으로 바뀌면서 콘텐츠의 퀄리티가 급상승했다. 매회 색다른 특집과 체험으로 이루어져 보는 재미를 선사하고, 세븐틴 멤버들과 제작진의 케미가 빛을 발해 지금은 타 팬들도 즐겨보는 명실상부 콘텐츠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업로드되는 편마다 조회수가 적게는 200만 대, 많게는 800만 대를 기록할 정도이니 말이다. 고셉을 보고 세븐틴이 웃겨서, 멤버끼리 사이가 좋아서 입덕했다는 사람들이 많다.
기본적으로 모든 멤버들이 재미가 있고 나이로 서열을 나누지 않는 데다, 열세 명의 멤버를 그 어떤 조합으로 엮어놔도 불편하지 않을 만큼 관계성이 좋은 것도 덕질 포인트인 것은 맞다.
그러나 무엇보다 세븐틴은 본업을 잘한다. 보컬 유닛 리더인 우지를 필두로 하여 자신들의 음악을 직접 만드는 것은 물론, 13명이나 되는 다인원 그룹임에도 ‘코딩 안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완벽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그들의 다채로운 음악과 뛰어난 퍼포먼스 실력을 알고 나면 더욱 깊게 빠질 수밖에 없다. 금방금방 최애가 바뀌는 내가 무려 4년씩이나 캐럿으로 지낼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남다른 실력 때문이었다.
나의 17년 덕질 인생 중 최고로 행복했던,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바로 2018년 7월 1일, 세븐틴 콘서트 <IDEAL CUT>의 마지막 날이다.
콘서트가 완전히 끝난 후 열기가 식지 않은 채로 천천히 퇴장하던 중, 갑자기 콘서트장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앵콜을 다시 할 리가 없는데?!’ 하며 모두 어리둥절해 하던 와중에 전광판에 무언가가 떴다. 바로 세븐틴의 컴백을 알리는 트레일러 영상이었다. 이전까지 컴백 관련 스포를 하나도 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곳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라서 입.틀.막인 상태로 소리를 질렀다. 말 그대로 광란의 현장이었다.
30초도 안 되는 짧은 영상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모두가 흥분된 상태로 ‘미친’ ‘대박’을 연신 말하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아래 영상의 ‘28분 21초~28분 35초’에 그 생생한 현장이 담겨 있다. 한순간이었지만 내 덕질 생에 그때만큼 짧고 강한 행복을 느꼈던 적이 없었다.
이 트레일러 영상을 시작으로 2주 동안 티저 사진과 영상이 차례로 뜨고 난 뒤, 드디어 세븐틴의 미니 5집 앨범 <YOU MAKE MY DAY>가 발매되었다. 팬들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청량’을 콘셉트로 한 여름 앨범이었다.
이 앨범은 타이틀곡 <어쩌나>, 단체곡인 <Holiday>, <우리의 새벽은 낮보다 뜨겁다>, 보컬 유닛곡 <나에게로 와>, 힙합 유닛곡 <What’s Good>, 퍼포먼스 유닛곡 <Moonwalker>까지 총 6개의 곡이 수록되어 있다. 어느 곡 하나 버릴 것 없이 여름과 아주 잘 어울리는 청량한 곡들이다. 곡의 느낌이 전부 다른데도 서로 조화를 이루며, 찬란하고 아름다운 청춘을 그려내고 있다.
<어쩌나>, <Holiday>, <나에게로 와>는 아침부터 이른 저녁까지, <What’s Good>, <Moonwalker>, <우리의 새벽은 낮보다 뜨겁다>는 저녁부터 새벽까지 듣기 좋은 곡이다. 당연히 시간대와 상관없이 그냥 들어도 좋다. 무더운 날에 이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들어보길 추천한다.
타이틀곡의 제목이 <어쩌나>라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 우지가 정말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나’라는 말은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실생활에서 흔히 쓰이던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너무 좋아져서 어찌해야 할지도 모를 만큼 벅찬 마음을 ‘어쩌나’라는 단 세 글자로 표현해낸 것이다. 아예 새롭게 만들어낸 말은 아니지만, 원래 잘 쓰이지 않던 말을 발굴해 그 감정이 단번에 와닿게 표현하는 것도 능력이다. 역시 ‘천재 작곡가’답다.
<어쩌나>는 경쾌하고 통통 튀는 스윙 리듬에 산뜻하고 밝은 멜로디가 돋보이는 곡이다. 단순하면서도 중독성 강한 후렴구의 멜로디에 ‘어쩌나’라는 가사가 착- 달라붙어 대중들의 귀를 무난하게 사로잡았다. 또한 각 멤버들의 음색에 맞게 파트를 분배해 전체적으로도 안정감이 느껴진다. 따라부르기 쉬운 후렴에 한 번 들으면 잘 잊히지 않고 금방 질리지도 않아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음악 방송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너는 대체 어떠한 이유로 내 맘을 껐다 켰다 네 멋대론지’
‘너는 여태 내가 느껴왔던 쓸쓸함의 온점’
‘이런 너를 어쩌나 너를 봐도 네가 더 생각나’
‘그대는 어떤가, 나 때문에 잠들기 힘들까’
사랑과 관련된 세븐틴의 노래는 특히 예쁜 노랫말이 돋보이는데, <어쩌나>에서도 풋풋한 마음을 표현한 가사가 멜로디와 어우러져 설레고 몽글몽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금 사랑을 하든 하지 않든, 듣는 이의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노래다.
뮤직비디오도 노래만큼이나 청량해서 함께 보길 추천한다. 해바라기, 구름, 기린, 자동차 등의 요소를 사용한 채도 높은 장면들은 한여름의 낮을 연상시키고, 그네, 폭죽 등의 요소들과 묘한 색채감, 독특한 구도의 장면들은 신비스러운 여름밤을 떠올리게 한다.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직후 팬들의 반응은 ‘개비스콘 짤’ 같았다(그만큼 마음에 들어 했다).
2018년 여름은 무척 뜨거웠다. 최고기온이 40도가 넘어가서 숨이 턱턱 막히는 날들이 연일 이어졌다. 최악의 불볕더위였지만 이 앨범들 덕에 언제나 마음속엔 시원한 파도가 철썩이는 듯했다. 앞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여름마다 맘속을 파랑으로 채워줄 음악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