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앤오프 – 첫 사랑의 법칙(Happily never after)
첫사랑은 거지같다. 나의 기억으로는 그렇다. 20살 때 나는 지독하게 첫사랑을 앓았다. 그때가 내 인생의 첫 번째 터닝포인트였을 거다. 늘 기다리고 기다리느라 지쳐 있었고 지친 만큼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나는 항상 헷갈렸고, 불안했고, 그 사람을 가지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설레고 좋았던 기억은 거의 없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로 부정적인 기억은 묻어두고 좋았던 것들만 기억 속에 남기려 한다던데, 내 첫사랑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좋았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의 내가 이 노래를 들었다면 많이 울지 않았을까 싶다. 오늘 소개할 곡은 온앤오프의 <첫 사랑의 법칙(Happily never after)>이다.
이 노래가 슬픈 분위기의 곡이라서 그런 것이냐? 절대 아니다. 이 노래는 가사를 모르고 들으면 오히려 로맨틱하게도 들린다. 적당히 리드미컬한 템포에 달달한 멜로디가 어우러져 아침저녁 봄여름가을겨울 할 것 없이 사계절 내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 도입부부터 등장하는 보컬 하모니가 곡이 진행되는 동안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만 재차 반복되는데, 그것이 사운드를 풍성하게 만들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이 노래엔 반전이 있다. 가사 속에 숨겨진 스토리텔링을 보자.
‘잠깐만 왜 하필 걔야?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뭘 해도 네겐 안 보여? 이렇게 너만 보는 내가’
‘또 시간이 없대 내게만 없대 차갑기만 해 내 앞에서만’
자신이 짝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위의 가사에서 단번에 알 수 있듯 그 누군가는 화자에게 전혀 마음이 없다. 만약 이 곡이 슬픈 곡이었다면 이 다음에 ‘그래서 난 너무 슬프고 힘들고 너밖에 모르는데, 그럼에도 너를 사랑하는 나는 바보…’ 하는 식으로 가사가 이어졌을 텐데, 화자는 예상 밖의 말을 건넨다.
‘아니야 아니야 절대 그 앤 널 생각해주지 않아’
‘낮이야 밤이야 하루종일 따라다녀도 뭐 없어’
듣고 보니 화자가 짝사랑하는 그 누군가 역시 다른 사람을 짝사랑하는 중인 것 같다. 그런데 화자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그 다른 사람도 화자가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사랑의 작대기가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삼각관계인 것이다. (물론 화자가 사랑을 쟁취하고자 거짓말하는 중일 수도 있다.) 어쨌든 화자는 계속해서 자신이 짝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팩폭을 날리며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
‘내겐 맘이 없대 나는 아니래 또 초라해져 네 앞에서만’
그러나 화자가 부채질을 하든 기름을 붓든 그 사람은 화자에게 ‘너한텐 마음이 없다’며 화자보다 더한 팩폭을 날린다. 그 소리를 듣고 초라한 기분을 느끼지만, 화자는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절대 나는 널 실망시키지 않아’ 하며 어필한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브릿지 파트의 가사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애타는 내 맘을 알아줘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
후렴에서 보이던 당당한 모습과는 다르게 애타는 마음을 알아달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 오래 짝사랑을 앓은 탓에 지친 것 같기도 하다. 축 처진 목소리에서 간절한 마음이 느껴져, 듣고 있는 나도 마음이 아팠다. 이 파트를 부르면서 눈물 한 방울 또륵- 흘린대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다.
‘내가 훨씬 더 잘해줄 거란 걸 알면서도 왜 그래’
‘절대 나는 널 실망시키지 않아’
그럼에도 또다시 화자는 내가 훨씬 더 잘해주겠다며 용기를 내 고백한다. 이렇게 노래는 마무리된다.
가사를 통해 알 수 있듯 이 노래는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그린 곡이다. 이 곡의 부제는 ‘Happily never after’인데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뉘앙스로 사용되는 말인 ‘Happily ever after’에서 ever를 never로 바꾼 것이다. 불길한 예감, 불행한 결말. 이것이 바로 첫사랑의 법칙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9년 전의 내가 떠오른다. ‘20살의 내가 쓴 가산가?’ 싶을 정도로 노랫말들이 하나하나 전부 마음에 박힌다. 첫사랑 때문에 시름시름 앓던 그때의 내가 이 노래를 들었다면 화자의 입장이 공감되어 슬퍼하기도 했겠지만, ‘절대 그 앤 널 생각해주지 않아’라는 끔찍한 팩폭에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내렸을 것이다. 이런 내용의 가사를 이토록 상큼하고 깜찍하게 소화하다니! 정말 온앤오프 친구들 어이가 없다.
이 노래와 관련된 영상을 찾다가 우연히 이 곡의 가이드 버전을 찾았다.
온앤오프 멤버 MK가 부른 <첫 사랑의 법칙> 가이드 버전 영상이다. (01:35~) 사실 온앤오프 멤버에 대해선 잘 모르는데 이 영상을 보자마자 ‘아 이 목소리가 MK였구나!’ 했다. 하이톤의 음색이 독특하고 매력적이어서 노래를 들을 때마다 관심이 갔던 그 목소리였다. 이 영상을 보니 노래도 잘하지만 랩도 제법 잘하는 것 같다. MK의 캐치프레이즈는 ‘레몬보이스’라고 한다.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찰떡같이 잘 지었다. 이 가이드 버전도 언젠간 음원으로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온앤오프의 ‘법칙’ 시리즈 <첫 키스의 법칙>도 함께 들어보길 추천한다. <첫 사랑의 법칙>과 비슷한듯 다른 곡이지만 아무튼 둘 다 명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