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나 버린 듯 고인 시공간

몬스타엑스 - Myself

by 끼라

내 기분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해가 쨍쨍하고 하늘이 선명한 날에는 그만큼 마음도 맑아진다. 반대로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온 세상이 잿빛으로 물들거나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뭘 해도 기분이 나아지질 않고 우울하다. 가장 친한 친구들과 함께 ‘맑음’이라는 글자를 타투로 새겼을 정도로 나는 맑은 날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이번 주말에는 꼭 비가 퍼붓길 바랐다. 비가 내리는 날마다 듣는 곡의 리뷰를, 온종일 비가 쏟아지는 날에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래 오늘도 예보에서는 비가 온다고 되어 있었는데 하늘을 보니 그냥 흐리고 말 것 같다. 그게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 가을장마가 지나가기 전에 이 곡을 소개하고 싶어 글을 써본다.


오늘 소개할 곡은 몬스타엑스 정규 2집 ‘ARE YOU THERE? - The 2nd Album Take.1’의 8번째 트랙 수록곡 <Myself>다. 2018년 10월에 이 노래를 처음 듣자마자 단번에 몬스타엑스 노래 중 최애곡으로 등극했다. 그 뒤로도 수십 개의 곡이 발매되었고 몬스타엑스의 노래를 거의 매일 듣지만, <Myself>는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내 마음속 부동의 1위 곡이다.


Monsta X (몬스타엑스) - 'Myself' (Live ver.)

이 노래는 무엇보다도 ‘분위기가 다한 곡’이라 설명할 수 있겠다. 다 때려 부수는(?) 듯한 기존의 몬스타엑스 타이틀곡들과는 다르게 몽환적이고 우울한 감성이 돋보인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우주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심해 속으로 깊이 잠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비가 쏟아지기 직전인 하늘 아래에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처럼 <Myself>는 머릿속에 짙은 회색의 이미지들이 연상되는 곡이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비 오는 날과 어울리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 곡의 킬링파트로는 두 부분을 꼽아볼 수 있겠다. 먼저 도입부부터 1절 후렴 직전까지다. “아니 ‘킬링파트’라면서 분량이 너무 긴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이 노래를 아는 사람들은 분명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중 어느 한 부분만을 따로 떼어낼 수가 없다. 귓속을 때려 박는 도입부의 비트가 단숨에 분위기를 압도하고, 그 뒤에 바로 독특한 멜로디의 기타 리프 위에 허스키한 원호의 목소리가 더해져 섬세하고 조화롭게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후 셔누, 형원의 파트와 나른한 아이엠의 래핑이 이어지면서 감성의 깊이를 더해준다. 이토록 완성도 높은 도입부는 다소 반전 있는 후렴구를 지나 극적으로 치닫는 후반부까지, 이 한 곡에 완전히 몰입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두 번째 킬링파트는 후렴구에서 파워풀한 기현의 파트 뒤에 이어지는 원호의 파트 중 ‘착각인 걸까’ 부분이다(01:22~01:29). 기현이 후렴구에서 열심히 쌓아 올린 고음을 한순간에 훅- 떨어뜨리는 부분인데, 원호가 이 파트를 아주 부드럽게 잘 소화해낸 것 같다. 원호는 지난 2019년 그룹을 탈퇴했기에 지금은 비록 몬스타엑스의 멤버는 아니지만, 나는 몬엑 멤버 중 원호의 음색을 가장 좋아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이 노래뿐 아니라 다른 곡들에서도 원호가 부른 부분이 나에겐 킬링파트로 꼽히는 경우가 많았다. 한동안 ‘착각인 걸까’ 이 부분에 중독되어서 그 부분만 여러 번 다시 들었더랬다.




나는 노래를 들을 때 멜로디보다도 가사를 더욱 중요시해서 단번에 가사를 이해할 수 없는 팝송은 즐겨 듣지 않는다. 그러나 이 곡만큼은 분위기가 다했기 때문에 가사가 어떻든 상관이 없었고 크게 궁금하지도 않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가사를 제대로 살펴보게 되었는데, 이렇게까지 애절한 내용일 줄은 몰랐다.


이런 나를 모르고 있길 바래 있길 바래, 괜찮아 이대로

제발 이런 날 알아주길 바래 주길 바래


이런 나를 지나쳐 주길 바래 주길 바래, 괜찮아 이대로

제발 나를 구하러 오길 바래 오길 바래

(*맞춤법과 상관없이 가사에 기재된 대로 옮겨씀)

<Myself>는 이별 후 깊은 우울 속에 빠진 감정을 그려낸 곡이다. 위의 가사에서 빨간색 부분이 형원, 초록색 부분이 민혁의 파트로, 두 멤버의 파트는 연이어 나오지만 가사 내용은 완전히 상반되어 있어 헤어진 후의 혼란스럽고 복잡한 심경이 잘 드러난다. 이별의 아픔에 빠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가사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대부분 겉으로는 외롭지 않은 척 괜찮은 척해도, 사실은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니까.


잊어버리고 싶어 지워버리고 싶어

다 비워버리고 싶어

니가 준 고통은 아프고 또 깊어


브릿지 부분에서 주헌 파트의 가사는 이별의 아픔으로 괴로워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정말 좋아했던 사람과 헤어진 후에 나는 아침이 밝을 때까지 잠도 못 자고 밤새 울면서 며칠 동안 식음 전폐했더랬다. 너무 힘들었어서 별로 떠올리고 싶진 않은 기억이다. 이별의 아픔은 누구에게나 동등한가 보다.


Lost in the Dream · MONSTA X(몬스타엑스)
2018.03.27 MONSTA X kihyun lost in the dream

(아이고 썸네일이;; 기현아 미안;)


<Myself>가 취향에 부합한다면 <Lost in the Dream>도 들어보길 바란다.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해 슬픔 속을 헤맨다는 가사 내용이 <Myself>와 비슷하긴 하지만 <Myself>보다 훨씬 더 감정이 극적으로 치닫는 곡이다. <Myself>의 매운맛 버전이랄까? 아무튼 이 곡에서는 아래의 영상에서 알 수 있듯 기현의 보컬이 정말 곡을 아주 찢어놓았다. 나는 몬베베는 아니지만 기현과 같은 93 친구로서 괜히 뿌듯해지는 영상이다.




최근 들어 왜 연애 안 하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는데, 연애를 안 하는 이유가 하도 많아서 제대로 대답을 못 했었다. 그런데 <Myself> 리뷰를 쓰고 보니 이젠 알겠다. 난 더 이상 이 노래의 가사처럼 이별을 겪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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