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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라 May 11. 2022

Q&A로 풀어보는 독립출판 후기

<나는 나의 팬이 될래요>

Q.글을 쓰게 된 계기

  십여 년간 누군가의 팬으로서 살아온 삶을 중단하고 진정으로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싶었다. 매번 ‘이제 팬 생활 그만둘 거야’라고 말해도 다짐은 그때뿐, 언어의 소리가 공중에 분해되는 순간 말의 효력도 함께 상실됐다. 나 혼자서 대충 한 약속은 언제든 쉽게 번복됐다. 도저히 팬 생활을 접을 실천 의지가 생겨나지 않았고 이대로 가다가는 30살이 되어도, 40살이 되어도, 50살이 되어도 누군가의 팬으로서만 살아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자랐다.

  나에겐 수단이 필요했다. 나 자신의 채찍이 되어줄. 그 수단으로 글을 택한 것이다. 생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도록 글로 남겨놓으면 될 일이었다.

  동시에 ‘덕질’이란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많은 이들이 ‘탈덕’의 필요성을 논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때에 발맞춰 탈덕 에세이를 세상에 내놓으면 시의적절한 책이 되어주리라 생각했다. 또한, 이 세상 어딘가에 나처럼 팬 생활을 그만두고 싶지만 여러 이유로 그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글을 책으로 내기로 한 것이다. 나의 덕질 역사, 현재의 덕질 방식, 그리고 탈덕을 해야 하는 이유와 실질적인 방법까지 덕질에 관한 경험과 생각을 전부 글로 풀어냈다.


Q.왜 출판사 투고가 아닌 독립출판을 선택한 것인지

  독립출판의 전 과정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을 땐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는 부담에 적절한 출판사를 찾아 투고해볼까도 고민했다.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원고가 완성되기만 하면 그 후의 일은 출판사에 맡길 수 있을 테고 어쩌면 책이 더 잘 팔릴지도 모를 일이니, 고민됐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 이름을 걸고 내는 첫 번째 책인 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해내고 싶었다. 또 출판사와 협업을 하면 큰 짐을 덜어낼 수는 있겠지만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므로 글의 내용이나 방향, 주제 의식 등에서 조율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내가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고 그 부분에서는 나의 의견이 100% 반영되길 바랐다. 그래서 독립출판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독립출판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Q.책의 형태를 그렇게 제작한 이유

  독립출판을 결심하기도 전에, 아니 팬 생활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김진아 작가의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을 읽을 당시에 이 책의 크기, 두께, 폰트 크기 등 모든 형태가 이상적이라고 느꼈던 게 떠올라서, 책을 제작할 때 많이 참고했다. 30cm 자를 대서 책의 크기를 재고, 본문의 위치는 지면의 어디쯤 위치하면 좋을지, 폰트 크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등 결정하기 어려운 사항이 생길 때마다 그 책을 들여다봤다. 업체에서 샘플을 받아보니 정말로 그 책과 비슷한 형태가 나와서 만족스러웠다.


Q.독립출판을 하며 좋았던 점

  그동안 내 삶에 덕질이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있었는지 객관적인 시선으로 관찰하고 성찰할 수 있었던 점과 그 결과 과몰입 덕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좋다. 덕질을 줄이니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고, 이제는 자기계발에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유튜브나 이미 봤던 예능 콘텐츠들을 돌려보며 의미 없이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책을 읽는다. 예전 같았으면 굿즈를 샀을 돈으로 책을 사거나 요가원에 등록한다.

  누군가 독립서점에서 내 책을 사서 읽고 올린 독후감을 읽을 때, 혹은 독자에게 긍정적인 내용의 장문의 메시지를 받는 순간은 감동적이면서 신기하기도 하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읽는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독자가 생겼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막중한 책임감도 생겼다. 그게 부담스럽다기보다는 내가 세상에 던진 말이 누군가에겐 아주 큰 파장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구나, 어떤 말이든 신중하게 해야겠다 하는 깨달음과 다짐에 더 가깝다.


Q.독립출판을 하며 어려웠던 점

  어려운 순간은 매번 다르게 찾아왔다. 처음엔 초고를 쓰는 게 힘들었고, 초고를 다 쓰고 나니 퇴고하는 게 힘들었고, 퇴고까지 끝마치고 나니 책의 형태를 정하는 일이, 인쇄소에 부치고 나니 독립서점에 일일이 입고 문의를 해야 하는 일이, 그다음에는 입고 수락이든 거절이든 답장을 기다리는 일이 힘들었다. 다른 것들은 감당할 만했지만 내 감정을 컨트롤 해야 하는 건 조금 버거웠다. 독립서점들의 답장을 기다리는 일이 그랬다. 처음엔 아무도 내 책을 받아주지 않을까 봐 전전긍긍했고 한두 군데서 답장이 오기 시작하니 ‘왜 나머지 서점들은 답이 없지? 내 책이 맘에 안 드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입고 제안서가 불충분했나부터 시작해서 내 책이 질타받는 꿈까지 꿀 정도로 별의별 스트레스가 머릿속을 채웠다. 그러나 이런 상상들은 결국 미리 걱정하고 조급해하는 내 성격탓에 자라난 허상에 불과했다. 어떤 위기든 막상 겪고 보면 걱정의 크기에 비해 별일 아닌 것들이었다.      


Q.독립출판을 통해 배우게 된 것

  독립서점들로부터 답장을 기다렸던 나날들은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피 말리는 기분이었다. 수신확인을 해보면 ‘읽음’으로 표시되어있는데 왜 답장을 안 하는 걸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대부분은 입고 제안서를 읽고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고 2일이든 5일이든 7일이든 입고할 생각이 있는 곳은 늦더라도 답장을 보냈다. 입고 거절 메일은 걱정했던 것보단 훨씬 적게 받아 다행이었다. 그러나 입고 거절의 뜻으로 답장조차 하지 않은 곳들도 있다.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입고할 생각이 없는 독립출판물의 경우엔 답장을 안 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미안한 마음도 있고, 또 자기가 대기업도 아닌데 ‘감히’ 거절 메일을 보내냐는 거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면 거절하더라도 답장을 보내 의사를 솔직히 밝히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답장을 기다리던 긴긴 시간 동안 ‘나는 앞으로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게 만들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특히 공적으로 말이다.

  앞에서도 얘기했듯 인생은 산 넘어 산이라는 것도 체감했다. 하나의 일을 끝마치면 또 다른 일이 닥치고, 그 일이 끝나면 예상치도 못한 변수가 생긴다. 그러나 그 일들은 대부분 내가 걱정하는 것보단 별거 아닐 때가 많다. 칸트의 명언처럼 ‘해야 함은 할 수 있음을 함축한다.’ 나에게 닥친 일은 내가 해낼 수 있으니 나에게 온 것임을 잊지 말자. 그리고 그 산들을 넘은 후에야 인생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산을 맞닥뜨리는 순간부터 산을 넘어가는 모든 과정이 전부 나의 인생이다.     


Q.소감

  독립출판을 하며 나는 좋든 싫든 영원히 글과 함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는 일도, 글을 읽는 일도, 책을 만드는 일도 모두 너무 재미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다. 내 책을 읽은 한 독자에게 메일을 받은 일이다. 그 사람은 나보다 더 과한 덕질을 하며―자신의 인생을 모두 연예인을 쫓아다니는 데 바치며―지냈던 사람이었다. 트위터에서 우연히 내 책에 관한 글을 접하자마자 집 근처의 독립서점에서 구입하고,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고 했다. 책을 통해 자신의 덕질 인생을 돌아볼 수 있었고,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며 연예인 덕질을 그만두고 앞으로는 자신을 위해 살아갈 것을 약속했다. 나는 그 메일에 쓰여있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이 마치 내 이야기인 것만 같아 메일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정말 일을 저질렀구나’ 싶기도 했고, 뿌듯하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그리고 ‘글’의 힘을 깨달았다. 글은 누군가의 생각은 물론 인생까지도 통째로 뒤바꿀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은 누구나, 쉽게, 어디든, 얼마만큼이든, 원하는 대로 남들에게 보이는 공간에 글을 쓸 수 있는 세상이다. 글로 인해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는다. 내가 어딘가에 쓴 글이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그리고 나중에 시간이 흘렀을 때 그 글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생각하며 글을 써야겠다. 되도록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글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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