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여름에는 말이죠
한여름에 회덮밥을 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바다 건너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제주까지 와서는, 겁도 없이. 나는 그날 밤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탈수 증세가 올 정도로 위아래로 모든 걸 쏟아내고야 말았다.
나의 여행메이트 슬기와 둘이서 제주여행에 온 첫날이었다. 그날따라 하늘이 꾸물거리더니 결국 비가 내렸는데, ‘내리다’라는 말 대신 ‘흩뿌리다’라는 말이 좀 더 어울리는 보슬비였다. 그런 날은 하늘이 쩍 갈라진 것처럼 폭우가 쏟아지는 날보다 훨씬 더 습하게 마련이어서, 아침부터 열과 성을 다해 고데기로 쭉쭉 핀 머리카락은 이미 자유자재로 곱슬자아를 드러내고 있었고, 땀과 습기로 범벅이 된 얼굴은 썩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버스에서 내리라면 내리고 타라면 탄 채로 끌려다니기 바빴던 고2 수학여행 이후로 처음 온 제주였기에, 우리 둘은 흐린 날씨에 연연하지 않고 느릿느릿 월정리와 세화를 걸었다. 우리의 키보다 낮은 돌담과 그 틈새로 고여있는 빗물, 인도를 가로지르는 달팽이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어쩌면 고2 때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곳이라 해도 마주치는 모든 골목과 바닷길이 우리에겐 온통 낯선 설렘으로 물든 초행길이었다.
제주는 기대 이상으로 멋진 곳이었다. 도시에선 볼 수 없었던 채도 높은 초록과 파랑의 풍경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아름답고 고요한 섬. 거기다가 너무 시골스럽지도 않았던 게, 내가 사는 수도권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감각 있고도 세련된 카페와 식당들이 넘치고 넘쳤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왜 그토록 제주에 홀딱 반한 채 육지로 돌아오는지, 그것도 모자라 몇 주 몇 달 혹은 몇 년을 굳이 살러 가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원래 저녁을 먹으러 가려던 식당이 어디였는지, 거기를 왜 못 가게 되었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무슨 이유에서건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다른 식당에 들러 나는 회덮밥을, 슬기는 전복돌솥밥을 먹었다. 거기도 제주에서 전복돌솥밥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이었기에 차선책으로 택한 곳치고는 나름 만족스러웠다. 위생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만 빼면.
성산읍 온평리에 위치한 우리의 숙소는 차도 사람도 지나다니지 않는 아주 조용한 게스트하우스였다. 주인분은 친절했고,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듯한 모던한 스타일의 건물 외관은 멋졌으며, 그 안은 제주의 돌담을 연상시키는 짙은 회색과 우디한 인테리어로 꾸며져 세련되면서도 제주스러웠다. 나는 내가 하루라도 머물 공간에서만큼은 굉장히 깔끔을 떠는 편인데 살면서 가본 그 어떤 숙소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너무너무너무너무 깨끗해서, 그럴 수만 있다면 영원히 이곳에서 머무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게나 마음에 들었던 숙소에서 내 인생 최악의 밤을 맞았다.
저녁으로 먹은 회덮밥이 뭔가 좀 쎄하다 싶더니 제대로 탈이 난 것이었다. 처음엔 소화가 안 된 줄 알고 까스활명수 한 병을 먹었다. 잠시 기다리니 괜찮아진 것 같아서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앉아 tv를 보는데, 순간적으로 누가 나의 장을 손에 쥐고 힘껏 비틀어버리는 것처럼 뱃속이 엉키고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화장실로 달려간 나는 그때부터 5시간 동안 아래로 쏟고, 위로 쏟고, 다시 아래로, 위로, 아래로… 차라리 죽고 싶었다. 체감상 변기물을 스무 번쯤은 내린 것 같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느낀 슬기가 화장실 문 앞에 서서 괜찮냐며 등을 두드려주냐고 물었지만, 아무리 친한 사이일지라도 이 정도로 추한 꼴은 보여주고 싶지 않아 끝까지 혼자만의 사투를 벌였다. 거의 매년마다 나를 괴롭게 했던 미주신경성 실신 증세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나는 사투에서 완벽히 패배하고 말았다. 더 이상 쏟아낼 게 없을 정도로 모든 걸 게워내고 나서야 기절하듯 잠들 수 있었다. ‘살면서 제일 괴로웠던 적은?’ 누군가가 나에게 물을 때마다 나는 곧바로 그날 밤이 떠오른다.
나 때문에 덩달아 잠을 설친 슬기와 아침 일찍 조식을 먹고(신선하고 건강한 재료로 만들어진 샌드위치와 수제 감귤청이 들어간 요플레를 앞에 두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따듯한 감자수프만 조금 먹었다), 조식을 먹으면서 주인분께 어젯밤 상황을 간략히 말씀드린 후 가까운 병원을 물었다. 내 이야기에 약간 놀란 사장님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괜찮냐 묻고는 메모지에 근처 내과의 약도를 간략히 그려 주셨다. 병원에서 링거를 맞는 동안, 슬기와 나란히 누워 꾸벅 졸았던 기억이 난다.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숙소에 와 있다. 이번엔 슬기 없이, 나 혼자. 이번엔 탈도 나지 않고 아주 건강하다. 날것의 음식을 먹지 않은 덕이리라.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느라 피곤한 다리도 풀어줄 겸 스트레칭도 했다. 6년 만에 온 것인데도 이곳은 변함없이 포근하고 아늑하다. 나무 계단을 올라 방 안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 행복해서 작게 소리까지 질렀다.
누군가와 함께 왔던 곳을 나 혼자 재방문한 게 처음이어서인지, 아니면 이 숙소에서 있었던 잊지 못할 사건 때문인지 여기 도착한 후로 자꾸 묘한 기분이 든다. 그날 같이 왔던 슬기 생각도 좀 나는 것 같고. 밖에 비가 와서 그런가. 아무튼 나쁜 기분은 아니다.
다만 그날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공간에 누워 있는데,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6년이라는 세월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건지 모르겠다. 언젠가 이 숙소에 또 오게 된다면 지금부터 그날까지 내 삶은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결국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닐까. 과거로 돌아가 회덮밥을 피할 수 없다면, 앞으로 어떤 탈이 날지 모른다면,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은 과거를 그만 돌아보고, 미래를 그만 걱정하고, 나에게 주어지는 현재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그러다 보면 선물 같은 날들이 찾아올 테지. 차라리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날들을 전부 다 견뎌내고 맞이한 오늘처럼.
내일 늦은 오후까지 제주에 강한 비바람이 분다고 한다. 아까 종달리를 걸을 때 마을 이장님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내일 비바람에 주의하라며 안내 방송까지 하는 것을 듣고, 어쩌면 예보가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완전히 버렸다.
그래도 즐겨야지. 그래도 꿋꿋이 돌아다녀야지. 가장 최악이었던 그날 밤도 추억이 되었듯 내일의 비바람조차도 그리워질 더 먼 미래가 금세 다가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