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끼라 Aug 09. 2022

사랑은 자해다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다. 단순 인류애 같은 거 말고, 덕질 같은, 환상 같은 사랑 말고, 진짜 ‘사랑’ 말이다. 사랑은 자해라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돌아다니는데 나는 그 말이 맞다고 본다. 사랑은 자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분명 나를 해치는 행위다. 사랑은 자꾸 내 삶을 방해하니까. 기다리게 만들고, 지난 일을 회상하게 하고, 아주 작고 쓸데없는 것에까지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고, 구질구질하다는 걸 알면서도 집착하게 만들어서 결국 내 애만 타들어가게 하니까. 나는 그래서 사랑이 싫다. 사랑 따위에 휩쓸리지 말고 내 삶이나 잘 살고 싶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분이 나더러 왜 연애를 안 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단번에 “헤어지기 싫어서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박장대소하면서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네” 했다. 왜 웃었을까? 난 백 퍼센트 진심이었는데.


나는 누군가와 헤어지는 게 무섭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연애의 끝은 헤어지거나 결혼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답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혼(사실 반혼에 가깝다)이므로 결국 내게 남는 건 이별밖에 없다. ‘영원한 사랑’은 거의 미신이므로 언급할 가치도 없다. 헤어진다는 건 내 안에 있던 누군가가 죽어버리는 일이고, 내 마음에 시체를 차곡차곡 쌓는 일이다. 난 더 이상 살아 있는 시체를 품고 싶지 않다.


사랑은 어떤 면에선 정말 마약 같기도 하다. 당연히 약을 해본 적은 없지만 중독성이 있고(=보고 있어도 보고 싶음, 대화를 나누고 싶음, 같이 있고 싶음), 뇌가 돌아버린다는(=말 그대로 현생불가) 점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사랑을 하면 눈에 뵈는 게 없다. 그래, 나는 지금 눈에 뵈는 게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Q&A로 풀어보는 독립출판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