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편집자의 한탄 글
나는 3년 차 출판 편집자다. 서른인 나이에 비해 연차가 얼마 되지 않는 이유는 대학 졸업 후에 직종을 여러 차례 바꾸었기 때문이다. 방송 구성 작가, 카피라이터, 카페 슈퍼바이저를 거친 후에 대학 전공을 되살려 편집자로 일을 하고 있다. 편집자는 그간 내가 해왔던 모든 일들 중 가장 재미있고, 적성에도 잘 맞으며, 나에겐 의미가 남다른 일이기도 하다. 출판계에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점들이 남아 있지만 어찌 됐든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을 만큼 나는 편집자로서의 일을 사랑한다.
그런데 요즘 들어 현타가 온다. 왜 나는 담배를 배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속이 갑갑하다. '이게 대체 뭔 소린가' 싶을 만큼 엉망진창인 원고를 한 달 반 동안 리라이팅 수준으로 윤문 해놨더니 다음 원고도, 다다음 원고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 정말 암담한 미래에 한숨만 나온다. 회사에서 원고를 검토할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 이번 주말에 집에서 마저 보려고 원고를 가져왔는데, 몇 장 읽다가 너무너무 짜증이 나서 도로 가방에 집어넣어 버렸다. 과연 나는 편집자인가? 작가인가?
기본적인 맞춤법을 틀리는 것이나 오타가 나는 것은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사실 아님). 그런데 적어도 본인이 진짜 '작가'라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을 내기로 했으면, 최소한 두세 번 정도는 퇴고를 해서 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제발 딱 한 번만이라도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읽어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글의 완성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대로 구구절절 쓴 비문 투성이 글을 원고랍시고 보낼 수 있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런데... 그렇게 엉망이었던 글이 알고 보니 수차례 퇴고한 끝에 나온 최종 결과물이라면 그것 역시 끔찍한 일일 테다. 누가 그에게 작가로서의 자격을 부여했느냔 말인가.
물론 그런 글조차도 잘 매만져 책으로 만들어내는 게 편집자의 일이자 능력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온전한 하나의 원고를 써내는 것은 편집자가 아니라 작가의 몫이다. 잘 못쓰겠으면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본업에만 충실하면 될 일이다.
실은 나도 지금 회사와 전혀 상관없는 내 글을 쓰고 있어서 누군가에겐 작가라고 불린다. 살면서 이렇게 무언가를 열심히 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고 자신감마저 잃어서 심리적 스트레스가 매우 큰 상태다. 그만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글에 책임감 없는 작가들을 만날 때 더더욱 화가 난다. 어쩜 이렇게 실력도 없고 양심도 없는 작가들이 차고 넘치는 걸까. 나라면 창피해서라도 출간 못할 것 같은데도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까지 하는 걸 보면 할 말을 잃게 된다. 혹시 내가 감명 깊게 읽었던 책들의 작가들도 이랬을까 하며 의심하게 되는 것도 짜증이 난다. 나는 그들을 불신하고 싶지 않다.
필력은 엉망이지만 천사 같은 작가보다 인성은 별로여도 글 잘 쓰는 작가를 만나고 싶다. 직장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일 못하는 사람이 최악이라는 말이 뼈저리게 와닿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