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끼라 Sep 26. 2022

내가 생각하는 나의 단점은

속이 좁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자신의 단점을 드러내는 것은 썩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소한 것이든 치명적인 것이든. 왜냐하면 나의 단점을 발설하는 순간부터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나의 그런 면에 주목하게 되기 때문이다. 설령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타인에게 고민상담 가능한 수준의 내 단점―걱정이 너무 많다는 것―말고, 정말 고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단점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다. 그냥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하면서 그것을 고치려 나름대로 노력할 뿐.


나는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를 탐구하는 걸 좋아했고 그만큼 나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확실히 안다.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한다. 물론 아직까지도 내가 눈치채지 못한 단점이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고칠 테니 제발 나에게 이야기해주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그중 하나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이 글의 제목에도 쓰여있듯 내가 생각하는 나의 단점은, 속이 좁다는 것이다. 남들에게 단점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놓고 굳이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 글까지 쓰는 이유는 이러한 단점을 개선해볼 의지가 충분히 있으며, 더불어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를 아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그렇지 않던데'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게 나의 바람이자 이 글을 쓰는 목적이기도 하다.



나는 속이 좁다.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렇다. 나는 좋게 말하면 감수성이 풍부하고 반대로 말하면 예민한 편이라 별 거 아닌 말과 행동에도 상처를 받고, 쉽게 실망하고, 그걸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마음에 담아둔다. 그냥 가만히 담아두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문제는 자꾸 그걸 곱씹으면서 내 마음대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의도로 이렇게 말했겠지?' '이렇게 생각하니까 이렇게 행동했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나의 모습을 눈치채고 나서부터는 그렇게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좀 정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왜 자꾸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하도 답답해서 뇌를 꺼내다가 맑은 물에 빡빡 씻어서 다시 집어넣고 싶을 때도 있다. 어쩌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기질이 강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이건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외려 갉아먹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단점은 끌어안고 있어 봤자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이 없을까? 나는 완전 무결한 인간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내가 쉽게 상처받는 만큼 남들에게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하고 행동하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내가 툭 던진 말이나 찰나의 순간에 했던 행동, 혹은 표정 때문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만큼의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딱 한 번 홧김에 내뱉은 말 때문에 친구와 다툰 적이 있었다. 그건 명백한 내 잘못이었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나의 말이나 행동 같은 걸로 쉽게 서운해하지도, 고치라고 지적하지도 않는다. 그건 내가 배려심이 넘쳐서 그런 게 아니라 그들이 나의 단점을 참아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기분이 상했을지라도 유하게 넘어가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함부로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쟤는 저런 면도 있지만, 좋은 면도 있으니까.' 하고 너그러이 생각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러질 못했을까. 나도 완벽하지 않으면서 왜 그렇게 남들에게 쉽게 실망하고, 혼자 빈정상해서 마음속에 담을 쌓아 올렸을까. 진작부터 그렇게 타인들로부터 받아온 숱한 배려들을, 타인의 좋은 점을 의식하려고 노력했다면 그냥 넘어갔을 일이 많았는데. 이런 후회들로 요 며칠 내내 너무도 괴로웠다.



그래도 스스로의 단점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곧 단점을 고칠 가능성과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앞으로는 타인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어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내 안에 존재하는 타인에 대한 애정을 깨트리지 않는 방법이니까. 상처가 되었던 말을 곱씹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처를 곱씹는 건 또 다른 방식으로 내가 나에게 상처 입히는 것이니까. 누군가의 말과 행동의 원인을 내 멋대로 추측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니까.


누군가 때문에 또다시 마음이 힘들어지려고 할 때면 단점을 고쳐보고자 장황하게 쓴 이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볼 생각이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실천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양심 없는 작가가 너무 많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