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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희 Sep 03. 2023

#5. 화면 너머의 이야기

챕터 2. 화면 너머의 이야기

#5. 화면 너머의 이야기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얼마 전 SNS를 하다가 ‘손금으로 보는 운세’라는 게시물을 보고 나의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부자가 되는 손금이나, 명예와 명성을 얻는 손금 등의 이야기는 볼거리와 읽을거리를 찾던 나의 시선을 충분히 끌 만했다.


  호기심은 순식간에 실망으로 돌아왔다. 생명선이니 운명선이니 하는 모든 것들이 뚜렷하지 않았고, 삼지창이나 M자 손금과 같은 것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거나 모두 제 갈 길을 가느라 바빠 보였다. 비록 ‘과학적인 근거는 없으니, 재미로 보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으나, 왠지 모르게 ‘딸깍’하고 기분을 제어하는 기어가 하나 내려간 것 같았다. ‘손금은 열심히 살면 변한다’라는 말이 적혀있었지만, 키보드로 글을 두드리는 나는 만약 바뀌더라도 ‘손금이 아니라 지문이 바뀌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문으로 보는 운세도 있었나?’


  소셜 미디어의 발달은 심리적 빈부격차 상승으로 이어졌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 현재를 소중히 하기보다 항상 위를 바라보게 된다. 물론 물가 상승이나 국민연금 고갈, 출산율 최저 등의 기사를 매일 보고 살다 보니 불안감이 극에 달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어나는 미혼이나 1인 가구의 기준으로 아르바이트만 해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시대임은 분명하다.



  

전쟁 직후, 일자리가 없었다. 몸이 성해도 돈을 벌 수가 없으니, 거리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먹을 것이라도 구해보기 위해 산을 탔다. 나라가 발전하기 시작하며 일자리가 생기고 나니 그 일자리를 쟁취하기 위한 학력이 없었다. 원해도 배우지 못한 설움이었다.


  경제성장에 가속도가 붙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는 사람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흙바닥이 잘 포장된 아스팔트로 바뀌고 대기업이라 부를만한 회사들이 늘어났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의 반열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저축만 하면 굶어 죽을 일이 없던 시대가 끝났다. 은행은 금리를 낮추기 시작했다. 20%가 넘던 금리는 새천년이 시작되고, 5% 선이 무너졌다. 부동산 값도 폭등하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출이라도 받아 전세가 아니라 집을 샀을 텐데.’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부동산 불변의 법칙이 점점 선명해졌다.


  가난을 경험하지 못한 비율이 더 많은 세대가 자라서 학교에 입학했다. 배운 사람이 잘 나가던 시대가 끝이 났고, 잘 배운 사람이 잘 나가는 시대가 되었다. 부모들은 돈을 끌어모아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기 바빴다. 아이들은 치열하게 경쟁했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면 된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를 모르는 것은 아이와 어른 모두 다르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마주한 세상은 무언가 이상했다. 물가는 끝없이 오르는데, 은행 적금은 1% 선이 무너졌다. 서울 집값은 원룸도 억 소리가 난다. 싫은 공부를 잘 살겠다는 일념으로 참아가며 살았는데 막상 사회에 나오니 10년 넘게 학교에서 배우고 경험한 수많은 시간이 몇 장짜리 종이로 요약된다. 학력, 자격, 언어능력이 기본으로 전제되고, 미친 듯이 노력해 시험대에 선 나의 친구는 학연과 지연 따위를 넘지 못해 술잔에 눈물을 털었다. 너무 빠르게 성장한 사회에 노련하고 현명한 어른은 적고, 높은 곳을 바라보며 우상향만을 외치던 우리는 결국 평범함의 기준을 저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버렸다.


  이제는 아르바이트만 해도 200만 원을 넘게 벌 수 있다. 잘 버는 것이 목적이라면 다른 뜻이 있지 않고서야 몇 년씩 공부해서 공무원이 될 이유가 없어졌다. 프리랜서와 N잡러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잘 배운 수많은 2030 사업가가 세상에 나왔다. 주식이나 사업을 하면 큰일 난다는 소리는 거품이었다. 어떤 것이든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은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주식이나 부동산, 사업을 공부하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배우지 않고 어떻게 시험을 잘 치를 수 있을까.




  2년이 채 안 되는 21개월의 군 생활을 마치고 복학했을 때 나는 무언가 뒤처졌음을 느꼈다. 100일 휴가를 나왔을 때,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진 후에 결제하려는 순간, 친구가 말했다.


“토스로 보내줘.”


순간 그게 뭔가 싶었다. 연락처만 있으면 계좌를 몰라도 송금할 수 있다니 얼마나 혁신적인가? 그런데 문제는 휴가를 나올 때마다 생겼다. 술자리에서 나를 제외한 전부가 포켓몬스터를 잡느라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는가 하면, 갑자기 카페(카카오페이)로 보내달라는 말은 도대체 뭐지 싶었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시스템이 매일 뉴스에 쏟아져 나왔지만, 나는 훈련을 나가서 6.25 때 만들어졌을지도 모르는 수통을 차고 열심히 삽질하며 차단선 진지를 만들고 있었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졌음을 느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16년을 공부한 ‘잘 배운’ 청년들의 책장에 문학은 없고, 자기 계발서만 가득 찬 이유는 무엇일까? 괜찮은 곳에 취직해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좋은 부모로서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고 잘 키워 노후에 손주들 맛있는 것 쥐여줄 수 있는 그런 삶.


평범한 삶을 꿈꾸던 수많은 사람이 그 소중한 평범함을 잃어버렸다.


  어릴 적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고 집으로 불러 과일을 깎아주시던 옆집 아주머니와 강아지 쭈쭈와 같은 이웃이 그립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화면을 들여다보며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을 외면한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이 일상이 아닌 우연이 된 시대다. 결혼은 돈이 없어서 못 하고, 아이는 더 없어서 못 낳는다. 우리 세대보다 다음 세대가 더 심할 것 같은 생각에 내가 손주를 원하는 것도 이기적이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강산도 바뀐다는 세월 앞에서 결국 평범함의 기준도 바뀌어버렸다.


  나는 모순되게도 잘 살고 싶어서 당장 취업을 포기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굶어 죽기 어려운 시대임을 알기에, 과거의 평범한 삶을 원하기에 내가 잘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온도의 바다를 찾는 여행을 택했다. 주변이, 사회가, 세상이 말하는 것은 언제든 보고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잠시 그들을 배척하고 내 눈과 몸으로 경험하기를 선택했다. 싫은 것을 억지로 배우던 시절을 지나 스스로 책과 펜을 잡았다. 자기 계발서를 내려놓고 수많은 삶이 담긴 수필을 읽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건네는 걱정은 잠시 받지 않기로 했다. 결국 가장 불안하고 두려운 것은 타인이 아닌 나다. 주변에서 진급이나 결혼 소식이 쏟아진다. 이런 일상에서 스물여덟에 취업 대신 아르바이트를 선택하고 글을 쓰고 사업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적어도 나 스스로 알고 있었다.


  문득 엄마가 자주 말했던 입지(立志)라는 말이 생각났다. 서른을 앞둔 나는 아직 철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조금씩 나의 뜻을 세우고 있는 걸까.



챕터 2. 화면 너머의 이야기

2-2) 화면 너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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