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희 Sep 06. 2023

#6. 가을의 나, 솔직함

챕터2. 화면 너머의 이야기

#6. 가을의 나, 솔직함



  집을 나설 때 피부를 간지럽히던 햇빛이 차분해졌다. 포근하지는 않아도 눅눅하지 않은 것이 하늘이 높아졌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똑같은 일상이 나에게는 또 새롭다. 새로움이란 무엇일까? 수많은 말들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오늘은 그저 어제와 다름을 아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가을이 왔다.


-


  나에게 가을은 특별한 계절이다. 여느 유명한 노래 제목처럼 나는 시월의 마지막 날에 태어났다. 부모님은 우리 형제를 계획 출산하셨다. 형은 목련꽃이 필 무렵, 나는 단풍이 필 무렵에 낳으셨다. 어린 날에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어른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살아갈 먼 미래의 행복을 의심 없이 그려보기도 했다.


-


  스물여덟에 나는 더위를 많이 타고 벌레를 싫어한다. 빨리 여름이 지나가기를 매일 바라지만 정작 가을이 다가오면 조금씩 불편한 마음이 커진다. 풋풋한 시절에 절친한 사람들과 주고받던 선물이 이제는 형식적인 느낌이라 불편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 홀로 보낼 겨울이 또 추울 것 같은 마음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의 신경을 예민하게 만드는 것은 나이를 먹는 것이 나를 잘 살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부분이었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세상에서 나는 왜 느려도 한 글자 두 글자 꾹꾹 눌러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걸까? 온라인 유통을 공부하고, 마케팅과 영업을 공부하다가 돌연 듯 나는 왜 작가가 되고 싶었던 걸까?


  글을 쓰고 공유하면서 느낀 감정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쓴 문장들을 돌아보면 뿌듯했고, 누군가 나의 글을 보면 부끄럽긴 하지만 수줍음에 가까운 부끄럼이었다. 낯간지러운 칭찬이 싫지 않았고, 어떤 이는 내 글을 읽고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덕분에 방향을 찾은 것 같다고.


  내가 적어나간 흔적들이 누군가에게 방향을 바꿀 만큼 영향을 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거운 경험이다. 이를 갈며 반년을 계획하고 공부한 목표들을 완전히 수정할 만큼. 정리되지 않은 난잡한 생각들을 글로 적고 수정하기를 거치는 것. 더 확고한 나를 만들어 가는 것 같아서 글이 좋아졌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


  글 쓰는 요령도 경험도 부족하던 나는 몇 달을 씨름해서 결국 30쪽 정도에 <나의 긍정은 고갈되지 않는다>라는 짧은 전자책을 만들었다. 살아온 이야기와 내가 생각하는 긍정을 '회복탄력성'이라는 주제를 통해 쓴 책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책이라 부르기에 부족한 결과물이지만 무료 배포에 대한 게시물을 올리고 신청한 팔로워분들에게 보내드렸다. 서른 명 정도가 그 전자책을 받았고, 후기와 피드백을 부탁해 열다섯 정도의 소중한 후기를 받았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그 후기들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글을 쓰는 작가들의 행복을 알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빠르게 털어내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회피하기 마련인데 이렇게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아, 나 성장 중이구나.” 싶은 생각으로 정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게 참 신기하더라고요. 전에는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려 했던 것들이 어느 때에는 그리 긍정적이기만 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그 마음가짐으로 노력하니까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어요.’


‘바쁜 와중 잠시 휴식 취할 때 최고의 선택. 이미 2번 읽었는데, 나중에 다시 또 읽으려고요. 제가 원래는 비문학/정보성 글 위주의 독서를 하는데 읽으면서 엄청난 리프레쉬가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너무나도 예쁘고 소중한 말들이 나에게 배송되었다. 이외에도 독서를 사랑하는 몇 분이 보내주신 조심스러움이 느껴지는 피드백들은 내가 더 좋은 글쟁이로 나아갈 수 있는 양분이 되었다. 단언컨대, 내가 지금 이 책을 쓸 수 있는 이유는 그 열다섯 분이 적어준 후기 덕분일 것이다. 이 글이 완성되면 그때 썼던 책을 다시 고쳐 쓰고 싶은 마음도 든다.


  그때부터인가 내가 쓰는 글이 무언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나를 위한 목적으로 쓰던 글은 타인을 생각하며 쓰는 글이 되었고, 시간이 지나 그 글에 내가 다시 발을 담갔다. 마침내 우리를 위해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수필을 쓰게 될 운명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살고 싶어진 걸까? 분명 나는 과거보다 나를 뚜렷이 알고 있지만 또다시 내 삶을 깨닫고 관철하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내가 가장 솔직하지 못했던 사람, 바로 나’라는 제목을 사랑하게 되었다. 가장 솔직한 나를 알기 위해 감정을 들여다보며 나는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내가 잘 살기 위해서’라고 숨겨왔던 부정적인 이기심은 ‘내 주변 사람들도 잘 살면 좋겠어’로 바뀌었고 나아가 ‘내가 사는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웠으면 좋겠어.’라는 이타심이 되었다.


과거와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미래의 나에게 조금 더 소중해졌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5. 화면 너머의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