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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희 Nov 19. 2023

사랑

사소함이 시작이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어 알 수도 없던 그 파장은 아주 작은 진동을 일으켰다. 이내 진동은 모래 알갱이를 튀기고 알갱이는 풀을 흔들었다. 풀에 앉아 있던 나비는 놀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날갯짓이 일으킨 미약한 바람이 그렇게 나를 흔들 줄 몰랐다. 봄이 왔다.

나의 봄은 평화롭게 싹이 트이고 꽃이 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요란한 천둥소리가 계속되고 평온함 대신 공사라도 크게 하는 듯 우당탕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정신 못 차리는 와중에 여름이 왔다.

정리되지 않은 봄에 장마가 겹쳤다. 무언가라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와중에 비가 쏟아지니 발이 묶여 멀리서 멀뚱멀뚱 바라만 보아야 했다. 조금이라도 차도를 보고 싶어 틈틈이 발을 옮겼지만, 비바람에 장식이 된 우산과 진흙이 묻어 미끄러운 신발에 발걸음을 되돌렸다. 그렇게 긴 우기가 끝나자 짧은 가을이 왔다.

비가 그치자 날아다니는 잠자리들이 보였다.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은지 갈 곳을 잃은 채 근처에서 위아래로 방황하며 날개를 흔들었다. 이제는 익숙할 때가 되었다 생각했지만, 봄에 진동을 마주할 때면 아직도 나는 쿵쾅거리는 감정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익어가는 것은 탐스러운 열매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겨울이 왔다.

처음에는 마주할 때 흔들리던 것이 시간이 지나자 혼자 있을 때 더 나를 흔들었다. 바라보는 것에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았다. 지식의 저주라고 해야 할까? 내가 알던 것을 포기하고 이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는 것이 무서웠다. 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마침내 이를 받아들이자, 초점이 엇나간 채 살아온 나는 단호히 말할 수 있었다.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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