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증조할머니로부터 시작된 신통함이 할머니와 엄마를 거쳐 나에게 전해졌을 수도 있다. 요전 날 꿈의 찝찝함을 현실로 마주할 때의 그 짜릿함. 눈 뜨자마자 검색한 꿈 해몽이 오늘도 절묘히 맞아떨어진다. 뜻밖의 금전운이 들어온다는 해몽이 배달의민족 5,000원 쿠폰 당첨과 같은 형태로 찾아올 때는 잔뜩 부풀었던 기대가 픽하고 웃음으로 새기도 했다.
롯데유치원을 다니던 7살 무렵, 나의 꿈은 ‘백댄서’였다. 나는 자주 뜻 모를 가사의 노래를 튼 채 문을 걸어 잠갔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춤을 췄다. 남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했고 관심받는 것을 즐겼으며 잘난 체하며 춤추는 아이는 자신을 놀리는 어른들 앞에 수줍은 척 연기를 잘도 해댔다. 그런 날은 꿈에서도 무대에 올랐고 용돈 같은 것을 받은 나는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꿈’과 ‘꿈’이 같은 단어가 아님을 알게 된 것은 곧.
선생님, 화가, 사진작가, 큐레이터의 꿈을 지나온 나는 지난밤 꿈에 무대가 아닌 책상에 자주 앉아 시험을 망쳤고, 누군가에게 자주 쫓겨 계단을 도망쳐 올랐다. 3년 전, 이가 몽땅 부서져 사라지는 꿈을 꾼 날은 이제 어떤 꿈을 가져야 하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아 오싹한 등골로 눈물을 흘렸다. 실컷 울다 그때 알게 되었다. 꿈은 꿈이 아니구나.
내 꿈은 내 꿈을 알지 못하는구나.
증조할머니와 할머니, 엄마를 거치며 유전학에 의해 희석된 신통함은 오늘날 어플 쿠폰 당첨이나 친구의 여행 기념 선물, 연락이 뜸하던 친구의 반가운 전화 같은 것에만 적중할 뿐이다.
재주의 한계를 알게 된 이제, 하찮은 꿈해몽의 즐거움일랑 즐기게 되었으나 밤이 유독 길게 느껴지는 날이면 아쉬움에 베개를 자꾸만 쓸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