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즘
은밀한 취미 정도로 말해도 될까.
사람과 눈을 보며 대화하는 게 버거운 일처럼 느껴지는 저녁이면 나는 늘 유튜브에 ‘임밍아웃’과 ‘대학합격순간’을 검색했다.
대략 오억 개의 영상 속 모두 초면인 사람들.
상기된 뺨과 떨리는 눈동자, 나조차 숨을 참게 되는 혹시나 하는 마음들 그리고 마침내 안도와 기쁨과 행복의 눈물. 엔딩.
등장인물만 바뀌는 똑같은 스토리의 영화를 질리지도 않고 10번, 20번 어떤 날은 50번 반복 재생한다.
여지없이 똑같은 엔딩에도 저항 없이 50번을 또 따라 우는 시퀀스. 클리셰 범벅인 아침드라마의 중독성을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이제 막 잉태된, 이제 막 사회생활에 첫걸음을 뗀 저 여린 존재들을 향하는 오로지의 축복과 사랑만이 10분 남짓의 영상을 가득 채운다.
이윽고, 나의 존재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그날과 나의 합격 소식을 접한 그날을 떠올린다.
그의 존재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그날과 그가 스스로의 합격 소식을 접한 그날을 떠올린다.
유튜브 영상 속 수십 개의 얼굴이 모두 같은 표정인 것이 나와 그를, 너와 그들을 미워할 수 없게 한다.
벅차오른 수십 개의 마음에 어제의 지침과 오늘의 형편없음과 또 찾아올 내일의 실망이 담겨 있지 않기에 나는 결국 또 모두가 안쓰러워진다.
며칠 전 친구들과의 약속자리에서 언제가 ‘인간의 귀여움’에 대한 책을 쓰겠노라 선언했었다. 내 옆에 앉아 검은 물을 마시며 조잘거리는 저들에게도, 인간미 없는 피드백으로 어제의 나를 벌벌 떨게 한 중년의 남자에게도, 횡단보도를 건너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굳은 표정의 그 언니에게도 각자의 임밍아웃 순간과 간절했던 합격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나로선 절절히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사랑과 연민 다음으로 오는 것은 대책 없다는 귀여움의 감정.
인간이 귀여워 죽겠다.
오줌 묻은 임테기를 넣은 박스에 리본을 묶고 이제 겨우 2센티인 아기인 척 삐뚤삐뚤 왼손으로 편지를 쓴다. 클릭 한 번을 위해 수천 번의 기도를 하고 넘어간 화면 위를 안간힘 덮은 작은 손바닥이 덜덜 떨린다.
몇 년 전 나를 이끈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은 그렇게 ‘큐트 휴머니즘’ 기반의 지독한 박애주의자를 세상에 탄생시켰고, 중요한 사실은 그 이론이 수십 번 나를 바닥에서 끌어올려 살려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