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8월에 즐기는 캐롤

by 유옥



8월의 태양은 모든 것을 너무도 투명하게 드러낸다.

흰 셔츠 등판에 맺힌 땀의 윤곽, 자외선에 반사되어 흩날리는 먼지, 전기포트처럼 끓는 아스팔트 위로 일제히 들이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색.


모든 게 또렷하고 눈부셔서 도리어 어떤 감정도 숨어들 틈이 없다. 나는 그런 여름이 때로는 버겁다.


한낮의 열기에서 도망치듯 무작정 들어간 낯선 카페. 네이버 지도에서 별 네 개 반을 받은 아이스라떼 맛집이라지만, 사실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pinterst


작은 화면을 엄지로 몇 번 두드려 시나트라의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를 튼다.


계절이 정해둔 질서를 거슬러 음악을 재생하는 일엔 묘한 해방감이 있다. 마치 구획된 시간표 위에 낙서를 하듯, 나는 이 한여름에 굳이 캐롤을 듣는다.


냉방이 과하게 잘 되는 지하 서점의 여행서적 섹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지구 반대편 겨울을 담은 여행 가이드를 뒤적이는 일처럼.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은 형광색에 가까웠다.

시력이 아니라 시선을 자극하는 색, 너무 강렬해서 형태보다 빛의 압력이 먼저 느껴지는 그런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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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래에선, 뭔가를 믿는 일이 자꾸만 흐릿해진다.

여름은 실재한다기보다 덮쳐오는 인상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계절을 밀어내려 겨울을 튼다.


이어폰 속에서 잠시 흘러나오다 끊긴 캐롤,

바닥까지 말라 비틀어진 디퓨저에 가물가물 남은 겨울 향, 시즌오프 코너에 뒤섞인 벨벳 잠옷과 단추.


완결된 계절처럼 보이는 여름 속에서 나는 자꾸만 부재를 음미한다. 그리워서가 아니라 그 결핍을 곱씹는 일이 내 취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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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캐롤을 듣는 마음은 때때로 연인을 떠올리는 방식과 닮았다.

애써 잊고 싶지 않아서 혹은 너무 선명해지면 곤란할 것 같아서, 그 경계 어딘가를 맴도는 일


날은 덥고 마음은 느슨하게 늘어진다.

아이스라떼의 얼음이 녹아, 밍밍해지는 소리는 투명하게 증발하고 선풍기와 에어컨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바람을 뽑는다. 그 위로 반짝이는 음의 캐롤이 흩날린다. 눈이 내릴 리 없는 8월의 오후에.


나는 여전히 여름을 통과하는 법을 잘 모르겠다.

그래서 계절이 제 역할을 다할 때,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나 겨울의 잔향을 수집한다.


감정이라는 건 계절과 무관하게 피고 지듯, 나는 내 마음의 모든 시간대를 동시다발적으로 열어두고 살아간다.


아무도 크리스마스를 기다리지 않는 이 여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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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편집 | 유옥(瑜)​
@0k.Y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