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자주 행복할 것, 행복을 미루지 않기.
아빠의 술장고를 물려받았다.
나는 그 앞에서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문을 열자 묵직한 유리병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진한 호박(琥珀)빛으로 가라앉은 위스키,
코르크 마개를 한껏 움켜쥔 와인,
도대체 언제 산 건지 알 수 없는 리큐르들.
아무도 마시지 않아 그대로 먼지만 쌓여 있었다.
그곳엔 회사생활의 기념품 같은 술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승진 축하라며 건네받은 양주,
출장에서 빈손으로 돌아오기 민망해 면세점에서 할인율을 따져가며 사온 위스키,
누군가의 정성으로 포장된 와인들.
아빠는 그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언제든 꺼내 마실 수 있었지만 ‘좋은 날’을 기다리며 아끼셨다. 귀한 손님이 오거나, 자식들이 자라 어른이 되는 순간, 은퇴를 맞이하는 저녁 같은 시간들.
아빠의 술장고는 늘 그 ‘언젠가’를 위해 잠겨 있었다.
나는 가끔 그 술장고 앞을 서성이며 생각한다.
왜 좋은 것들은 늘 나중으로 미뤄두는 걸까.
기다림 속에 더 진한 의미가 생겨난다고 믿었던 걸까. 아니면 ‘오늘’을 탕진하지 않으려는 검약의 습관이 몸에 밴 걸까.
새 신발은 먼지 묻힐까 봐 신지 않고, 좋은 그릇은 손님이 와야만 꺼내고, 오랫동안 기다려온 여행은 언젠가 시간이 나면 가겠다고 달력 구석에 접어두고. 그 사이 시간은 부지런히 흘러가 버렸다.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은 채.
어릴 적부터 기억한다. 아빠가 술장고를 열며 말하던 모습.
“이건 네 결혼식 때 열까?“
그 농담은 이제 도착하지 못한 약속으로 가슴에 맴돈다.
삶에는 그런 빈칸들이 있다. ‘언젠가’라는 이름으로 남겨둔 공간들. 그러나 그 빈칸은 대개 채워지지 않은 채 세월 속에 사라져버린다.
나는 이 술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아빠가 기다렸던 그 ‘좋은 날’에 대신 마셔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평범한 오늘 밤에 잔을 기울여야 하는 걸까. 생각하다 보면 어쩌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오늘을 살고 있으면서도 그 가치를 믿지 못해 자꾸 내일로 미루곤 한다. 언젠가 더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우리를 버티게도 하지만동시에 오늘을 허비하게도 한다.
아빠의 술장고를 열어보며 나는 배운다.
좋은 것은 ‘나중’이 아니라 ‘지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다림이 만든 술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술을 함께 나눌 사람의 부재는 어떤 기다림으로도 보상할 수 없다는 것을.
아빠의 ‘좋은 날’은 결국 오지 않았다.
스스로를 위해 아껴둔 술조차 이제는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술장고는 고스란히 나에게 넘어왔다. 차곡차곡 쌓아둔 기대와 함께.
어쩌면 삶은 ‘나중’에 쓰기 위해 아껴두는 것이 아니라 ‘지금’에 조금씩 써내려가야 하는 노트인지도 모른다. 아빠가 남겨준 술장고는 그래서 유산이라기보다 어떤 숙제 같다.
오늘을 미루지 말라는 숙제.
나는 아빠의 술을 한 병 열어, 잔에 따르고, 천천히 목을 축인다. 쓴맛 뒤에 번지는 알싸한 향이 목을 타고 흐르며 오래된 유리병 속에 갇혀 있던 시간들이 풀려난다. 잔을 기울일 때마다 아빠가 살아온 나날의 무게가 한 모금씩 스며든다.
아빠가 끝내 미루어둔 오늘을, 내가 대신 살아내기 위해서.
글, 편집 | 유옥(瑜)
@0k.Y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