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마음

런린이의 자세에 대하여

by 유옥





한동안 달리기를 멀리했다.


트랙을 돌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앞지르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함께 뛰는 사람이 없어도 속도를 비교하는 마음은 슬그머니 따라붙었다. 언젠가 페이스와 기록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 안에서 우열을 가르게 될 것이 뻔했다.


그런 점에서 달리기와 네 해 가까이 이어온 요가는 분명 달랐다. 요가는 경쟁을 요구하지 않는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내 몸의 가장 느린 부분을 따라가면 그만이었다. 달리기는 그에 비해 자기 속도를 ‘드러내게’ 하는 운동 같았다.


©pinterst


특히 불편했던 건 누군가를 앞질렀을 때의 그 묘한 감각이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짧은 쾌감이 나를 잠시 다른 사람 위에 세워두는 듯했다.

이 순간 그를 앞질렀다고 해서, 내가 특별히 달리기에 특출난 재능이 있음이 증명 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상대와 나의 시작점이 분명히 다른데도 타인을 앞질렀다는 착각은 나를 들뜨게 했다.


그러다 근 한 달 동안 비 오는 날에도 운동화 끈을 조이고 달리다 보니 생각이 조금 변했다.


그저 서로 다른 속도를 인정하면 되는 일이었다.


각자의 건강 상태나 시작점도, 혹은 그날의 기분조치 다르니 앞서거나 뒤처지는 건 우열이 아니었다. 다만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뿐.


망원 한강근처, 쭉 뻗은 러닝 코스를 달리다 보면 풍경은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여름보다는 가을에 가까운 저녁비는 달리는 사람들의 어깨와 모자를 잔잔히 적시고, 한강변 나무잎의 색이 하루 사이에도 옅어지거나 짙어진다. 곁을 스쳐 지나가는 러너의 귀에는 무선 이어폰이 꽂혀 있고, 누군가는 투박한 우비 속에 주머니가 많은 조끼를 걸친 채 묵묵히 달린다.


운동화 밑창이 젖은 아스팔트를 치는 소리가 일정한 리듬을 만들고, 그 리듬이 내 숨소리와 얽혀 묘하게 안정된 박자를 완성한다.


달리기를 시작하니 식욕이 살아났다. 사실, 사라졌던 적이 거의 없긴 하지만—굳이 말하자면 소화력이 좋아졌달까. 칼로리를 계산하지 않고 음식을 대하는 나 자신이 무척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좋은 건, 건강한 정신이 습관이 된다는 사실이다.


마음이 복잡할 땐 명상하듯 조용하게 입을 다물고, 생각을 멀리 던져두고 발로 땅을 박차고 달리면, 모든 것이 단순해진다. 가까운 거리는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웃음이 난다.


그러니 기록은 잊어도 된다.

그저 발이 땅을 박차는 리듬과 그 순간의 바람, 그리고 내 곁을 스치는 풍경만 기억하면 된다.


©pinterst

이렇게 달리기를 놓아버리지 않고 계속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멋지고, 충분히 행복하다.


그리고 어쩌면 나에게 속도는 앞으로 나아가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고요를 따라잡기 위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글, 편집 | 유옥(瑜)​
@0k.Y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