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물
백반을 섞어 으깬 꽃잎을 손톱 위에 얹고 비닐로 덮어 돌돌 말 때, 우리는 서로의 손끝에서 스며 나오는 수액(樹液)의 비린 향을 맡았다.
그것은 식물의 피 같았고,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을 불러내는 낡은 주술 같았다. 너는 실로 내 손가락 마디를 묶으며 물었다. 아파? 나는 고개를 저었다.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게 질려 가는 손끝에서 오히려 또렷한 박동을 느끼고 있었다. 사랑이란 어쩌면 신체의 일부를 잠시 묶어 두어서라도 선명한 색을 얻어내려는 지독한 고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여름의 습기가 다 빠져나가지 않은 방 안에 나란히 누워 손을 허공에 들어 올렸다. 붉게 물든 손톱이 어둠 속에서 작은 촛불처럼 떠 있었다. 속설에 따르면 첫눈이 올 때까지 이 붉은 흔적이 남아 있어야 사랑이 이루어진다는데, 나는 그 말이 꼭 저주처럼 들렸다. 사랑을 증명하려면 자라나는 손톱을 함부로 깎아내지 못한 채 시간을 견뎌야 하니까.
너는 먼저 잠이 들었고, 나는 어둠 속에서 내 손톱 위로 번져 가는 주황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식물의 몸을 따라 천천히 스며 오르듯, 색은 아주 느리게 자리를 넓혀 가고 있었다.
가을이 오자 색은 조금씩 위로 밀려 올라갔다. 손톱 밑동에서 차오르는 투명한 새살이 오래된 색을 밀어 올릴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다른 계절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너는 손톱을 자주 깎는 버릇이 있었고, 나는 자꾸 짧아지는 네 손끝을 보며 겨울의 행방을 물었다.
너는 그사이 손톱을 두 번이나 깎았다고 했다.
너의 사랑은 나보다 발걸음이 빨랐던 걸까.
네 손끝에서 주황색 반점들이 하나둘 잘려 나갈 때마다, 내 사랑은 갈 곳을 잃고 자꾸만 허공으로 길게 자라났다. 붙잡을 줄기를 잃은 덩굴처럼.
첫눈은 예보도 없이 어느 화요일 새벽에 내렸다. 서늘한 창밖을 보며 나는 내 손을 펼쳤다.
손톱 끝에 겨우 걸린 작은 주황색 점 하나. 다 타버린 성냥 머리 같은 색의 찌꺼기였다. 한때는 꽃물이 번지며 선명하게 물들던 자리였는데, 이제는 겨우 꺼지지 않은 불씨처럼 남아 있었다.
밖에서는 눈이 조용히 쌓인다.
너는 이미 다 바랜 손으로 눈을 뭉치고 있겠지.
나는 아직 여름의 꼬리를 붙잡고 있다.
손톱 끝에 남은 이 작은 색은, 너를 따라가지 못한 나의 느린 계절이 남긴 얼룩이었나 생각하면서.
글, 편집 | ©유옥(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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