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음

by 게으른 낙타

그다음


가게 주인은 잔돈이 없다고 했다.

그때 내 피부는 까맸고, 머리는 감지 않았고,

코에서는 콧물이 흘렀고, 무릎에는 딱지가 가득했다.

생각했다.

잔돈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때 나는 몸만큼 마음도 가난했다.

없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당당하게 만들지도 못했다.

나는 그냥 가게를 나왔을까?

내겐 기억이 없다.

그다음 기억은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렸던 기억뿐이다.

삶은 아주 높은 산을 넘으면 그다음 높은 산이 나온다는 것이다.

뭐 괜찮다. 원래 길은 산을 깎거나 덮어서 만든 거니까.

그래도 매번 산을 넘으면서 나는 그 가게 주인을 생각했다.

가게 주인은 그 후로 선선한 어른으로 컸을 것이다.

그 집 아이는 나보다 컸을까?

아마 그 집 아이는 피부는 까맣지 않고, 머리는 감았고,

코는 한 없이 멀끔하고, 무릎에는 딱지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생각했다.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아이가 자라면 가게에 데려가서

내 아이에게 과자를 잔뜩 사주고

잔돈은 됐다고 하고 나오면

피부는 하얘지고, 머리는 샴푸 냄새가 나고,

코에서는 아무것도 흐르지 않고, 무릎은 깨끗할 것이다.

그러면 내 복수는 끝이 나는 것일까?

늙은 우리 집 강아지가 털이 빠지고, 눈곱이 끼고,

가려워 엉덩이를 비비고, 거짓 기침을 킁킁거리며

먹을 것을 달라고 쳐다본다.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너 잔돈있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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