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시간 전 일인데, 친구에게 '무엇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친구는 과거 밴드부 동아리 활동을 하며 기타 가방을 메고 수업에 참여했던 내가 생각났는지 "밴드부나 하면서 살 것 같았는데, 아니었냐"며 의아해했다. 마치 예술을 할 것 같은 아기가 돌잡이에서 판사봉을 집고 왕왕 흔들어댔다고, 미리 법대 합격증을 정성스레 뽑아 쥐여준 느낌이랄까. 이럴 때면 '한 손에 여러 개를 쥐어 잡을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욕심이라 하겠지.) 상대의 기분을 알다가도 모른다면서 내던지는 말들이지 않나 싶다. 예컨대 그들이 내던진 말의 농도를 계산하자면, 가득 찬 뇌수가 에스프레소로 될 지경이었다.
말마따나 에스프레소는 전립선암에 효과적이라지만,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이 차별점이다. 그에게 과제를 도와주겠다는 말을 내뱉어버려 같이 과제를 해야 하는 관계지만서도, 확김에 틀린 답을 말해버릴까 욱함이 올라온다. 부득불 신뢰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범법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일 뿐더러, 내뱉은 것을 침마냥 혀로 날름 핥는다고 도로 먹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판사봉이나 왕왕 흔들어야겠다.
성인이 된 이후, 무엇을 하든 밥벌이를 위해 하는 것이라며 오해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서두에 말했던 친구의 농도 짙은 말과, "협조적이지 않아 보였다"며 지오페스타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놀란 교수님의 행동도 그만치 못한 농도를 지녔다. 예컨대 교수님도 기타 가방을 매번 들고 다니는 나를 기억하신 듯하다. 과제 같이 하자고 말한 것도 아니고, 허리 세우고 수업 열심히 들을 테니 협조적인 학생인 걸 알아달라는 말을 내뱉은 것도 아니니, "허허, 그런가요"라며 웃어 넘기는 게 최선이었다.
사람이 하는 말 한마디에도 의미를 부여한다며 돌려 까는 말을 종종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가?' 라며 나를 의심하는 듯한 말을 했지만, 속으로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면서 나에게서 얻고자 하는 말이 무엇일까. '의미 부여하는데 뭐 어쩌라고'라는 당당한 대답을 원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냥 농도 짙게 느껴지고 싶었을 뿐이지, 그냥 맑은 계곡물에 불과하다. 의도가 다분한 것을 눈치 있게 캐치하는 쓸데없는 초능력이 있는지라, 까짓것 의미 부여해도 아픔은 느끼지 않는다. (않으려고 한다.)
말마따나 자신도 과하게 생각하지 말라며 화를 내지만, 목구멍에서 내키지 않음을 느끼곤 답답함을 호소하는 중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그간 '인간의 믿음은 무결하다'며 믿고 살았던 신념이 꽤나 값싸다는 사실을 군대 사람들로부터 알게 되었다. 심장병을 앓아 외래 진료서를 떼 오면 자기 진급에 해가 될까 내용을 수정하던 소대장, 돌아오면 아픈 척이라는 소문이 장황하게 퍼져 곧이곧대로 믿고 비난을 남발하던 동갑 선임들, 샤워할 때마다 씻고 있던 나를 불러 성희롱을 하던 특정 선임, 군대 병원에서 마취가 되지 않는다면서 허리가 활처럼 휘어지게 받았던 치과 신경치료, 어금니가 썩었다며 쑤욱 빼버린 군의관, 전역 후 금니를 씌우기 위해 갔던 민간 병원 치과의사 선생님이 이빨 덧땜도 허술하다며 지었던 어이없음, 어금니를 뽑았다는 사실에 공포로 질렸던 일화가 있다.
덕분에 사람 행동의 원인과 표정의 일그러짐, 말의 근원을 파악하려 들려는 생존 본능이 생겨났다. 본능의 장단점은 확실하다.
장점
1.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의 구별이 쉽다.
무슨 의도로 말을 하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말은 착한데, 무언가 일본식 특유의 돌려 말하기에서 느껴지는 꺼림칙함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감자 먹어볼래? 아니, 감자 먹어본 적 없어" (그냥 먹기 싫어) 처럼 대놓고는 아니지만 아리송하게 느껴지는 꺼림칙함. 말하는 방식이 일본과 같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의도를 품고 있구나' 정도로 알면 된다. 다만 작자의 기준이 절대적이다.
2. 끊음에 냉정하다.
사람에게 등을 돌릴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나에게 있어 누군가를 잘 대해준다는 것은, 괜히 당연하다고 느끼지 말라는 마음을 담은 일종의 뇌물이다.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면 아마 좋은 관계가 될 거라 믿는다. (아직까지는) 다만, 상대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순간 주저 않고 돌아선다. 나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이코패스적인 생각이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아도 될 존재라는 판단이 지배적이라 그렇다.
단점
1. 말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쉽게 삐지기도 한다. 그것이 장난일지언정 내가 장난으로 생각 안 하는데 '장난? 허!' 웃음을 틱틱 거리며 걷기를 반복하며 삐짐을 뿜어낸다. 그래서 짝사랑의 빈도가 높다.
2. 사람의 첫인상이 동일하다.
'깊은 내면에 어두움을 지니고 있는 존재는 인간이다'는 신념이 생겨나버려, 아무리 훤칠하고 단아한 사람이 말을 걸어도 복싱선수처럼 어깨를 말아 방어하고 만다. 사람은 항상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믿는다.
쓸데없는 눈칫밥 생존 본능은 세대를 거쳐 나로 진화했다. 카페에서 "카페인 잔뜩 들어간 에스프레소 주세요"라는 말을 제외하곤 입 벙긋조차 하지 않는 하루가 나날이 길어졌고, 구태여 내뱉은 말에 돌아온 답장을 보고 삐지기도 한다. 정말 시시각각 나의 존재가 무너져 내리고 있음의 신호였다. 타파해야만 했다.
나를 조용한 카페라고 생각하자. 들어온 손님들이 싸질러 놓은 쓰레기는 더티플레이팅이라면서 치워주고, 나갈 때는 '소리 없이 오지 말라'며 욕을 하곤, '다음에 또 오라'며 소리 내 말하자. 이따금 찾아오는 고요의 소중함에 치중하는 것은 어떨까. 청춘이란 걸 욱함에 버리기 아깝기도 하고 만들지도 못하니까.
다만 한마디는 꼭 하고 싶었다.
"꼭 그렇게 말해야만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