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예방접종은 꽤 일찍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로 기억한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아직 꼬물이일 텐데 이렇게 일찍부터 해야 된다니' 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검색해 보니 6주 차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룽지는 2~3개월 차에 첫 접종을 맞아서 늦게 시작한 경우에 속했다. 그래도 앞으로 남은 접종을 일정대로만 잘 맞으면 그만이니 문제 될 건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강아지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다 보니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새끼 강아지에게 가장 중요한 게 사회화라고 많이들 얘기하는데, 룽지랑 같이 살아온 시간들을 쭈욱 돌이켜 보면 내가 느끼기에도 룽지가 새끼였던 시절엔 그게 가장 중요했다.
룽지는 대략 8~12주 차 사이에 접종을 시작했는데 예방접종은 2주 간격으로 맞아야 하고, 최소 3차 예방접종까지는 맞아야 안전하게 산책을 할 수 있었다. 그 말인 즉 룽지가 12~16주 차는 접어들어야 산책이 가능해진다는 건데, 문제는 강아지의 사회화 시기가 생후 3주 또는 4주에서부터 16주까지라는 것이었다. '이제 산책 좀 해볼까'하면 룽지의 사회화 시기는 거의 끝물인 셈이었다. 룽지와 함께하는 첫 난관이었다.
근데 뭐, 산책이 안 될 뿐이지 외출 자체가 안 되는 건 아니더라. 그래서 하루에 두세 번씩, 아침-점심-저녁 혹은 아침-저녁마다 룽지를 안고 돌아다니면서 세상구경을 시켜줬다. 어느 날은 초등학교 운동장을 돌며 어린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여주고, 어느 날은 산책로를 걸으며 풀냄새를 맡게 해 주고, 어느 날은 자동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골목을 거닐며 자동차들을 보여주곤 했다. 사진들에서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집 안에선 그렇게 날뛰던 녀석이 바깥구경을 할 때면 세상 얌전한 강아지로 변했었다.
훗날 산책하게 될 날을 위해 집 안에서 미리 가슴줄 차는 연습도 해보고 리드줄까지 연결한 채로 지내보기도 하면서 가슴줄에 익숙해지기 위해 예행연습도 했었다. 리드줄을 문고리에 묶어두기도 했고 집 안에서 산책하는 것처럼 다녀보기도 했었는데, 집이 좁아서 그런지 산책이 쉬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가슴줄을 한 채로 현관문 앞까지만 나가보고, 대문 밖을 나가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녀 보기도 하고, 대문 밖까지 나가서 조금씩 걸어보기도 했다. 대문 안까지는 잘만 돌아다니다가도 대문 밖에 나갔을 땐 어딘지 쭈뼛거리는 듯했던 룽지가 기억난다. 아스팔트의 낯선 촉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새로 마주한 환경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어린 강아지가 세상을 보고 듣고 맡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면 굉장히 벅찬 기분이 들었다. 이아이에게 세상의 모든 것들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파도치는 바다도 보여주고 싶고, 나무가 가득한 산길의 냄새도 맡게 해주고 싶었다. 호기심 가득하고 맑디 맑은 어린아이의 경험을 더 풍부하게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자식은커녕 아직 결혼도 안 했지만 '이런 게 부모의 마음일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만약 자녀를 키우게 되면 그런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될까. 룽지를 기르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세상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룽지는 물을 마시고 용변을 보고 난 후 철퍼덕 뻗어서 잠에 들곤 했었다. 아! 이제 보니 그래서였나 보다. 룽지가 나중에 산책이 가능해졌을 때에도 한동안은 절대 밖에서 대소변을 보지 않고 꼭 집에서만 배변활동을 했었는데, 왜 그랬는지 이제 알 것 같다. 내가 안고 다니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만 배변활동을 하다 보니 그런 습관이 생겼었나 보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룽지에 대해 새로 알아가는 게 생기다니.
어쨌거나 밖에 나갔다 오는 게 어린 녀석에겐 적잖이 피곤한 활동인 듯했다. 그 시기의 나는 온 신경이 룽지에게 쏠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애를 키우는 일에 매달리며 지냈었는데, 룽지를 데리고 나갔다 오면 애가 혼자 곯아떨어지니까 그 순간만큼은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단순히 애가 자는 시간도 내게 휴식시간이긴 했지만 완전 잠에 푹 빠진 상태여야 나도 맘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지 싶기도 하지만 그땐 그냥 그랬다. 좀 과민한 시기였달까.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 내지는 부담감 때문이었을지도.
3차 예방접종까지 맞고 나니 수의사 선생님께서 이제 산책을 해도 되긴 되는데 요즘 사람의 혈소판에 치명적인 진드기가 있을 수 있으니 풀밭이나 숲길 같은 곳은 가지 않는 게 좋다고 하셨다. 드디어 산책이 가능해지다니. 이제 룽지가 스스로 걷고 싶은 대로 걸어 다니며 산책을 할 수 있다니!.....
사실 3차 접종을 맞았을 때가 이사 5일 전이라 이사 가기 전까지 제대로 된 산책을 하지는 못 했고, 3차 접종을 맞기 전에 큰 공원에 한 번 간 적이 있었다... 친척누나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왔을 때 다 같이 갔었는데, 기초접종을 꼭 맞아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와 마찬가지로 '에이 동물들 원래 다 자연에서 사는데 괜찮겠지' 하는 마인드였다. 그래도 그냥 가기엔 무서우니까 나름 선물 받은 꼬까옷을 입히긴 했었다.
처음 나가보는 산책에 잔뜩 신나서 꼬리는 팔랑팔랑 흔들면서 내가 달리면 따라서 폴짝폴짝 뛰어오고, 그러다가 파다다다 몸도 한 번씩 털어주고. 풀이 많은 곳을 밝으면 그 느낌이 신기한지 토끼처럼 뛰어다니고, 풀도 뜯어보고 솔방울도 먹는 건지 장난감인지 씹어 보고. 지나가는 강아지가 다가왔을 땐 무서운지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었다. 룽지는 양말을 신은 것처럼 발끝이 하얘서 뽈뽈뽈뽈 다니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중간에 계단이 있는 구간도 있었는데 못해도 자기 몸통 정도는 되는 계단을 껑충껑충 잘도 올라가더라. 조그만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올라가서도 폴짝폴짝 뛰어다니질 않나. 그렇게 실컷 뛰어다니다가 힘들었는지 나한테 안아달라고 하던 그 시절 룽지의 모습도 기억난다. 30분을 그러고 다녔으니 힘들 만도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물티슈로 룽지 발을 닦으려 했는데 물티슈를 물면서 한차례 반항을 하더니 잠시 후에 곤히 잠들었었다. 그렇게 팔팔하게 뛰어다니던 애가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잠을 자다니. 정말 중간이 없는 녀석이었다. 그러고 집에 가서 또 우다다 뛰어놀았었다.
사회화를 잘해주려고 나름 노력했지만 가장 중요한 걸 놓쳤었다. 다른 강아지들을 많이 만나지 못했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밖에서 만난 몇 안 되는 강아지들은 사나운 모습을 보여서 룽지에겐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가족들이 키우는 강아지들이 그나마 희망이었지만 걔네들마저 룽지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지 않았고, 룽지가 같이 놀고 싶어 해도 위험해 보일 정도로 격하게 쫓아내기도 했었다. 어린 룽지에게 다른 강아지들은 무서운 존재로 단단히 각인이 됐을 터였다.
한 번은 집 근처를 돌아다니다 한 가족을 만났던 적이 있었는데, 어린아이들이 조그마한 강아지를 보면 으레 그렇듯 그쪽 남자아이가 룽지를 보고 만지고 싶어서 가까이 다가왔었다. 그 아이의 부모들도 아이에게 강아지를 만져보라며 다가왔고, 나도 룽지가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익숙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이 다가오는 걸 피하거나 말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룽지는 그 상황이 무서웠는지 나에게 안기며 안간힘으로 그 아이의 손길을 피하려 했다.
사실 룽지가 사람을 경계한다는 건 그간 룽지를 봐오면서 눈치챌 수 있었다. 할머니를 만날 때마다 특정 행동을 보이기도 했고, 여자친구가 왔을 때도 처음부터 호의적이었던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짖으며 경계를 했었으니까. 누가 봐도 룽지는 사람을 처음 만나자마자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사람이 많지 않은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많지 않았었다.
나는 룽지가 사람과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 그렇게 했지만, 룽지 입장에선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데도 보호자인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결국 내 욕심 때문에 낯선 사람들, 특히나 어린아이는 룽지에겐 부정적인 경험으로 남게 됐다.
시간이 지난 후 한적한 시골에서 벗어나 인구가 많은 곳으로 이사를 오고 룽지도 자유롭게 산책이 가능해져 사람들과 강아지들을 만나는 일이 잦아졌을 때, 사회화를 적절히 해주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정말로 힘든 나날들을 보냈었다. 매일매일 산책을 할 때마다 애가 통제가 안 돼서 스트레스는 쌓이는데,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가끔은 화가 나서 애한테 짜증을 내기도 하고, 한 차례 화가 터지고 나면 아무것도 모르는 애를 꾸짖는 나 자신 때문에 스트레스가 다시 쌓이고, 애한테 미안한 마음에 아무래도 나는 애를 행복하게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서 심란해지고. 그런 감정들이 계속 반복되며 차마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끔찍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지냈었다. 오죽했으면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여자친구가 '강아지들은 태어나고 1년이 지나면 이성요정이 찾아온다'며 1년만 버티자는 말을 해주곤 했었다. 실제로는 1년 하고 조금 넘어서야 애가 얌전해졌지만, 어쨌거나 지금이야 다 적응해서 잘 지내고 있다.
티브이 프로그램 같은 데에 나오는 애들을 보면 룽지는 양반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이렇게 달라져서 잘 자라준 룽지한테 고마워해야 할지. 그래도 룽지가 어렸을 때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자주 다녔더라면, 강아지들이 많은 곳에 자주 데려갔더라면. 그랬더라면 룽지도 어릴 때부터 다른 강아지들이랑 인사도 잘하고 쉽게 친해져서 잘 놀았을 텐데, 한창 귀여울 시절에 사람들의 이쁨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랄 수 있었을 텐데.
혹시 새끼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면 어릴 때 조금 더 신경 써서 잘해주시길. 특히나 도시에서 키우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고 급한 마음으로 접근하면 나가 그랬던 것처럼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 애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차근차근 점차 자극을 늘려가며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우리 룽지는 사회화를 잘 못 해줘서 바로잡기까지 1년이 넘게 걸렸지만 이게 3년이 될지 5년이 될지, 어쩌면 평생을 갈지도 모르지 않나. 행복하게만 살아도 강아지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으니까 이왕이면 행복한 시간들로만 채울 수 있도록 어릴 때 조금만 더 노력해 주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