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기물개 Mar 12. 2024

03. 룽지의 장난감

새끼 강아지의 놀이는 끝이 없다

 어린 강아지의 에너지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넘친다. 방전된다 하더라도 금세 충전된다. 자고 일어나면 또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다 장난감을 물어오곤 한다. 바스락거리는 충전재가 들어있는 장난감이며, 로프로 된 터그장난감이며. 하다못해 눈에 보이는 인형이나 어쩌다 눈에 띈 키친타월 심, 바닥에 떨어져 있던 수건까지. 입으로 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장난감이 될 수 있다. 

 외출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집이 난장판이 되어 있는 인터넷에서만 보던 그런 광경을 나도 본 적이 있었다. 어디서 꺼내왔는지 키친타월을 이리저리 찢어발겨놓고는 전리품처럼 심을 꼭 챙겨놨더라. 내놓으라고 해도 자기 것이라는 듯이 고개를 뒤로 피하면서 절대 안 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룽지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은 내 손가락이었다. 룽지가 날 처음 만났을 때 했던 행동이 내 손 냄새를 맡고 손가락을 가볍게 앙 물었던 거였는데 그 때문이었을까. 내 손가락을 물면서 가지고 노는 걸 제일 좋아했다. 움직이기도 하고 말랑말랑하기도 하니까 좋을 만도 하다. 

 새끼 강아지가 사람 손을 좋아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사실 좋은 행동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바로 잡지 않으면 다 커서도 사람의 손발을 물면서 놀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가 아주 어릴 때야 손가락을 아무리 물어도 별로 아프지 않지만 점점 무는 힘이 세지고 이가 더 자라다 보면 슬슬 아프기도 하니까. 이빨도 이빨인데 쪼그마한 발톱이 은근히 날카로워서 팔도 참 많이 긁혔었다. 

 그렇지만 애기도 자꾸 손으로 놀려고 하고.. 그런 룽지가 너무 귀엽기도 하고..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결국 그렇게 놀게 되더라.. 



 예방접종을 아직 충분히 맞지 않아 산책을 나갈 수 없을 시절엔 애가 집안에서 장난감 가지고 노는 것만으론 부족했는지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싶을 정도로 가끔 폭주를 할 때가 있었다. 가령 이리저리 우다다다 뛰어다닌다거나 뭔가 굉장히 화난 것처럼 나한테 꼬락서니를 부린다거나. 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넘쳐나는 에너지를 위한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러다 알게 된 게 노즈워크였다. 강아지는 냄새를 맡는 후각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데 산책을 나갈 수 없으니 산책 대신 집 안에서 코를 많이 쓸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에너지를 소모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처음엔 별 기대 없이 그냥 뭐라도 애한테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싶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다가 적당해 보이는 킁킁볼이란 걸 샀었다. 작은 간식을 끼워서 숨겨놓을 수 있는 공모양 장난감인데, 공을 굴려가며 냄새를 맡아 간식을 찾아먹는 그 순간이 애기 집중력도 키워준 것 같고 꽤 만족스러웠다. 



 그 이후로 다양한 노즈워크를 알아봤는데, 그중에서도 애기가 가장 재밌어하고 나도 만족스러웠던 건 바로 종이호일에 간식을 꽁꽁 싸서 주는 방법이었다. 하는 법도 간단하다. 그냥 종이호일을 작게 찢은 다음 간식을 싸주면 된다. 정말 별 거 아니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룽지가 가장 즐겨하는 노즈워크 중 하나다. 어릴 땐 종이호일도 먹어버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종이는 죽죽 찢어버리고 기가 막히게 간식만 쏙 빼먹더라. 그래도 혹시 모르니 어린 강아지들은 항상 주의 깊게 지켜봐 주는 게 좋다. 

 이외에도 정말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간단하게 직접 만들 수 있는 것도 있고, 시중에 판매 중인 제품으로 하는 것도 있고. 어린 강아지는 호기심이 아주 왕성하니 마음에 드는 걸 아무거나 골라서 하더라도 재밌게 즐기지 않을까 싶다. 



 우리 집 소파 위엔 내 동생이 인형 뽑기를 해서 모아둔 마시마로 인형들이 줄줄이 앉아 있는데, 가엽게도 그 인형들은 모두 코가 없다. 불행히 룽지의 눈에 띄어버린 탓에 코가 모조리 뜯겨 버렸다. 왜 다른 것들은 내버려 두고 코만 줄줄이 뜯어버렸는지는 모르지만, 모아놓고 보면 다들 원래 코가 없는 것처럼 통일성은 있어서 나름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솜이 다 꺼내질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공룡인형도 있었다. 룽지는 얼굴을 파묻어가면서까지 인형에서 솜을 끄집어내 여기저기 흩뜨려 놓고는 인형 안에 남은 솜이 없을 때면 재미 다 봤다는 듯이 인형을 버려두곤 했었다. 흩어져 있는 솜을 모아서 다시 인형 안에 욱여넣고 꿰매놓아도 나중에 보면 또 솜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꿰맨 곳에 조그마한 틈이라도 보이면 불굴의 의지로 뚫어내는 룽지였다. 



 동생방에는 인형 뽑기로 뽑은 인형이 많이 있는데, 환기 좀 한다고 동생네 방문을 열어두면 룽지는 어느새 들어가서 기웃거리다가 맘에 드는 인형을 하나 물어오곤 했었다. 심지어 자기 덩치랑 맞먹는 큰 인형을 쫄래쫄래 물고 와서는 소파계단을 못 올라가서 낑낑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귀여웠다. 혼자 힘으로 인형 꺼내오는 걸 성공해서 당당한 와중에 나한테 뺏길까 봐 슬금슬금 눈치도 보이고, 그래도 힘들게 꺼내왔으니 소파 위에 올라가서 물고 뜯고 즐기기는 해야겠는데 인형이 자기 몸보다 더 커서 아무리 애를 써도 올라가지는 못 하겠고.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애기다운 감정이 겉으로 다 드러나는 솔직한 룽지였다. 



 룽지가 원체 무언가를 물어뜯으면서 노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빨이 나면서 입 안이 간지럽고 불편해서 뭘 자꾸 씹어대는 그런 시기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찾아보니 그런 강아지들을 위한 물건이 또 있더라. 강아지가 앞발로 딱 잡고 이빨로 마음껏 씹어댈 수 있는 커피나무 스틱이라는 게 있었다. 

 나무니까 씹다가 찔려서 다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커피나무는 일반 나무와는 다르게 갈라져도 뾰족하게 갈라지지 않아서 가지고 놀다가 삼켜도 안전하다더라. 근데 부서진 조각들을 보면 아예 날카롭지 않은 건 아니었고, 어느 정도 뾰족한 느낌이 드는 조각도 간혹 있긴 있었다. 부서져 떨어진 조각을 룽지가 가끔 먹기도 했었지만 문제가 생기진 않았었다. 



 어쨌거나 룽지의 만족도는 100퍼센트였다. 어찌나 많이 물고 뜯었는지 내 다리 위에서 스틱을 가지고 놀고 나면 바지 위에 눈이라도 온 것처럼 나무 부스러기들이 가득했었다. 한 번은 친척누나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룽지가 가지고 놀았던 커피나무 스틱을 보고 얼마나 오래됐으면 이모양이냐고 그랬었는데, 사실 그땐 사준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나도 새삼 놀랐었다. 일주일도 안 됐는데 스틱이 작아지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 샀던 스틱이 금세 몽당연필처럼 작아져서 다른 사이즈로 또 구매했었다.  



 룽지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고 특히 새로운 것에 큰 흥미를 보이는 편이었다. 그래서 기존의 장난감에 흥미가 떨어졌다 싶을 때마다 새 걸 사주고, 노즈워크도 꾸준히 새로운 방법을 찾아가며 해왔다. 특히나 애가 어릴 땐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주려고 어느정도 자란 요즘보다 더 열심히 알아봤었다. 

 언젠가 산책에 관한 영상을 보다가 강아지들은 환경에 금방 익숙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산책도 매일 다니는 곳으로만 다니는 것보단 안 다녀본 곳으로도 가보는 등 새로운 경험을 해주는 게 강아지에게 좋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는데, 사실 산책뿐만 아니라 강아지와 함께하는 모든 일상이 그렇지 않을까. 새로운 코스로도 다녀보고, 새로운 장난감도 가지고 놀아보고, 새로운 것도 먹어보고. 우리같은 사람이야 본인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지만 강아지는 우리가 해주는 만큼만 겪으면서 살아가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