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강아지의 놀이는 끝이 없다
어린 강아지의 에너지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넘친다. 방전된다 하더라도 금세 충전된다. 자고 일어나면 또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다 장난감을 물어오곤 한다. 바스락거리는 충전재가 들어있는 장난감이며, 로프로 된 터그장난감이며. 하다못해 눈에 보이는 인형이나 어쩌다 눈에 띈 키친타월 심, 바닥에 떨어져 있던 수건까지. 입으로 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장난감이 될 수 있다.
외출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집이 난장판이 되어 있는 인터넷에서만 보던 그런 광경을 나도 본 적이 있었다. 어디서 꺼내왔는지 키친타월을 이리저리 찢어발겨놓고는 전리품처럼 심을 꼭 챙겨놨더라. 내놓으라고 해도 자기 것이라는 듯이 고개를 뒤로 피하면서 절대 안 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룽지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은 내 손가락이었다. 룽지가 날 처음 만났을 때 했던 행동이 내 손 냄새를 맡고 손가락을 가볍게 앙 물었던 거였는데 그 때문이었을까. 내 손가락을 물면서 가지고 노는 걸 제일 좋아했다. 움직이기도 하고 말랑말랑하기도 하니까 좋을 만도 하다.
새끼 강아지가 사람 손을 좋아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사실 좋은 행동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바로 잡지 않으면 다 커서도 사람의 손발을 물면서 놀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가 아주 어릴 때야 손가락을 아무리 물어도 별로 아프지 않지만 점점 무는 힘이 세지고 이가 더 자라다 보면 슬슬 아프기도 하니까. 이빨도 이빨인데 쪼그마한 발톱이 은근히 날카로워서 팔도 참 많이 긁혔었다.
그렇지만 애기도 자꾸 손으로 놀려고 하고.. 그런 룽지가 너무 귀엽기도 하고..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결국 그렇게 놀게 되더라..
예방접종을 아직 충분히 맞지 않아 산책을 나갈 수 없을 시절엔 애가 집안에서 장난감 가지고 노는 것만으론 부족했는지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싶을 정도로 가끔 폭주를 할 때가 있었다. 가령 이리저리 우다다다 뛰어다닌다거나 뭔가 굉장히 화난 것처럼 나한테 꼬락서니를 부린다거나. 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넘쳐나는 에너지를 위한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러다 알게 된 게 노즈워크였다. 강아지는 냄새를 맡는 후각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데 산책을 나갈 수 없으니 산책 대신 집 안에서 코를 많이 쓸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에너지를 소모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처음엔 별 기대 없이 그냥 뭐라도 애한테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싶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다가 적당해 보이는 킁킁볼이란 걸 샀었다. 작은 간식을 끼워서 숨겨놓을 수 있는 공모양 장난감인데, 공을 굴려가며 냄새를 맡아 간식을 찾아먹는 그 순간이 애기 집중력도 키워준 것 같고 꽤 만족스러웠다.
그 이후로 다양한 노즈워크를 알아봤는데, 그중에서도 애기가 가장 재밌어하고 나도 만족스러웠던 건 바로 종이호일에 간식을 꽁꽁 싸서 주는 방법이었다. 하는 법도 간단하다. 그냥 종이호일을 작게 찢은 다음 간식을 싸주면 된다. 정말 별 거 아니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룽지가 가장 즐겨하는 노즈워크 중 하나다. 어릴 땐 종이호일도 먹어버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종이는 죽죽 찢어버리고 기가 막히게 간식만 쏙 빼먹더라. 그래도 혹시 모르니 어린 강아지들은 항상 주의 깊게 지켜봐 주는 게 좋다.
이외에도 정말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간단하게 직접 만들 수 있는 것도 있고, 시중에 판매 중인 제품으로 하는 것도 있고. 어린 강아지는 호기심이 아주 왕성하니 마음에 드는 걸 아무거나 골라서 하더라도 재밌게 즐기지 않을까 싶다.
우리 집 소파 위엔 내 동생이 인형 뽑기를 해서 모아둔 마시마로 인형들이 줄줄이 앉아 있는데, 가엽게도 그 인형들은 모두 코가 없다. 불행히 룽지의 눈에 띄어버린 탓에 코가 모조리 뜯겨 버렸다. 왜 다른 것들은 내버려 두고 코만 줄줄이 뜯어버렸는지는 모르지만, 모아놓고 보면 다들 원래 코가 없는 것처럼 통일성은 있어서 나름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솜이 다 꺼내질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공룡인형도 있었다. 룽지는 얼굴을 파묻어가면서까지 인형에서 솜을 끄집어내 여기저기 흩뜨려 놓고는 인형 안에 남은 솜이 없을 때면 재미 다 봤다는 듯이 인형을 버려두곤 했었다. 흩어져 있는 솜을 모아서 다시 인형 안에 욱여넣고 꿰매놓아도 나중에 보면 또 솜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꿰맨 곳에 조그마한 틈이라도 보이면 불굴의 의지로 뚫어내는 룽지였다.
동생방에는 인형 뽑기로 뽑은 인형이 많이 있는데, 환기 좀 한다고 동생네 방문을 열어두면 룽지는 어느새 들어가서 기웃거리다가 맘에 드는 인형을 하나 물어오곤 했었다. 심지어 자기 덩치랑 맞먹는 큰 인형을 쫄래쫄래 물고 와서는 소파계단을 못 올라가서 낑낑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귀여웠다. 혼자 힘으로 인형 꺼내오는 걸 성공해서 당당한 와중에 나한테 뺏길까 봐 슬금슬금 눈치도 보이고, 그래도 힘들게 꺼내왔으니 소파 위에 올라가서 물고 뜯고 즐기기는 해야겠는데 인형이 자기 몸보다 더 커서 아무리 애를 써도 올라가지는 못 하겠고.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애기다운 감정이 겉으로 다 드러나는 솔직한 룽지였다.
룽지가 원체 무언가를 물어뜯으면서 노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빨이 나면서 입 안이 간지럽고 불편해서 뭘 자꾸 씹어대는 그런 시기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찾아보니 그런 강아지들을 위한 물건이 또 있더라. 강아지가 앞발로 딱 잡고 이빨로 마음껏 씹어댈 수 있는 커피나무 스틱이라는 게 있었다.
나무니까 씹다가 찔려서 다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커피나무는 일반 나무와는 다르게 갈라져도 뾰족하게 갈라지지 않아서 가지고 놀다가 삼켜도 안전하다더라. 근데 부서진 조각들을 보면 아예 날카롭지 않은 건 아니었고, 어느 정도 뾰족한 느낌이 드는 조각도 간혹 있긴 있었다. 부서져 떨어진 조각을 룽지가 가끔 먹기도 했었지만 문제가 생기진 않았었다.
어쨌거나 룽지의 만족도는 100퍼센트였다. 어찌나 많이 물고 뜯었는지 내 다리 위에서 스틱을 가지고 놀고 나면 바지 위에 눈이라도 온 것처럼 나무 부스러기들이 가득했었다. 한 번은 친척누나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룽지가 가지고 놀았던 커피나무 스틱을 보고 얼마나 오래됐으면 이모양이냐고 그랬었는데, 사실 그땐 사준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나도 새삼 놀랐었다. 일주일도 안 됐는데 스틱이 작아지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 샀던 스틱이 금세 몽당연필처럼 작아져서 다른 사이즈로 또 구매했었다.
룽지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고 특히 새로운 것에 큰 흥미를 보이는 편이었다. 그래서 기존의 장난감에 흥미가 떨어졌다 싶을 때마다 새 걸 사주고, 노즈워크도 꾸준히 새로운 방법을 찾아가며 해왔다. 특히나 애가 어릴 땐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주려고 어느정도 자란 요즘보다 더 열심히 알아봤었다.
언젠가 산책에 관한 영상을 보다가 강아지들은 환경에 금방 익숙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산책도 매일 다니는 곳으로만 다니는 것보단 안 다녀본 곳으로도 가보는 등 새로운 경험을 해주는 게 강아지에게 좋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는데, 사실 산책뿐만 아니라 강아지와 함께하는 모든 일상이 그렇지 않을까. 새로운 코스로도 다녀보고, 새로운 장난감도 가지고 놀아보고, 새로운 것도 먹어보고. 우리같은 사람이야 본인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지만 강아지는 우리가 해주는 만큼만 겪으면서 살아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