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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기물개 Jun 04. 2024

06. 강아지와 아파트 적응하기

 배변훈련을 하루 만에 끝냈던 배변천재 룽지가 이사 첫날부터 이불에 오줌을 쌀 정도였으니 환경의 변화가 룽지에게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아 보였다. 이사를 하면 룽지가 새집에 편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왔건만 첫날부터 쌔게 한 대 맞고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배변훈련을 다시 시작하긴 했지만 한동안 룽지는 간간히 이불에 소변을 보곤 했었다.

 소변 문제만 제외하면 룽지는 생각보다 금방 새집에 적응했었다. 이사가 끝나고 공놀이도 실컷 했고 자기 집이나 옆에 깔아 둔 방석을 자기 공간으로 인식하고 거기에 드러누워 있던 걸 보면 어느 정도는 이 공간을 편하게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그저 에너지가 넘치는 어린애여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뒹굴거리면서 놀고 발라당 뒤집어진 채로 잠들고 했던 걸 보면 집이 바뀐 것치곤 꽤나 편하게 지냈던 것 같다.





 이사를 오고 달라진 점들 중 베란다에서 바깥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먼저 체감이 됐었다. 룽지도 처음엔 베란다라는 공간을 낯설어했었다. 슬금슬금 냄새를 맡고 다니다가 창틀을 턱 하니 짚고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을 구경도 하고, 그러다가 나한테 뽈뽈뽈 달려오기도 하고. 적응을 마친 룽지는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아 운치 있게 바깥 구경을 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룽지가 자주 앉는 자리에 룽지 전용 자리를 만들어 주기도 했었다.

 방충망 하나만 믿고 창문을 열어두면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특히 밖에서 강아지 소리가 들린다거나 새로운 소리가 들려오면 룽지는 호다다닥 달려가서 턱 하니 창틀에 앞발을 올린 채 우뚝 서곤 했었다. 하지만 룽지도 거기서 더 나아가면 안 되는 걸 아는지 뛰쳐나가려고 방충망을 긁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여기가 높은 곳이라는 걸 룽지도 인지를 하는 듯했다. 어쩌면 당연한 걸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게 신기했다. 룽지가 아파트 베란다라는 인위적인 공간에서도 높이를 인지한다는 게.

 그런 룽지를 혼자 두고 화장실에 갈 때면 항상 불안했었다. 내가 못 보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래서 어차피 혼자 사는 집이기도 하고 해서 화장실에 갈 때면 문을 열어두곤 했었다. 그랬더니 내가 화장실에 갈 때마다 룽지가 따라와서 쳐다보더라. 그냥 쳐다보고 가면 모르겠는데 내가 일어날 때까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사를 오기 전에도 내가 샤워를 하러 욕실에 가면 내가 벗어놓은 옷가지들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녀석이었으니. 이렇게 한시도 나랑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 귀엽게만 보였다.

 베란다랑 비슷한 맥락에서 신기한 게 하나 더 있었는데, 룽지가 엘리베이터에 금세 적응했던 것도 꽤나 신기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자동차에 탔을 때처럼 애가 불안해할까 봐 걱정했었는데 딱히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별다른 일이 없었고, 타고 내리는 것 모두 순조로웠다. 애초에 아파트라는 공간 자체가 인위적이긴 하지만 내 생각엔 엘리베이터가 가장 인위적인 공간이라 강아지가 느끼기엔 혼란스러울 거라 생각했었는데 왜인지 잘 타고 잘 내리더라.





 내가 외출을 할 때마다 룽지는 현관문을 앞발로 긁으며 울어대곤 했었다. 현관의 폭을 몰라 미리 준비하지 못했던 안전문도 하루빨리 마련하는 게 좋아 보였다. 그런데 안전문을 설치할 곳의 길이를 재다 보니 현관의 구조가 안전문을 설치하면 신발장 문짝 하나를 열 수가 없는 구조였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안전문 없이 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여러 대안을 찾다가 발견한 게 다이소 네트망을 이용해서 직접 안전문을 만드는 방법이었다. 만드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우선 다이소에서 적절한 사이즈의 네트망 여러 개와 네트망들을 연결해 줄 조인트, 그리고 만들어진 안전문을 벽에 걸 수 있게 해 줄 접착형 후크를 구매한다. 그럼 이미 70퍼센트 정도는 끝난 셈이나 다름없다. 문을 설치할 위치에 후크를 붙여주고 네트망을 연결해서 만든 안전문을 후크에 딱 걸어주면 끝. 지나갈 땐 문을 살짝 들어 연 다음 접어서 옆에 세워놓고 닫을 땐 문을 살짝 들어 올려서 후크에 걸어주면 된다.

 네트망 안전문은 내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모양대로 설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네트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고리형 후크를 이용해 각종 물건들을 걸어놓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나는 하네스와 목줄, 리드줄, 비옷, 발수건을 걸어두고 매번 산책을 나가거나 나갔다 들어왔을 때 편하게 사용하고 있다.

 단점이라면 접착 후크를 허술하게 설치할 경우 틈새로 강아지가 비집고 나올 수 있다는 점? 처음엔 이걸 몰라서 후크를 위쪽에 하나만 설치했다가 아래쪽 틈으로 룽지가 밀고 나온 적이 있었다. 다행히 별일은 없었고, 그 일이 있고 나서 접착 후크를 위-가운데-아래 총 세 개를 설치하고 나니까 문이 완전히 튼튼해져서 그 후론 단점이랄 게 딱히 없었다.

 




 이사를 오고 가장 좋았던 부분은 산책이었다. 이전에 살던 곳은 산책을 하기에 좋은 동네가 아니었지만 이사를 오고 나니 산책을 다니기가 너무 좋았다. 단지 조경도 잘 되어 있었고 다른 강아지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동네에 공원이나 산책로처럼 주변에 다닐 만한 곳이 여럿 있었다. 앞으로 룽지랑 살아가기에 꽤 좋은 동네라는 인상을 받았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매일 산책을 나가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점 하나가 하나가 계속 눈에 띄었다. 단지 곳곳에 강아지 대변이 널려 있던 것이었다. 내가 알기론 봉투 들고 다니면서 치우는 것이 강아지를 키우는 데 있어 기본적인 상식이었는데, 내가 생각한 상식과는 다른 현실을 마주하고 나니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이사를 오기 전부터 중고거래를 통해 룽지랑 산책할 때 메고 다닐 만한 작은 가방을 구해서 거기에 담고 다닐 배변봉투랑 포켓티슈, 물티슈를 미리 구비해 뒀었다. 앞으로 룽지랑 산책을 다닐 생각을 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나름의 산책키트를 준비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웬걸, 이사를 오고 나니 단지가 그냥 똥밭이었다. 화단이나 풀가에 있는 똥을 안 치우는 건 그렇다 쳐도 사람들 다니는 길 한복판에 있는 똥을 안 치우고 그냥 가는 건 정말 심각하지 않나. 너무 이상하다고 느껴져서 아파트에 살면서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친척누나에게 혹시 거기도 대변을 안 치우는 게 기본이냐고 물어봤었는데 그렇단다. 대변을 수거하고 다녀도 안 치우고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억울하게 욕을 먹은 적도 있단다.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비정상인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그냥 할 거 하면서 살아야지. 대변을 수거하면서 룽지의 대변상태를 통해 애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도 하고.

 아무튼 그냥 그러고 살다 보니 민원이 발생했는지 관리사무소에서 강아지 대변 수거 관련해서 안내문을 여기저기 붙여놓았고 머지않아 단지가 깨끗해졌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또 안 치우고 다니는 사람이 생기고, 하나둘 그러다 보면 너도 나도 안 치우고 다니고, 결국엔 또 똥밭이 돼서 안내문이 깔리고. 아파트에 살다 보니 이게 계속 반복되는 것 같다.





 산책을 하면서 발견한 문제점이 하나 더 있었다. 룽지가 냄새를 맡으면서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가로등이나 나무에 리드줄이 걸릴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면 룽지는 잔뜩 겁을 먹고 몸을 움츠리면서 귀는 뒤로 넘어간 채로 굳어버리곤 했었다. 킁킁 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갑자기 웬 커다란 기둥이 자기를 잡아당긴다고 생각하는 건지. 돌아서 나오면 되는 그 간단한 걸 못 했었다.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는 룽지한텐 그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내가 줄을 가로등이나 나무 뒤로 넘겨서 뺐었는데, 그러다 보니 룽지가 계속 걸리기만 하고 스스로 나오지를 못 했었다. 줄이 걸려도 혼자 빠져나올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었다. 그래서 줄이 어딘가에 걸리면 일부러 바로 꺼내주지 않았다. 매번 내가 꺼내주다 보면 애가 학습이 안 될 테니까. 줄이 어딘가에 걸린다는 걸 인지하고 스스로 나오도록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룽지는 줄이 걸릴 때마다 얼어버린 채 나만 바라봐서 결국 내가 개입해서 도움을 줘야 했었다.

 리드줄이 기둥에 걸리면 그냥 그대로 주욱 줄을 당기기도 했었는데 애가 공포심만 더 느는 것 같고 별로인 것 같았다. 내가 당기는 힘에 끌려오니까 룽지 입장에서는 기둥에 끌려간다고 느낄 수도 있을까 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룽지가 탁 걸려서 멈춰있을 때 내가 줄이 걸린 반대쪽으로 이동함으로써 룽지가 내쪽으로 스스로 걸어서 나오게 하는 방법이었다. 물론 이것도 초반엔 쉽지 않았다. 내가 이동하면 줄이 느슨해지니까 룽지가 긴장을 풀고 나한테 오면서 빠져나올 거라 예상했었지만, 겁을 먹은 룽지가 무작정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바람에 줄이 계속 팽팽해진 채로 빠져나오지를 못 했었다.



 왼쪽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내가 파란 화살표 방향으로 움직이면 줄이 느슨해져서 룽지가 빨간 화살표처럼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내가 다 이동하고 나서 룽지가 나오는 게 아니라 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마자 바로 나를 따라오는 바람에 오른쪽 그림처럼 줄이 걸린 채 뱅그르르 돌기만 했었다.

 '기다려'라고 말한 다음에 이동해서 나오라고도 해보고, 룽지를 기둥 뒤로 밀어서 스스로 걸어 나오게도 해보고, 하여튼 별의별 방법을 다 시도했었다. 이게 뭐라고. 어쨌거나 계속 그러다 보니 걸어가다가 줄이 기둥 같은 것에 걸리겠다 싶으면 바로 내쪽으로 돌아 나와서 피해 가더라. 시간이 꽤 걸리긴 했지만 이렇게 룽지가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이 너무 고맙고 대견했다.





 룽지는 기초 예방접종이 다 끝나지 않은 채로 이사를 왔으니 새로운 병원에서 접종을 이어가야 했었다. 다행히 집에서 가까운 곳에 동물병원이 몇 군데 있었서 괜찮아 보이는 곳으로 갔었다. 그런데 전에 다녔던 병원에서는 진료를 보던 곳에서 바로 주사를 놨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새로 다니기 시작한 병원에서는 강아지를 처치실이라는 곳으로 데려가서 주사를 놓는다더라.

 그래서 병원 측에서 룽지를 처치실로 데려가려는데 룽지가 경계심이 원체 많은 성격이라 안 가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입질로 거부의사까지 표현하는 바람에 결국 견생 처음으로 넥카라까지 착용했었다. 접종을 맞고 나온 룽지의 모습이 그렇게 처량해 보일 수가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덥석 들고 가서 주사를 놓는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전에는 아픈 티도 안 내고 주사를 곧잘 맞았었던 터라 이런 것을 생각해 보지도 못했었는데, 앞으로 남은 접종도 계속 이런 식으로 진행될 거라면 뭔가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음 접종 땐 구비해 둔 넥카라를 집에서부터 미리 착용한 채로 병원에 갔었다. 룽지가 훗날 넥카라를 착용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적응도 할 겸 원활하게 접종을 맞길 바라는 마음에 그렇게 했었는데 결과적으로 넥카라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었다. 다른 방법을 고안해야만 했었다.

 여자친구와 상의 끝에 내린 결론은 처치실에서 주사를 맞지 않고 그냥 진료를 보는 공간에서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병원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했고, 다행히 새로 찾은 병원에서는 보호자가 있는 진료실에서 주사를 맞을 수 있었다. 그렇게 룽지의 마지막 접종은 진료실에서 내가 룽지를 붙잡은 상태에서 진행되었고, 놀랍게도 아무런 문제 없이 끝났다.

 사실 굉장히 떨렸었다. 룽지가 이전 접종을 그렇게 공포에 떨며 맞았던 터라 '이제 주사를 무서워하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에 주사를 맞을 때 발버둥 치거나 해서 혹여나 다치지는 않을까 했었는데, 내가 잡고 있을 때도 그냥 가만히 있었고 주사를 맞을 때도 가만히 있었다. 놀라운 결과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룽지는 낯선 사람이 잡아가서 보호자인 나랑 떨어지는 상황 자체가 가장 무서웠던 게 아닐까 싶다. 강아지에게 보호자라는 존재는 그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걸까.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5월은 룽지도 나도 둘 다 처음 겪어보는 환경에 적응하며 행복하게 지냈었다. 룽지는 집 안팎에서 에너지가 넘쳐서 산책할 때는 이리저리 킁킁거리며 탐색하기 바쁘고, 집 안에서는 담요나 방석 같은 걸 이리저리 휘두르거나 나한테 놀아달라고 달려들곤 했었다. 이불에 룽지 털이 많이 붙어서 청소 좀 하려고 돌돌이로 문지르고 있으면 그것도 무슨 놀이라고 생각하는지 엄청 흥분해서 달려들기도 했었다.

 단지에 잔디가 많았는데 룽지는 풀밭의 촉감이 마음에 들었는지 엄청 좋아하며 뒹굴거리곤 했었다. 그렇게 풀을 만끽하며 즐거워하는 룽지를 볼 때면 정말 어린아이 같았다. 나뭇가지나 솔방울 같은 걸 가지고 놀기도 했는데, 내가 빼앗으려 하면 룽지는 어떻게든 안 뺏기려고 으르릉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내 손을 피하곤 했었다. 그래도 소유욕이 심하지는 않아서 뺏기고 나면 쩝쩝거리면서 아쉬워하기만 하지 내놓으라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는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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