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by 유원


글을 읽고 쓰지 않는 날들이 길어진다. 흘러가는 시간을 눌러 매만지며 애써 버틴다. 쉽게 무상해지는 날들을 감각하기 위해서. 시간선은 하나이고 그 위를 물살을 헤치듯 나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하나의 선이 아니라 다발일지도 모른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가 조각나고 끊어졌다가 문득 연결된다. 어떤 때는 그걸 지극히 예민하게 감지해내고, 어떤 때는 관성적으로 못 본 척한다. 그러면 현기증처럼 눈앞이 뭉개지고 모든 게 희미해진다. 그게 내가 오랫동안 바랐던 상태인건지, 그냥 도망쳐 온 것인지 이젠 모르겠다.

사는 게 의미없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노동이 오로지 생존만을 위한 밥벌이로 느껴지고, 그게 내 의미인 것 같은 순간에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사는 것은 어쩐지 좀 이상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생각을 흘려보내면서 세상을 흘려보낸다. 읽고 쓴다는 것은 붙잡는다는 것이다. 나는 꽤 오랫동안 붙잡기 힘든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대부분 행복하지만 그건 대부분 견디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견디는 사람으로 살아온 것 같다. 견디고 있으면 붙잡기가 힘이 든다. 하지만 붙잡아야만 살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진실.

사실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지옥을 뜀박질하고 있었을수도 있다. 세상이, 삶이, 사람이 너무 메말라서, 차가워서 나는 매일 비명을 지르고 싶다. 비명을 지르면서 뛰어다니고 싶다. 그럼에도 견딘다. 뭐 다른 것을 붙잡아 보질 못해서, 사랑하고도 증오하는 비현실의 끄트머리를 붙잡으며 견딘다. 그것마저도 벼랑같은 순간들에는 내 안에 남은 한낱 작은 불씨를 매만지며 버틴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무언가가 변화되거나 머문다. 마모되거나 부풀어오른다. 천천히 소멸한다.

나는 항상 현실의 인간이 무언가 큰 상실을 겪고도 멀쩡한 얼굴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그게 나라는 사실도. 그걸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그또한 나라는 사실도. 하지만 그걸 쓰는 사람도, 겪는 사람도 그 상실이 무언지 알까? 확실한 건 난 모른다. 모든 사람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채 사는걸까?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다면 모르는걸까? 정말로 잃어버린 것이 아닌, 그냥 감정의 상태인걸까? 이를테면, 공허.

무섭다. 구멍 뚫린 자리와 그 구멍으로 모래처럼 흘러 사라지는 시간을 더듬는 일이. 아득한 절벽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처럼. 삶은 이 감각을 절대 내게서 앗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기록해야만 하는 사람일까? 꺼트리고, 다시 바람을 불어넣고, 다시 짓밟아 끄기를 반복했던 작은 불티에 나를 전부 태워야 할까? 재가 될 때까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너를 잃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