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잃고

by 유원


열아홉 살 먹은 나의 개를 잃은 지 한 달 하고도 며칠이 더 지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내 생의 절반 이상을 개와 함께 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개가 떠나고 나서야. 우린 새삼 오래된 가족이었고 개는 나의 털 난 여동생이나 다름없었다. 주어진 생의 시간이 한참은 다르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우리의 시간이 쏜살같이 여기까지 달려왔다.


작년 즈음부터 엄마와 나는 외면했던 진실을 조금씩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었다. 개가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되었으니, 슬슬 이별을 대비하자면서. 그런데 아무리 마음먹어도 대비가 안 되는 것이 이별이라는 사실을 그땐 몰랐다. 그래, 이 정도면 오래 살았으니까. 행복한 개로 만들어 주기 위해 우리도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많이 사랑해 줬으니까. 할 수 있는 건 그런 류의 자기 위로뿐이었다. 일종의 고통 유예에 가까운.


올해 1월, 개는 아프기 시작했고 심장과 폐에 이상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살 날이 길어봤자 3개월 남았다는 개를 앞에 두고 엄마와 아이처럼 울었다. 개는 한동안 그렇게 좋아하던 고기마저 먹지 않았고 나는 하루에 두 번 개를 유모차에 태워 병원에 데려갔다. 수액을 맞히고 돌아오는 길에 개는 흐릿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개를 보면서 우리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묵묵히 체감했다.


개는 꼭 3개월을 채우고 죽었다. 마지막 사흘간 개는 고통스러워했고 마지막 날에는 안락사를 고민할 정도였다. 개는 아픈 몸으로도 일어서서 볼일을 보기 위해 쿠션에서 자꾸만 일어섰다. 그러면 자꾸만 발작이 찾아왔고 다시 쿠션에 뉘어주면 숨을 헐떡이며 누워 있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숨이 멈추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집에서, 우리가 곁을 지킨 자리에서.


고통은 멎길 기다린다고 멎는 것도 아니며 느끼고 싶다고 찾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준비했던 이별이었지만 고통이 다발적으로 밀려들어왔다. 개는 평소에 자는 것처럼 쿠션에 누워 있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개의 몸을 흔들었다. 흔들어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개가 다시 되살아난들 거기엔 고통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엄마와 나 또한 아픈 개를 돌보느라 많이 지쳐 있었으니까.


개가 젊었던 시절, 자주 갔던 하천가에 개의 유골함을 안고 찾아갔다. 오래전 개가 앉아서 시원한 바람을 맞던 벤치 주변에는 이름 모를 노란 꽃이 그대로였다. 개는 그때 우리를 앞질러 갈 정도로 건강했다. 튼튼한 네 다리, 붉고 깨끗한 혀와 선명한 검은 눈빛으로 이 길에서 저 길의 끝까지 걸었었다. 이제 개는 없고 그런 개를 기억하는 나와 엄마만 있다.


개는 계단을 오를 때면 멈추는 방법을 몰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올라가곤 했다.

개가 자주 오르던 뒷 산 계단 근처에 유골을 묻었다.


개가 죽고 내 생의 한 시절이 막을 내린 것 같다. 이제 나는 개와 함께 했던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개가 없이 살아야 한다.


나를 깊이 모르는 사람들은 개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아서 구태여 말해주지 않았다. 개가 죽고 난 다음 날, 친구들을 만나서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그다음 날, 중요한 자리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그 고통을 작게 만들기 위해 무던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하면서.


개는 없는데 내 생은 무심히 흘러간다. 개와 함께했던 시절로부터 시시각각 멀어진다. 세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개는 이제 사진첩의 무수한 사진과 영상, 그리고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개는 기억 속에 살아 있지 않고 그냥 내 기억 속에 갇혀있다. 기억에만 의지해서 개를 봐야 한다는 사실이 이상하다. 여전히 개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건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사람들은 죽은 이가 기억 속에 살아있다는 거짓말을 하는 걸까. 기억은 영원하지 않고 이제 점점 더 빛바래갈 텐데. 개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럼 누가 기억할까. 개의 흔적은 이제 어디에 남는 걸까.


개가 죽고 어떤 소설가의 에세이에 죽은 반려견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는 그 개가 자신에게 남기고 간 것이 사랑이라고 했다. 나는 그걸 읽고도 위로가 되지 않아 조금 실망했다. 나의 개는 나에게 사랑을 남겼던가.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단어가 낯설었다. 나는 개를 사랑했고 개도 나를 사랑했지만 우리의 사랑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저 서로에게 서로의 존재가 피부처럼 당연한 종류의 사랑이었다. 없으면 이상하고 있는 것이 당연한 사랑이었다.


지금 와서야 나는 소설가의 의도를 눈치챈다. 개가 나에게 주었던 것들이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너무 오래 함께해서 몰랐던 사실들. 개는 나를 사랑했고 나는 개를 사랑했다. 그건 생각보다 눈부신 일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정한다. 사실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인정하는 순간 사랑의 부재가 너무도 검고 어두우므로. 하지만 내게도 개가 남긴 것들이 그저 찬란한 기억들이고, 나는 그 기억들로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으리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올까. 개가 나에게 행복을 주었으므로 그 자체만으로도 떠올리면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올까.


이제 개의 육체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여전히 개를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상태에서도.


얼마 전 선잠에서 나는 여전히 거실에 개가 잠들어있다고 착각했고, 잠에서 깨어나서야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개가 있는 시간으로, 단 10분이라도 돌아갈 수 있으면 무엇이라도 할 것 같다. 그 털과 등을 만지고 몸을 끌어안고 눈을 맞추고 싶다. 이제는 누구에게도 부를 수 없는 이름을 혀로 발음해보고 싶다. 내 손바닥은 네 털의 감촉과 머리와 등의 모양을 전부 기억하는데.


몇 십 년 뒤, 내가 죽으면 넌 날 기억하고 마중 나와줄까.


그때까지 난 너를 기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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