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두고 온 세계, 하루키 월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고

by 유원



하루키에 관련한 내 최초의 기억은 <상실의 시대>이다. 지금은 원제목인 <노르웨이의 숲>으로 재출간되며 핑크색과 녹색이 섞인 아름다운 표지로 탈바꿈되었지만, 우리 집에 있는 건 다소 촌스러운 표지의 <상실의 시대> 초판본이다. 그걸 중학교 3학년 때였나 처음 읽었다.


또래보다 독서 경험이 많은 편이었지만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방에서 뒹굴대며 먼지가 낀 책장을 처음 넘겼고 그야말로 책 속으로 무섭게 흡수되는 감각을 느꼈다. 책에서 고개를 드니 현실이 둔탁하게 밀려왔고 그제야 시간이 흘러갔다. <상실의 시대> 속의 달콤 씁쓸한 정서를 알기에는 좀 어린 나이었으니 무엇이 나의 마음을 건드렸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소설에 분명히 존재하는 힘, 그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때부터 하루키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동네 구립도서관에 하루키의 책들이 꽂혀있던 서가를 기억한다. 하나같이 낡고 너덜너덜해서 테이프로 덕지덕지 감아진, 손에 들면 손때 묻은 책장이 저절로 후루룩 넘어가는 책들. 그야말로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해변의 카프카>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까지 읽고 나서 깨달았다. 어느새 그의 팬이 되어버렸다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이전까지 특정한 작가의 소설에 파고든다거나 하진 않았으니 그런 경험은 하루키가 처음이었다. 두꺼운 양장본이 세 권인 <1Q84>까지 꽂자 어느새 책꽂이의 한 칸이 하루키의 책들로 채워졌다. (지금도 내 방에서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작가는 하루키다.) 신기하게도 그 두꺼운 벽돌책들을 독파하는 내내 힘겹다거나 지루한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내게 하루키는 그런 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성인이 되어서는 오히려 그의 책을 읽는 일이 줄었다. 웬만한 소설들은 다 읽기도 했고, (하루키는 소설만큼이나 에세이도 유명하지만 난 그의 에세이는 별로 읽지 않았다.) 뭐랄까, 읽을 만큼 읽었다, 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신작이 나오면 거의 빼놓지 않고 읽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부터 <기사단장 이야기>, <여자 없는 남자들> 까지. 가장 최근에 나온 단편집인 <일인칭 단수> 는 읽지 않았다. 나는 하루키의 단편보다 장편을 훨씬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얼마 전에 <태엽 감는 새>를 읽고 알게 되었다.


하루키의 소설을 섭렵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읽지 않은 소설이 <태엽 감는 새>였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94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하루키의 문학 세계를 대표한다고 알려지기도 한 작품이다. 중학생 시절 도서관 책장에도 꽂혀 있었는데 독보적으로 너덜너덜했고 늘 1권이 없던 책이었다. 무슨 연유에선가 그 소설만 읽지 않은 채로 성인이 되었다. 어떤 작품은 그에 맞는 시기에 찾아온다고 생각하는 입장으로서, 오랜 기억 속에 묻혀있던 그 책을 몇 달 전 읽기 시작했다. 현실이 강렬하게 휘발되는 감각, 소설 속으로 무섭게 빠져들며 나는 드디어 알 것 같았다. 내가 왜 하루키를 좋아하는지.


하루키를 읽는 것은 내게 독서라기보다 하나의 체험에 가깝다. 그의 책을 읽을 때는 밑줄을 별로 긋지 않는다. 밑줄 그을 만한 구절이 없어서라기보다 그냥 그럴 틈이 없다. 영화에 초집중하면 굳이 일시정지를 하지 않는 것처럼, 밑줄을 그으며 문장을 곱씹는 시간조차 몰입을 방해한다고 해야 하나. 그냥 화자와 함께 그 세계를 겪어내는 것, 기이한 변화들을 받아들이며 소설 속의 시간을 함께 헤쳐나가는 것이 전부다. 세밀하고 적확한 표현의 문장은 내 안에 그 세계를 확고히 만드는 하나의 발판이 된다. 활자와 나 사이의 여백은 상상으로 쉼 없이 메워진다. 단편소설이 수려하게 엮어진 조각보 같다면 장편소설은 하나의 세계이다. 특히나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더욱 그렇다.


반박할 수 없이, 그가 만든 세계와 인물은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책장을 덮고 현실로 돌아와 살다 보면 자꾸만 떠오른다. 그래서 그 고양이는 어디로 간 거지? 주인공이 그곳에 내려가면서 읽기를 멈추었는데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려나?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인물들이 숨죽여 나를 기다리고만 있는 것 같다. 내가 읽기 시작하면 그제야 살아 움직이는 세계. 내가 두고 왔고 다시 돌아갈 세계.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었다. 그야말로 하루키 다운 소설이었다. 열일곱 살의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남자와, 첫사랑인 소녀와 함께 만든 벽으로 둘러 싸인 환상 속 도시. 비현실적이면서도 쓸쓸한 세계, 그 안에서 각자 무언가를 짊어지고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인물들. 묘사와 인물들의 대화는 지독히 낭만적인데, 그건 절대 의도된 낭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름다웠다. 그들은 상처받아도 다시 누군가의 품에 안기기를 택하고 아득한 슬픔을 겪어도 자기만의 살 길을 찾아낸다. 조난당하는 배 안에서도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사력을 당해 신호를 보낸다. 그림자가 없는 세계에서 기어코 그림자가 있는 세계로 돌아온다. 고통스러울지라도 다시 사랑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지리멸렬한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서. 어쩌면 하루키는 늘 모든 작품에서 그런 것들을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그런 그의 글들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던가.


내 안에도 벽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단각수가 사는 도시가 있다. 나는 그 세계를, 그림자가 있거나 없는 그 세계를 내 마음속 어딘가에 두고 오기로 했다. 언제든지 갈 수 있도록.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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