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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일기 Sep 10. 2020

간절함이 인생을 만든다.

인생은 1인치 차이

인생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다. 풀기 어려운 퍼즐 같기도 하고, 잔뜩 꼬여있는 실타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때에는 아무리 그것을 풀려고 전전긍긍해도 풀리지 않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꼬여 있던 것들이 풀릴 때도 있다. 내가 잘해서 잘 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잘한다고 잘 되는게 아닌것 같기도, 내가 못해서 안된 것 같기도 한데, 또 내가 못했다고 안되기만 하지도 않는다. 인생은, 이처럼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그런 점이 삶의 또다른 묘미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아직 인생이 무엇이다, 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만큼의 경험을 쌓지는 못했다. 나의 10대 시절은 늘 잘나가는 다른 친구들과의 비교로 위축되어 있었고, 20대엔 모든 것이 안개처럼 뿌옇기만 해서 앞이 보이지를 않았다. 30대가 되어서야 나는 내 삶의 목표를 찾아 정진하기 시작했지만, 눈부신 성공보다는 수없는 실패와 좌절, 눈물이 30대 전반기를 가득 채웠다. 늘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들의 등을 보면서, 나는 수없이 마음 아파하고 울었다. 왜 나는 이정도 밖에 하지 못하는 걸까, 라는 생각은, 저만치 앞서가는 그들은 애초에 나와는 다른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지점에 이르자 "나는 애초에 안되는 사람인걸까?"라는 수치스러운 물음을 내 마음속에 담아두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어차피 안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실컷 노력을 하다가도 어느 지점에서 멈춰버리는 나쁜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일들이, 다 된 것 같다가도 내 손 밖으로 이내 빠져나가버리는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나의 머릿속에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자리잡기 시작했고, 나는 그렇게 패배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심지어 나는 내가 패배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리고 4년 전 봄, 이런 나의 생각을 180도 바꾸어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당시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었다. 그 해, 학교에서 공고가 하나 떴는데, 앞으로 3년간 전액 장학금과 연구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고시원에 살며 학자금대출로 근근히 생활하고 있었던 나는,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교수님 몇 분으로부터 추천서를 받고, 앞으로의 연구계획서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문턱은 한없이 높아만 보였다. 하지만 돈이 무척이나 필요했기에 용기를 내어 교수님 한 분께 추천서를 부탁하기 위해 연구실에 갔다. 그 교수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추천서와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이든 도와주겠노라고, 하지만 결코 장학금을 따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사람의 생각구조라는 것이 참 이상한게, 지금이라면 "어떤 것이든 도와주겠노라"는 말에 집중했을텐데, 당시의 나는 "장학금을 따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크게 동요했다. 교수님은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덧붙인 말이었는데, 나는 그 한마디를 내가 포기해도 되는 이유로 삼아버렸다. 준비 서류도 너무 많고, 교수님들께 일일이 찾아가 부탁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만 같았고, 내 상황을 여러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결국 나는 신청 준비를 하던 도중에 서류 제출 자체를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장학금 신청 서류 제출 하루 전날, 우연히 대학원 동기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아무래도 장학금 신청 기회를 포기하기가 아까워서 신청 마감 하루 전인 그 날 밤을 새워서 서류를 제출하려는 작정으로, 급히 교수님을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 보통은 몇달씩 준비하는 서류인데, 그는 그저 후회를 남기지 않게 한 번 해보는 것이라고 말했고, 내가 생각해도 그렇게 급하게 준비한 일이 도저히 잘 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라고, 응원을 해주고 헤어졌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한 달 후, 그가 장학생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준비가 많이 부족했던 터라 처음엔 떨어졌었는데 장학금을 포기한 사람이 있어 결원이 생기는 바람에 그가 뽑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 친구를 축하해주었다. 그가 마지막 날, 하루를 남겨두고 얼마나 간절하게 뛰어다녔는지 직접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 스스로가 무척이나 부끄럽고 원망스러웠다. 그저 끝까지 해보기만 하면 되었을 일을, 미리부터 안된다고 생각하고 애초에 기회 자체를 날려버린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 날 나는 다짐했다. 앞으로 세상을 살면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미리부터 포기하지 말고, 일단 되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2년 후 봄, 나는 또다시 비슷한 기로에 서게 되었다. 그 날 나는 오랫동안 열심히 준비했던 시험 탈락 소식을 듣고 밤새 울었다. 바로 다음날 아침에는, 가고 싶었던 회사의 필기시험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날 내내 정신적인 충격으로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던 나는, 어차피 도저히 될 것 같지도 않은 필기시험에 가야할까를 망설였다. 1년 내내 시험을 준비해도 엄청난 경쟁률 때문에 떨어지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는데, 안그래도 비참한 기분을 더 비참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내 마음 한켠에서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밤새 침대에 쓰려져 울던 내 몸을 일으켜 새벽녘에 집을 나섰다. 그리고, 도저히 나같은 사람이 붙을 것 같지 않던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그 이후로도 두 번의 면접을 거쳐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나는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인생에서 잘 되는 것과 잘 안되는 것의 차이는, 간절함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도무지 될 것 같지도 않을 때, 이제 그만 포기하고 놔버리고 싶을 때, 런닝머신에서 58분을 뛰고 숨이 이렇게 턱까지 차오르는데 굳이 2분을 더 채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그 때 조금 더 버티고 노력했을 때, 남들과 다른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내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불가능할 것 같고, 안될 것 같은 일이라도, 일단 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고 알아본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렇게 끝까지 노력을 했을 때 아직까지 안되는 일은 없었다. 인생은 1인치의 차이라는 그 진실을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마주했지만, 적어도 앞으로의 인생은 이전과는 달라질 것이라는 사실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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