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한국인, 미국에 변호사시험을 보러 가다
30년 넘게 앓아온 미국병, 드디어 치유할 기회?!
나는 작년까지 미국 땅을 밟아본 적도 없고, 조금만 느끼한 음식을 먹어도 금세 김치 생각이 간절해지는, 어쩔 수 없는 토종 한국인이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고, 미국변호사에 관심도 많았다. 중학교 때 우연히 접하게 된 앨리 맥빌(Alley Mcbeal) *부터 굿와이프(The Good Wife)** 까지, 미국드라마를 보면서 미국변호사에 대한 환상을 키워나가기도 했다.
* 1997년 9월부터 2002년 5월까지 미국 Fox사에서 방영한 법정드라마를 표방한 연애물. 주인공인 변호사들이 허구헌날 연애하고 저녁에 바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춘다.
** 2009년 9월부터 2016년 5월까지 미국 CBS에서 방영한 법정드라마로, 정치인 남편 내조를 위해 장롱면허로만 보유하던 변호사 자격증을 15년만에 다시 꺼내든 어느 여성변호사의 이야기. 우리나라에서도 리메이크된 바 있다.
2020년, 시작을 위한 시작
기회가 없었다고 할수는 없지만 금전적 문제로 늘 마음속 한켠에만 꿈을 담아두고 있었다. 내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2020년 5월 초, 나는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한국에서도 미국변호사를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리하여 2020년 9월부터 미국변호사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데 필요한 학점과 학위를 취득하기 위한 기나긴 여정이 시작됐다. 주중에는 보통 저녁 7시 40분쯤부터 11시까지, 주말은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거의 종일 수업을 들어야 하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매 수업때마다 읽어가야 하는 과제의 양이 꽤 많았기 때문에 과제 준비에도 어느정도는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그 사이 야근도 꽤 많았고, 박사과정 수업 참석과 발표도 계속되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고군분투한 끝에 올해 봄, 드디어 학위 과정을 마쳤고, 필요한 학점도 모두 취득하게 되었다. 그 사이 한국에서 잠시 열렸던 MPRE 에도 응시해서 필요한 점수를 취득해둔 상태였고, 이제 정말 시험을 보러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정이 아무리 녹록치 않았다고 하더라도, 시험 응시자격을 얻는 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진짜 여정은 지금부터인 것이다.
학점 취득을 모두 마치고, 업무와 관련한 자격증을 취득하고, 한동안 야근을 반복하며 업무에 집중하다보니, 어느새 4월이 되었다. 원래 목표였던 2023년 2월 시험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포기했었는데, 7월 시험도 넘기게 되면 끝도 없이 미루다 시험을 영영 보러갈 수 없을것 같았다.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2023년 7월 시험은 꼭 보러가겠다고 결심했고,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산넘어 산이었던 응시원서 접수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응시원서를 접수해야 하는데, 이 과정도 만만치 않다. 여지껏 수많은 크고 작은 시험들을 치렀지만, 한국에선 아무리 큰 시험이라도 사진과 응시료만 있으면 5분 내 접수가 가능하다. 이런 한국의 시스템을 생각하고 미국변호사 시험 응시원서를 접수하려고 했다가는 엄청난 좌절감을 경험할 수 있다.
일단 졸업증명서, 학점취득 증명서 등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적어도 8가지 이상이다. 이 중 일부 서류는 공증도 받아야 한다.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공증을 받고 하는데 꽤 많은 품이 든다.
하지만 응시원서를 접수하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Character & Fitness 라고 하는, 응시자의 신원 및 도덕성 등을 검증하는 절차다. 응시자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회사나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지, 여러 페이지에 걸쳐 상세히 묻고 또 묻는다.
단순히 응시자의 답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각 주마다 요구하는 바가 다르지만, 내가 응시한 주에서는 레퍼런스를 해줄 5명의 지인과 1명의 직장 동료 또는 상사를 입력해야 한다. 또한, 가급적 5년 이상 알고지낸 사람들을 기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추후 이 분들에게 직접 응시자가 답한 내용이 진실인지 여부를 확인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바쁜 시간을 쪼개어 레퍼런스*를 해준 분들께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새삼 인생이 혼자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다시한번 절실히 느꼈다.
* 지인이나 직장상사, 동료의 추천을 받는 것
검증절차가 이렇게 모두 마무리 되면 정말 좋은데, 추가로 소명하라는 요구를 따로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도 역시 추가 소명 요구를 받았다. 지난 10년간의 나의 활동을 기재하는 부분에서 "대학원에 다니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라고 기재했는데,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부분에 대해서, 고용주를 기재하는 등 추가로 소명을 제출하라는 요구였다.
혹시라도 그들이 원하는 만큼 소명하지 못하면 시험을 못보러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대학원 교수님, 동기분들, 그리고 미국변호사분들로부터 대응방법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고, 감사하게도 예전에 다녔던 대학원 동기와 당시 가르쳤던 학생 중 1명이 기꺼이 레퍼런스를 해주겠다고 해서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드디어 출국
이렇게 Character & Fitness 와 함께 응시원서 접수 절차가 끝나고 나니, 어느덧 7월이었다. 4월에 시험 보러갈 결심을 하고 원서접수를 한 뒤 꾸준히 공부하고자 애썼지만, 한동안은 업무에 쏠린 나의 집중력과 컨디션 난조로 공부를 거의 하지 못했다. 이래저래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려 애쓰다보니 어느덧 출국일이 되었다.
비행편이 시험 3일 전 아침 10시경이어서 이른 새벽 집에서 나왔다. 심지어 가방도 미리 챙겨놓지 못해서, 출국 전날 저녁부터 대충 챙기다 잠들어버렸다.
하지만 평소 위염과 두통을 달고 살기에, 비상약 만큼은 확실히 챙겨두었다.
여차저차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출발. 여행 경험이 없고, 잘 모르는데다 무조건 돈을 아끼려다보니 경유하는 비행편을 타게 되었고, 경유지에서 기다리는 시간 포함, 비행시간이 거의 꼬박 하루였다. 안그래도 야근, 새로운 업무 등으로 잔뜩 피곤과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최악의 선택이었던것 같다.
무엇보다 스스로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상태라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어서, 마음속 부담이 상당했다. 가는 비행기에서 편히 쉬기가 어려워서 아이패드에 저장해 둔 공부 내용들을 보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차라리 이 때 잠을 충분히 자두는게 더 나았을것 같다.
비행기를 탔는데 옆자리 미국인 부부와 인사를 하게되었는데, 여행을 가느냐고 물어서 시험을 보러 간다고 했더니, 한국에서 태어나고 공부한 학생이 미국에 변호사시험을 보러 올수 있느냐며 무척 신기해했다. 생전 처음 보는 남인데도 나에게 진심으로 잘되길 바란다며 응원을 해주었다. 이렇게 응원까지 받으니, 15시간의 비행동안 맘껏 쉬기가 왠지 부담스러웠다.
잘 들어오지 않는 책 내용을 구겨 넣다가 또 졸다가, 꼬박 하루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짠내나는 호텔 생활
공항에서 짐을 찾아 택시를 타고 호텔로 왔다. 생각보다 호텔 상태가 훨씬 좋았고, 무엇보다 큰 책상이 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근처에 공부할만한 곳이 따로 없어서 숙소에서 공부를 해야 했는데, 어두운 조명은 미리 챙겨간 스탠드로 해결할 수 있었고, 호텔방이 기대했던 것보다 넓고 쾌적해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역시 치솟는 물가를 감당하지 못해 Whole Food Market 에서 산 샐러드와 한국에서 챙겨온 컵라면으로 체류기간 대부분을 때웠다. 밥 한끼 먹는데 너무 비싸서 도저히 엄두가 안났다. 돌아와서 계산해보니 숙박비를 제외한 체류비(택시비와 식비)가 7일간 딱 100만원 정도 들었다.
컵라면 물을 끓일 전기포트도 없어서, 커피 전용 포트를 이용해서 커피맛(?)나는 물을 받아 끓여먹었다. 한국에서는 자주 먹지 않는 컵라면인데, 이상하게 미국에서는 컵라면이 먹고 싶었다. 극도로 짜거나 단 미국 음식에 적응하지 못해서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Whole Food Market 도 마냥 싸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식당이나 배달을 시켜 먹는것보다는 훨씬 저렴했다. 위 사진처럼 상자 가득 담았을 때 20달러 정도였다.
24시간동안 비행과 환승의 여파로 피곤했던 데다 서울과 정반대의 시간대로 가니 도저히 적응하기 어려웠던 시차 때문에 시시때때로 올라오는 수면욕을 견디느라 식욕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졌다. 며칠간 허기를 채우는 수준으로만 식사를 때웠다.
시험장으로
시험을 보러 가는 아침, 나는 긴장해서 새벽부터 서둘러 짐을 쌌다. 변호사시험위원회에서 허용한 물품만 반입할 수 있었고, 아래 그림과 같이 필기도구, 마스크를 포함한 모든 물품을 지퍼백에 담아야 했다.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간식은 허용해줘서, 하리보와 초콜릿바를 따로 챙겼다.
변호사시험위원회에서 9시까지 입실이라고 미리 공지를 해줬기에, 나는 아침 7시반에 우버를 탔다. 호텔에서 시험장까지는 차를 타고 10분밖에 안걸리는 거리였다. 8시도 채 되지 않아서 시험장에 가까워진 나는, 너무 일찍왔다 싶어 살짝 후회를 하고 있는데, 저 멀리 긴 줄이 보였다. 설마, 시험보러가는 사람들 줄은 아니겠지, 했는데 저마다 지퍼백을 하나씩 들고 있는걸 보니 역시나 시험장 입장 줄이었다. 입실시간까지 한참 남았는데, 시험장 밖 지하철역 입구까지 엄청난 줄이 이어졌다. 내가 줄을 서고 난 이후에도 줄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어리고 기운도 넘치는 본토 친구들은 줄을 서서 저마다 쉴새 없이 떠들어댔다.
7월의 워싱턴 DC 날씨는 정말, 타고 찌는 더위 그 자체였다. 주변에 높은 빌딩이나 나무숲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 타는듯한 뙤약볕에 그대로 노출된 채 1시간 넘게 줄을 서 있었다. 시험을 보러 가기도 전에 이미 체력이 다 소진되는 느낌이었다. 모자나 양산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심지어 두가지 모두 반입금지물품이라 가져올 수 없었다.
원래 공지되었던 입실시간인 9시가 살짝 넘어서야 나는 겨우 건물 안에 입장할 수 있었다. 들어가 보니, 시험 감독관들이 입실 전 혹시 반입금지물품이 없는지 한사람 한사람의 소지품을 검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왜 땡볕에서 1시간 넘게 달궈져야만 했는지가 모두 설명되었다. 소지품 검사와 몸수색을 모두 마치고 드디어 입실했다.
시험장은 우리나라처럼 여러 교실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농구경기장 같은 큰 체육관 안에 모든 학생이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수험번호에 따라 구역이 나뉘어 있었고, 20개를 넘는 구역이 있었다. 각 구역마다 큰 화면에 현재 시간이 표시되어 있었고, 재즈와 일렉트로닉을 적당히 섞은 듯한 음악이 시험장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내가 들어갔을 때에는 벌써 대부분의 자리가 채워져 있었다. 나는 조금 헤매다가 내 자리를 찾았다.
시험장 팔찌
양 옆자리 사람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짐을 정리했다. 내 왼쪽에 있는 학생과 오른편에 있는 학생이 나를 사이에 두고 시험이 끝나자마자 시작될 인턴쉽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험장 맨 앞에서 총괄감독관이 곧 안내를 시작한다고 하자, 오른편 학생이 앞에서 팔찌를 받아와서 우리 줄 전체에 나눠주었다. 아래 사진에 나오는 팔찌인데, 시험보는 이틀 내내 하고 있어야 하고, 이 팔찌가 있어야 화장실에 가거나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오더라도 다시 시험장에 입장할수 있다.
첫번째 시험이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어떤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너 오늘 이 팔찌 끼고 샤워하고 잠도 자야돼"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이 친구들은 역시 스트레스 상황도 재밌게 농담으로 풀어내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당연히 다음날 다시 팔찌를 줄 것이라고 믿고 집에 가자마자 쓰레기통에 팔찌를 버렸는데, 다음날 시험장 입장을 하는데 감독관이 "너 팔찌 어디있어? 팔찌 있어야 입장할 수 있어."라고 해서 멘탈이 완전 붕괴되었다. 다행히 감독관에게 사정을 잘 설명해서 팔찌를 다시 받을 수 있었지만, 혼자 시험을 보러온 탓에 이런 사소한 실수들이 생길 때마다 아찔해졌다.
정말이지 참을 수 없었던 미국의 에어컨 온도
시험 내내 내가 정말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에어컨이었다. 미국의 에어컨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시베리아 수준의 온도다. 내가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어느 건물을 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미국의 날씨가 더울 것이라는 것만 예상했지, 에어컨이 이정도로 셀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고, 특히나 첫날에는 반팔 차림으로 갔기 때문에 아침 9시 입실부터 저녁 6시경 시험이 끝날때까지 오들오들 추위에 떨어야만 했다. 오후 에세이 시간에 도저히 못참겠어서 감독관에게 에어컨 온도를 조절해줄 수 없느냐고 물었는데, 조절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둘째날에는 가디건과 잠바를 입고 시험을 봤는데, 그래도 여전히 추웠다. 나중에 미국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미국 에어컨은 남자들의 양복차림에 맞춘 온도를 설정하기 때문에 유독 온도가 낮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차라리 찌는 땡볕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에어컨 온도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정말 신기했던 것은, 그 온도에도 불구하고 나시티 하나만 입고도 전혀 동요없이 앉아있던 미국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점심시간
에세이 첫교시가 끝나고 나자, 점심시간이 되었다. 시험장 주변엔 정말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점심은 각자 간단히 준비해오라는 공지가 있었다. 나는 마땅히 가져올 만한 먹거리를 찾지 못해서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맛밤과 초코바로 점심을 대신했다. 점심시간에는 시험장 안에 있을수는 없었고, 무조건 밖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했는데, 시험장 밖 나무 아래 풀밭에 앉았다가 벌레 때문에 포기하고 건물 옆 한귀퉁이 화분 옆에 서서 식사(?)를 했다. 재밌는건,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게 어정쩡하게 서서 샌드위치 등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입실 전 핸드폰을 파우치 안에 잠긴채 넣어뒀기에, 건물 주변을 조금 어슬렁거렸다. 한국인이 보일법도 한데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은 에세이가 너무 어려워서 제대로 썼는지 알 수 없다는 얘기로 주를 이뤘다. 다음 과목에 대해 예상하는 목소리들도 있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줄을 섰다. 그런데 앞에 있는 학생이 계속 나를 흘끗거리는게, 말을 걸고 싶은 모양새였다. 나처럼 혼자 온 학생인것 같았다. 나는 아침부터 계속된 줄서기와 시베리아 에어컨, 그리고 에세이 시험으로 이미 지쳐있었던 터라 영어모드를 발동할 체력이 바닥나 있었다. 계속해서 흘끗거리는 그 학생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오후 시험은 어떨것 같냐고 묻는 말에 잘 모르겠다고 성의 없이 답하고, 다들 목소리를 높여 얘기하다 보니 워낙 시끄러워서 두번 연속 말을 바로 못알아듣고 pardon me를 했더니 앞자리 학생으로 공략 상대를 바꿨다. 나보다 적어도 10살 이상 어린 학생들이라 그런지 다들 에너지가 정말 넘쳤다. 새삼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첫째날 시험이 끝나고 다시 우버를 불러 호텔로 돌아갔다. 응시자들이 빠져나간 시험장 주변은 가끔 버스가 왔다갔다 할 뿐, 한적함 그 자체였다.
두번째날 오후 시험시간 전 점심시간은 '오늘 시험 끝나고 어디 갈꺼야' 내지는 '뭐 할거야' 하는 얘기들로 잔뜩 들떠있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시험 마지막 시간 전 들뜬 분위기는 만국 공통이구나 싶었다.
결국은 체력 싸움
미국변호사시험의 첫째날은 에세이, 두번째날은 객관식 시험을 보는데, 양일 모두 오전과 오후시간 모두에 걸쳐 시험이 진행된다. 에세이시험, 즉 주관식 시험은 6문제를 문제당 30분동안 작성하는 MEE시험과 응시자가 마치 변호사가 된 것처럼 주어진 사건을 분석하여 2문제를 문제당 90분 동안 작성하는 MPT시험으로 나뉜다. 객관식시험은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 동안 총 200문제를 푸는 형식이며, MBE라고 한다. 한국의 변호사시험에서 MEE가 사례형, MPT는 기록형 시험에 해당하고, MBE는 객관식 시험에 대응된다. 휴식일을 포함해서 무려 5일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치러야 하는 한국의 변호사시험에 비한다면 덜하다고 할수 있겠지만, 이틀 연속 시행되는 미국의 변호사시험도 만만치 않은 체력을 요구하는 싸움이다. 더구나 한국에서부터 시험을 치러 가는 경우는 시차와 비행으로 인한 피로를 극복해야 하기에 한층 더 체력이 요구되는 것 같다.
이틀간의 시험을 마친 나는 호텔방에서 정말이지 뻗어버렸다. 미국여행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터라, 시험이 끝난 후 이틀이란 시간을 더 두었는데, 그 이틀 중 반나절을 빼고는 종일 호텔에서 나가지도 않고 잠만 잤다. 내 수면욕이 나의 모든 욕구를 다 이겨버렸다.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안들었다. 오기 전에 체력관리를 잘 했어야 했는데 하면서 후회했지만 뒤늦은 후회일 뿐이었다.
시차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좀 더 충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은 7일이 최선이었다. 결국엔 어찌됐든 주어진 환경 안에서 해내야 한다. 어떤 환경에서든 해내는 사람은 해낸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차치하고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시험을 마치고 나오면서 어릴적 앨리 맥빌을 보면서 막연히 미국 변호사들을 동경했던 내가, 미국인들 사이에 섞여 함께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었다는게 새삼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번만큼은 꼭 목표를 달성해서 한층 더 성장하고 싶다.
에피소드 1
미국에 있었던 며칠 동안 햄버거와 관련된 두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다.
첫번째는 첫째날 밖에 나가서 뭔가를 사먹을 기력조차 없어서 우버이츠로 배달시킨 햄버거 사건이다.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주문하고, 우버이츠 앱으로 호텔방 앞에 버거를 두었다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픽업을 했는데, 열자마자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빵 한쪽이 꼭 베어문 것처럼 떨어져나가 있었다. 이상한 건 패티까지 베어물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미국인 친구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며 얘길 했더니, 분명 빵을 베어문것 같기는 한데 왜 정작 맛있는 부분인 패티는 놔두고 빵만 베어물었는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았더니 놀랍게도 이 동네에 이전에도 이런 사건이 발생했었다는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사실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알수 없지만, 나는 이 햄버거를 도저히 먹을 수 없었고, 이날 입맛을 상실해서 물만 마시고 잠들었다.
에피소드 2
두번째 사건은, 내가 산책하던 길에 우연히 호텔 근처에서 최근 서울에 매장을 열었다는 Five Guys 를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위 에피소드와 같이 이미 햄버거에 대한 한번의 안좋은 기억이 있었던 터라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서울에선 줄을 서서 먹는다는데 손님도 없이 한적한 Five Guys 를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웠다.
매장에 들어가서 리틀 치즈버거와 콜라 하나를 주문했다. 그런데, 리틀 치즈버거 하나를 달라고 했더니 종업원이 "너 플레인(Plain) 버거 말하는거야?"라고 되물었다. 나는 별 생각없이 "그래, 맞아. 기본(plain) 햄버거로 줘."라고 말했다. 잠시 앉아서 대기했더니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고 해서 픽업을 해서 그대로 호텔방에서 먹으려고 가져갔다.
그리고 호텔방에 도착하자마자 펼쳐본 버거의 모습은 정말이지 참담했다. 빵 두쪽과 패티가 전부였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검색을 해보니, 미국에서 'plain burgur'라는 것은 야채나 토핑을 모두 뺀 빵과 패티만 들어간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친구들, 이 버거랑 콜라 한잔에 14.38달러(한국 돈으로 18,000원 상당)를 받은 거라고? 이 에피소드를 들은 미국인 친구가 "언니도 어려운 방법으로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구나"라고 하면서 본인이 한국에 와서 한국 관습을 잘 몰라서 실수했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플로리다에 살고 있는 미국인 영어튜터는 아무리 그래도 보통 패티만 있는 버거를 주지는 않는데 좀 이상한 경우라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고 정작 미국인들은 이런 브랜드 버거들이 비싸기 때문에 좀더 싸고 맛있는 동네 버거집을 애용한다는 팁도 알려주었다.
미국에서 햄버거를 주문할 때는 "with everything"이라는 말을 꼭 붙여야 한다는 것을 내가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빵과 패티뿐인 버거에 2만원 상당의 돈을 지불하는 대가를 치르면서 배웠으니, 다음에 미국에 갈땐 꼭 제대로 주문해서 진짜 버거를 먹어봐야겠다.
<이 글은 지난 2023년 7월 미국변호사 시험 후기입니다. 시험내용을 유포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 시험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적지 못합니다.>